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피해자입니다. 현재 (대주주 A씨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요.”

서울 여의도동 C투자자문 앞에서 만난 이 회사 직원은 A씨 이야기를 꺼내자 손사래를 쳤다. 그는 “(A씨가) 우리 회사 이름을 팔아 개인적으로 투자를 유치한 것 같다”고 했다.

폰지 방식의 사기행각을 벌여 타인의 투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의 수사를 받고 있는 A씨는 2013년 C투자자문을 세운 인물이다. 지금도 지분 87%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다. 2년 전 본격적으로 사기행각에 활용한 P사를 인수할 무렵까지 이 회사 대표를 맡았다.
이번엔 '비상장 사기'…"年 30% 준다" 실제론 다단계

영화·비상장 투자로 수익 거둬

21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2013년부터 10년간 C투자자문에서 쌓아온 실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2021년 자신이 인수한 P사에 투자금을 유치했다.

C투자자문은 영화와 같은 문화 콘텐츠 투자에 두각을 보인 회사다. ‘기생충’ ‘영웅’ ‘공작’ ‘엑시트’ ‘사바하’ 등에 투자했다.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영화판에서 A씨는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

스타트업 등의 상장 전 지분(프리IPO) 투자도 많이 했다. 교육 스타트업 야나두와 게임회사 카카오게임즈, 골프 스타트업 스마트스코어 등 상장이 눈앞에 있는 회사에 미리 투자해 수익을 내는 방법을 주로 썼다. 정보기술(IT) 분야를 주제로 정기 기고를 하는 등 언론 홍보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연 30% 수익 약속

A씨는 2021년 인테리어 등 부동산 관리를 하는 P사를 인수했다. 사업 목적에 금융업을 추가하고 고액 자산가의 투자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자문사 시절부터 쌓아온 인맥으로 따온 비상장 투자 건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논리로 자산가들을 설득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연 30%의 수익금을 매월 지급한다는 입소문이 자산가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 투자자는 “3000만원을 투자했는데 매월 80만원(2.6%)씩 수익금이 들어왔다”며 “눈앞에 돈이 보이니 더 투자하는 쪽으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100억원 이상 고액을 넣은 투자자도 적지 않았다. 주로 기업인 등 부유층 자산가들이었다는 후문이다.

A씨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의 주범 라덕연 호안투자자문 대표처럼 다단계와 폰지사기 등 비슷한 방식의 사기 수법을 썼다.

우선 A씨는 투자금 유치를 위해 투자자를 데려오면 수수료를 주는 다단계 영업 방식을 썼다. 브로커 역할을 한 사람 가운데 A씨에게 투자해 수익을 낸 재력가도 있다. 다른 사람의 투자를 받아 수익금의 일부를 돌려주는 폰지사기 수법도 사업 초기부터 활용했다.

지난해부터 비상장 회사의 몸값이 떨어지고 시중에 유동자금이 줄어들면서 A씨는 위기에 봉착했다. 수익금을 돌려주려면 추가 투자를 받거나 주식 가격이 올라야 했지만 모두 여의치 않았다.

투자금 상당액 사라진 듯

현재 P사는 지난 2월부터 지역 신협 등에서 빌린 대출금과 이자 수천만원조차 갚지 못하고 있다. A씨는 P사 사무실을 지난달 폐쇄했다. A씨의 한 측근은 “비상장 주식의 시장가가 불투명하다 보니 투자자에게 덤터기를 씌우기도 했다”며 “투자금 중 상당액은 돌려받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C투자자문 직원들은 취재 과정에서 A씨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굳게 다물고 “우리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P사와 C투자자문이 여러 차례 투자 물건을 공유하는 등 협력관계였다고 보고 있다. C투자자문을 단순 피해자로 분류하기 어려운 이유다.

피해자들은 A씨가 고객에게 과시할 수 있는 투자 내용을 만들기 위해 투자자문 일임업 인가를 받은 C투자자문을 활용했다고 여기고 있다. 이들은 “A씨가 투자한다고 약속한 자금을 모두 투자하지도 않았다”며 “고객에게 투자 내역을 알려주지도 않고 투자금을 고급 자동차와 최고급 빌라 구입 등에 유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철오/김우섭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