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학동로 삼성월드타워 아파트(가운데) 모습. 이지스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한 사모펀드가 지난 6월 사들였다가 논란이 되면서 7월 사업을 철회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학동로 삼성월드타워 아파트(가운데) 모습. 이지스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한 사모펀드가 지난 6월 사들였다가 논란이 되면서 7월 사업을 철회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매입했다가 최근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삼성월드타워아파트 리모델링사업을 접기로 했다. 이 사업은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강남 한복판에서 일어난 금융과 부동산의 로맨스”라고 지목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법무부가 검찰을 통해 부동산자산운용사의 불법행위를 단속하겠다고 압박한 데 이어 사업과 관련한 주택담보대출 가이드라인 위반 논란까지 일자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이지스자산운용은 부동산펀드를 통해 매입한 삼성월드타워 리모델링사업을 철회하고 펀드를 청산하기 위해 아파트를 이른 시일 안에 차익 없이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최근 주택시장 불안으로 정부가 아파트 투기로 과도한 시세차익을 얻는 것을 경계하는 상황에서 오해와 논란을 불식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펀드를 청산하기로 했다”고 사업 포기 이유를 밝혔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달 400억원가량을 들여 46가구로 구성된 한 동짜리 아파트 삼성월드타워를 매입했다. 개인 토지 소유주가 1997년 아파트를 지어 전·월세로 임대하면서 20년 넘게 보유해온 단지다. 서울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과 가까운 대로변에 들어서 있어 리모델링하면 가치가 상승할 여지가 큰 건물로 평가된다.

추 장관은 SNS를 통해 “한 사모펀드가 서울 강남 아파트 46가구를 사들였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며 “(사모펀드가) 다주택 규제를 피하고 임대수익뿐 아니라 매각차익까지 노리고 있다”고 압박했다.

대출 회수·IPO도 차질…이지스, 檢 앞세운 압박에 사업 포기

이지스자산운용은 “이른 시일 내에 차익 없이 매입 건물을 매각해 더 이상의 논란을 만들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노후화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선보이면 신규 주택 공급이 부족한 강남 주택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었다”며 “결과적으로 주거용 부동산 가격에 대한 우려가 많은 상황에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몸을 낮췄다.

합법적으로 아파트 통매입이 이뤄졌지만 한국에서 사모펀드가 주거용 아파트를 매입한 행동이 정부의 비판을 받게 되자 부담을 느낀 것이다. 특히 법무부가 ‘부동산 전문 사모펀드 등 금융투기자본의 불법행위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는 인식을 분명히 밝힌 점도 사업 지속을 어렵게 했다. 해외에선 올초 미국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이 약 3조원을 들여 일본 도쿄와 오사카의 아파트 200개 동을 매입하는 등 사모펀드의 주거용 아파트 매입은 흔한 일이다.

정부가 검찰의 수사권 등을 동원해 자금 압박을 가해온 점도 아파트 매입 철회의 주요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아파트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새마을금고에서 270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사모펀드의 강남권 아파트 매입이 사회문제화한 이후 이 대출은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가이드라인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투기과열지구에선 아파트값의 40% 이상은 대출을 받을 수 없는데 이를 초과했다는 지적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리모델링 공사비까지 포함한 전체 사업비 800억원에 대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새마을금고가 행정안전부의 지시에 따라 곧바로 담보인정비율(LTV) 규제 초과 대출 부분인 100억원을 회수에 나서면서 이지스자산운용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올 연말이나 내년 초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사업 포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물의를 일으킨 기업으로 낙인찍히면 한국거래소의 상장적격성심사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지스자산운용의 아파트 건물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400억원 규모의 자산을 매입하려면 현금이 풍부한 투자기관이나 금융회사가 참여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나서는 곳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46가구를 쪼개서 원가 수준에 팔면 현금부자 개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꼴이 돼서 이마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에 대한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IB본부 관계자는 “사모펀드의 부동산투자가 불법도 아닌데 검찰을 동원해서 압박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다주택자에게는 집을 팔라고 하면서 임대를 위해 주택을 사는 사람들을 압박하면 전·월세 세입자들은 어디 가서 살라는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