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중산층’은 목돈을 굴릴 때 연 14% 수익을 기대한다. 그런데 십중팔구 금리 1~2%대 은행 예금에 넣어둔다. 펀드와 같은 수익증권에 투자하는 사람보다 돈을 굴리지 않고 월급통장에 놔두는 사람이 더 많다. 직장인 4명 중 1명은 정기적인 저축이나 투자를 하지 않는다. 생활비를 쓰고 대출 이자를 갚고 나면 여윳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여유가 있어도 마땅한 재테크 방법을 몰라 그냥 둔다는 사람도 많다.

한국경제신문이 미래에셋은퇴연구소와 공동으로 여론조사기관인 닐슨코리아에 의뢰해 설문조사한 결과다. 중산층의 재테크에 대한 인식과 현실 간 괴리는 컸다. 눈높이는 ‘꼭대기’에 있는데 정작 현실적 수단인 ‘투자’와는 담을 쌓고 지낸다.

금융자산을 굴려 대출이자 수준도 못 건지는 가구가 태반이다. 노후 대책인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등에 대한 관심도 ‘낙제점’으로 나타났다.
수익은 年14% 바라면서… 정작 1~2% 예금에 목돈 '방치'
예·적금에 쏠린 금융자산

이달 초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1021명을 대상으로 ‘중산층 재테크 현황과 인식’을 조사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갖춘 근로소득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의 평균 총자산은 3억7000만원, 월 소득은 500만원 수준이었다. 전체의 75.2%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응답자들은 가계자산의 부동산 쏠림에 위기의식이 있었다. 금융자산을 늘려야 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3.0%)은 노후를 위해 부동산보다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답했다.

정기적으로 저축이나 투자를 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77.7%였는데 대부분 예·적금이었다.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액은 소득의 3.6%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목돈을 굴릴 때도 예·적금에 가입한다는 응답(1, 2순위 복수응답 82.5%)이 압도적이었다. ‘따로 운용하지 않고 그냥 계좌에 둔다’는 응답도 45.9%나 됐다. 수익증권 투자(26.5%), 주식 투자(24.1%)보다 월등히 많았다.

투자 기피 현상은 뚜렷했다. 자산 증식에 활용하지 않을 수단(복수 응답)으로 주식(46.7%), 채권(45.6%), 펀드, 주식연계증권(ELS) 등 간접금융상품(37.1%)을 꼽았다. 펀드에 한 번도 투자해본 적 없다는 응답자가 27.3%에 달했다.

펀드를 기피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자신의 투자 방식과 맞지 않는다’는 응답(25.0%, 복수 응답)이 가장 많았고, ‘펀드로 손실을 본 경험이 있다’(22.8%)는 이유가 두 번째였다. ‘여유자금이 부족하다’(20.4%) ‘펀드로 돈 벌기 어려울 것 같다’(17.4%) 등이 뒤를 이었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가계자산에서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4%(지난해 기준)다. 중산층으로 볼 수 있는 자산·소득 3분위(40~60%) 기준으로는 1.2%에 불과하다.

펀드 투자 때 자산가는 ‘자기 판단’ 중시

소득이 많은 자산가도 예·적금 선호도가 높았지만 재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려 한다는 점에선 구별됐다.

설문 대상 가운데 고소득 자산가 105명(연소득 1억원, 총자산 5억원 이상)은 목돈 운용 방식으로 예·적금(71.4%), 수익증권 투자(37.1%), 주식 투자(36.2%), 거주 목적 외 부동산 투자(35.2%) 순으로 선호한다고 답했다.

‘따로 운용하지 않고 그냥 계좌에 둔다’는 응답(18.1%)은 크게 낮았다. 목돈 운용 시 기대수익은 연 11.7%로 나머지 중산층(916명)의 14.0%보다 낮았다.

실적배당형 상품 선호도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46.7%가 펀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응답자(26.6%)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비중이다. 과거 펀드 투자로 수익을 얻은 편이라는 응답 비중도 15%포인트가량 높았다.

펀드에 접근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났다. 펀드에 투자하는 계기로 연소득 1억원 이하 중산층은 ‘금융기관 직원 권유’(48.2%)를 가장 많이 꼽았지만 고소득 자산가는 ‘자발적인 판단’(37.6%)이라고 답했다.

자산가들은 펀드 투자 때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펀드 운용전략을 꼽았다. 중산층은 과거 수익률을 중시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 연금에 대한 관심은 응답자 대부분이 많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수익률을 확인하고 운용을 지시한다는 응답자는 4명 중 1명에 불과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예·적금만으로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과거 고금리 시대의 인식이 아직도 바뀌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금융자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