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물가 급등세가 향후 수개월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이라던 종전 견해를 바꾼 것이다. 하지만 “(긴축에 나설 수 있는) Fed의 정책 전환을 위한 목표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강조하며 시장을 안심시켰다.

파월 의장은 14일(현지시간)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최근 물가상승률이 현저하게 높아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6월 물가상승률이 5.4%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공포를 자극한 지 하루만에 나온 것이다. 그는 “공급 병목 등으로 생산이 줄어든 분야에서 강한 수요까지 나타난 것이 일부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급격하게 끌어올렸다”며 특정 분야가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고 강조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물가 급등을 이끄는 건 중고차 가격이다. 지난달 중고차 가격은 전달 대비 10.5% 급등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45.2%나 올랐다. 노동부가 1953년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최고치다.

파월 의장은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등 긴축 전환과 관련해선 “상당한 추가 진전이란 자체 목표까지는 갈 길이 멀다”며 “특히 고용 시장 회복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가 상승에 대응하려고 너무 성급하게 행동하면 실수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고용 회복세가 더 뚜렷해져야 통화 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공중 보건 관련된 여건이 계속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수개월간 일자리가 강력하게 늘어날 것”이라며 “경제가 회복하면 3.5%의 실업률 복귀도 가능하다”고 낙관했다.

미 실업률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발발 직전이던 작년 2월 역대 최저치인 3.5%로 기록됐다. 3.5% 실업률은 사실상 완전 고용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기준 미 실업률은 5.9%이며, Fed는 연내 4.5%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은 5.9%로, 전달 대비 오히려 0.1%포인트 높아졌다. 미 노동부 및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제공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은 5.9%로, 전달 대비 오히려 0.1%포인트 높아졌다. 미 노동부 및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제공
파월 의장은 “Fed가 긴축 정책으로 바꾸기 전에 시장에 많은 안내를 해줄 것”이란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테이퍼링과 관련해서도 분명히 언급했다. 파월 의장은 “2주일 후 Fed 위원들과 이 주제에 대해 다시 한 번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동시에 공개된 Fed의 경기동향 보고서 ‘베이지북’도 비슷한 시각을 보였다. 베이지북은 “물가가 평균 이상 속도로 오르고 있다”며 “일부 지역 연방은행은 물가 압력이 일시적이라고 판단하지만 다수는 몇달간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지북은 오는 27~28일 열릴 예정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앞두고 발간됐으며, 위원들이 통화 정책을 결정할 때 기초 자료로 참고한다.

베이지북은 “미 경제가 지난 5월 말부터 강한 성장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면서도 “원자재와 노동력 부족, 운송 지연 등 공급 측면의 교란은 더 광범위해졌다”고 평가했다.

뉴욕증시 개장 직전 발표된 6월의 생산자 물가지수(PPI) 역시 작년 동기 대비 7.3% 급등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0년 노동부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후 최고치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 지수는 0.13% 오른 34,933.23, S&P 500은 0.12% 상승한 4,374.30, 나스닥은 0.22% 하락한 14,644.95로 마감했다. 파월 의장의 통화 완화적 발언에도 불구하고 혼조세로 거래를 마쳤다.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1.37%로, 전날 대비 0.05%포인트 하락했다고 재무부가 밝혔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