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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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권사가 수백억원 규모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을 잇달아 설립하고 있다. 기업공개(IPO) 시장이 침체되자 공모 대신 스팩 합병 방식으로 상장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어서다. 스팩은 비상장기업과 합병할 경우 주가 상승 여력이 크고 합병에 실패하더라도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어 증시 하락기 투자 대안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덩치 커지는 스팩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은 이달 공모액 200억~300억원의 스팩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후 시장의 반응을 살핀 뒤 규모가 더 큰 스팩을 상장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스팩은 비상장기업의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서류상 회사(페이퍼 컴퍼니)다.

국내 스팩은 그동안 75억~120억원 사이에서 공모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2009년 도입된 이후 소형 기업과 합병해 증시에 입성하는 도구로 자리잡으면서다.
스팩 대형화 경쟁…약세장 투자대안 되나
하지만 지난해 NH투자증권이 엔에이치스팩19호(공모액 960억원)와 엔에이치스팩20호(400억원)를 각각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것을 계기로 대형 스팩 상장에 나서는 증권사가 늘어나고 있다. 공모액이 300억원이 넘는 스팩이 등장한 건 2010년 이후 약 11년 만이었다.

올 들어서는 이런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 하나증권(하나금융25호스팩, 400억원), 삼성증권(삼성스팩7호, 300억원), 미래에셋증권(미래에셋드림스팩1호, 850억원) 등이 대형 스팩을 상장하기 위한 공모 절차를 밟고 있다.

스팩이 대형화되는 것은 올 들어 주가 하락으로 공모주 시장이 침체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IPO가 힘들어지면서 스팩과 합병을 통해 상장하려는 중견 또는 대기업의 잠재적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스팩은 별도의 공모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상장할 수 있다.
약세장에서 주목받는 스팩
스팩은 안정적인 투자처로 꼽힌다. 상장 이후 3년 안에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하면 공모가 수준의 원금과 소액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우량 기업과 합병에 성공하면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도 얻을 수 있다.

올해 합병을 앞둔 스팩의 주가는 크게 올랐다. 이달 윙스풋과 합병하는 IBKS제12호스팩은 2000원에 공모했는데 지난달 말 주가가 1만150원으로 상승했다.

물론 투자 위험도 있다. 합병이 결정돼도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스튜디오삼익과 합병을 결정한 IBKS제13호스팩의 주가는 1925원으로 공모가 대비 하락했다. 합병 과정에서 스튜디오삼익의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산정됐다는 비판이 제기된 결과다.

대형 스팩일수록 합병에 성공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010년 대우증권그린코리아스팩(875억원), 동양밸류오션스팩(450억원), 우리스팩1호(350억원) 등 대형 스팩이 등장했지만 합병에 성공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국내 스팩 시장은 아직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해 기업가치가 큰 업체가 스팩과 합병해 증시에 입성한 사례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작년부터 속속 등장하고 있는 대형 스팩 중에서도 실제 유망 기업을 찾아 합병에 성공하는 곳은 일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