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건물 통째 흔들려…자녀 아픈 부모는 발만 동동"

1 / 41

"도로가 통제되고 온통 유리파편과 잔해 투성이라 호텔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기준 카테고리 5(5단계 중 최고 등급)의 슈퍼태풍 '위투'가 휩쓸고 지나간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 사이판 섬에 고립된 한국인 관광객들은 태풍 경보가 해제된 26일 새벽 현재까지도 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3일부터 섬 남서쪽 해안의 대형 리조트에 머물러 온 이모(39·여)씨는 이날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최상층인) 5층 객실은 유리창이 깨지고 비가 들이쳐 투숙객들이 4층으로 내려와 복도에서 잠을 자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호텔인데도 바람이 불 때마다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바람에 무너질까 두려울 정도였다"면서 한국인 관광객 중 일부는 심지어 장롱에 들어가 밤을 새우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나마 이 리조트는 자체 발전시설을 갖춰 상황이 나은 편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인근의 또 다른 대형 리조트는 24일 이후 정전과 단수로 투숙객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리조트에 이재민들이 몰려드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씨와 같은 리조트에 묵는 오모(37·여)씨는 "어제 새벽 자는 아이들을 깨워 옷을 입히고 여권을 챙기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전화도 먹통이 돼 정말 앞이 캄캄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다행히 한국인 관광객 중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자녀 동반 관광객이 많이 찾는 리조트인 까닭에 유아용품이 부족하다.

열이 나는 어린이도 있는데 진료를 받지 못할 상황이라 큰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가장 큰 우려는 사이판에서 고립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괌 데일리 등 현지 언론은 이번 태풍으로 사이판 국제공항 내 시설물이 심한 피해를 봤다고 보도했다.

티웨이 항공은 내달 25일까지 사이판 공항이 폐쇄돼 운항이 불투명하다고 안내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재난방지청(FEMA) 당국자는 "긴급물자를 실어나를 수 있도록 사이판 공항 활주로에서 잔해를 치우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급선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오씨는 "재난에 사람이 죽을 수 있고, 재난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여기서 알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있고 외국이라 더욱 무서웠다"면서 "그런데 중요한 건 귀국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공항 관제탑 등이 심하게 망가져 복구까지 한 달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며 대책을 호소했다.

외교부는 사이판에 현재 한국인 여행객 약 1천 명이 머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현재까지 우리 국민의 실종, 사망, 부상 등 피해 신고는 들어온 게 없다"면서 "공항이 언제 재가동될지는 26일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