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어음(CP)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우량 기업이 늘고 있다. 금리 변동성 확대로 회사채 투자 수요가 급격히 움츠러든 탓이다.

1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주말(12일) 기준 국내 최상위 신용등급(A1) CP 발행 잔액은 약 86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3개월 전인 2월 12일 74조1000억원 대비 12조원 넘게 불어났다.

지난달 이후 SK E&S, 롯데케미칼, LIG넥스원 등이 회사채를 대체하는 자금조달 수단 성격인 만기 6개월 이상 CP를 발행했다. CP는 기업의 단기 자금조달 수단으로, 1년 미만 만기로 발행하면 증권신고서 작성 등 까다로운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달 이후 시장 금리가 요동치면서 CP 발행을 선택하는 우량 기업이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많은 기관투자가들이 투자 직후 단기간에 손실을 인식할까봐 회사채 투자를 기피한 탓이다. 회사채와 달리 CP는 시가평가를 적용하지 않아 투자 이후 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을 인식하지 않는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회사채 발행 환경이 더 악화하면 CP나 전자단기사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관의 수요예측 참여 부진으로 회사채 모집금액을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늘자 발행을 보류하는 대기업 계열사도 속출했다. 지난달엔 한화와 SK그룹 계열사 일부가 발행 계획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흥행 실패로 우량한 이미지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증권사 IB 담당 임원은 “명성 악화 위험(reputation risk)을 피하려는 게 우량 기업이 회사채 공모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한국전력공사 채권이 수요예측에 참여할 돈을 상당 규모 흡수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대규모 적자로 인한 운영자금 부족을 메우기 위해 가장 우량한 ‘AAA’ 채권(한전채)을 다소 높은 금리(낮은 가격)에 쏟아내고 있어서다.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마켓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수요예측을 거쳐 투자자를 모집하는 회사채는 총 3조3500억원(최초 모집금액 기준)으로 나타났다. 1년 전 4월의 6조6250억원 대비 절반 수준이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