일본 수도권의 신축 맨션(한국의 아파트에 해당) 공급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1990년대 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고급 맨션 시장의 큰손이던 중국 투자자 수요가 줄어든 데다 고가 전략을 유지하려는 부동산 회사들이 물량을 대폭 줄인 영향이다.

일본 부동산경제연구소는 수도권 신축 맨션 공급량이 작년 2만8563가구로, 1년 전보다 2.0% 줄었다고 17일 발표했다. 수도권 신축 맨션 물량이 3만 가구를 밑돈 것은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잃어버린 20년’이 시작한 1992년 이후 27년 만이다.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지난달 신축 물량은 2142가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6% 급감했다.

부동산경제연구소는 코로나19가 조기 수습되지 않는 한 올해 공급량이 3만 가구를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수도권 신축 물량이 2년 연속 3만 가구를 밑돈 것은 1991~1992년이 마지막이었다.

작년 신축 물량이 급감한 것은 중국 등 외국인 투자자의 수요 증발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분석이다. 작년에 이미 “2020년 도쿄올림픽 이후 도쿄 집값이 하락 반전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고급 맨션을 사들이던 외국인 수요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인 입국을 제한한 올해 3월 이후엔 해외 투자자의 신축 부동산 매입 건수가 작년 동기 대비 30% 감소한 것으로 추산됐다. 일본 정부가 지난 7일 도쿄와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긴급사태를 선언한 이후 상당수 모델하우스가 문을 닫아 신축 맨션 수요는 더욱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땅값과 자재·인건비가 높았던 시기에 지은 고가 맨션 때문에 부동산 회사들이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공급량 자체를 줄인 것도 또 다른 배경으로 지적됐다. 작년 신축 맨션의 평균 가격은 6055만엔(약 6억8439만원)으로, 1년 전보다 2%가량 올랐다. 지난달에는 6156만엔으로, 2000년대 이후 최고 가격을 경신했다. 고가 전략을 유지한 채 코로나19 수습 이후 고소득층의 수요 회복을 노리려는 전략이란 해석이 나온다.

고소득층 매입 수요는 더 위축됐다. 작년 총 계약건수는 3만1696가구로, 199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공급량 대비 계약건수를 나타내는 계약률은 61%로, 4년 연속 70%를 밑돌았다.

다만 일본 내 7대 부동산회사의 공급 비중이 당시 30%에서 현재 50%까지 높아진 상황이어서 시장이 과거처럼 붕괴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대형 부동산 회사들도 고가 전략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