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27일 이틀간 3조원어치에 가까운 국채 현물을 내다판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채권시장의 ‘큰손’인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 등 단기 자금을 굴리는 글로벌 운용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 신용도와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에 근거해 국채를 한 번 사면 장기 보유하는 외국 중앙은행이나 연기금은 한국 국채 매도에 동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시장 일각에서 제기돼 온 ‘외국인 엑소더스(대탈출)’ 우려도 다소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3조 국채 매물' 쏟아낸 외국인은 단기투자자였다
◆누가, 왜 팔았나

정부 관계자는 29일 “최근 국채 현물을 대량으로 순매도한 외국인은 모두 템플턴 등 단기 매매 차익을 노리는 운용사들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시장 일각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외국 중앙은행이나 연기금은 국채 매도에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인은 지난 26일 2조983억원 규모의 국고채와 통화안정증권(통안채)을 순매도한 데 이어 27일에도 8212억원어치 국채를 내다팔았다. ‘국고15-9’(만기 5년) 등 1000억원어치 이상 매도한 종목 8개 중 7개는 만기가 5년 이상인 중·장기 국고채였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중·장기 채권을 만기가 돌아오기 전에 매도한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시장의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증권업계는 템플턴이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국고17-4’(5년) 4958억원어치가 26일 시장에 매물로 나온 점으로 미뤄 중·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외국 중앙은행이나 연기금이 국채 매도 행렬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 국내 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장은 “‘한국 등 신흥국 채권 비중을 줄이겠다’고 지난 4일 밝힌 노르웨이 국부 펀드(GPFG)와 칠레 중앙은행이 한때 유력한 매도 주체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약 7조원 규모의 원화 채권을 보유한 GPFG가 매도 주체라면 5조원어치가 넘는 매도 물량이 추가로 쏟아져나와 시장이 급속도로 경색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였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앙은행이나 연기금 중 한 곳이 한반도 정세 불안 등을 이유로 한국 채권 투자 비중을 줄이면 다른 장기 기관투자가도 연쇄적으로 국채 매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템플턴은 분기마다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26~27일 국채를 대량 매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 연구원은 “국채를 단기적으로 사고팔아 매매 차익을 내는 게 템플턴의 운용 전략”이라고 했다. 템플턴은 지난 6월 말에도 2조원어치가 넘는 국채를 팔았다가 2주 만에 비슷한 규모의 채권을 다시 사들였다.

◆외국인 매도세 진정되나

외국인의 대규모 국채 매도로 이번주 들어 상승(채권 가격 하락)을 거듭했던 국고채 금리는 이날 소폭 하락했다. 전날까지 이틀 연속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던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15%포인트 내린 연 2.379%에 마감했다. 외국인은 사흘 만에 국채 현물 2421억원 규모를 순매수했다.

전문가들은 수조원대 ‘국채 매도 폭탄’이 추가로 쏟아져 나올 가능성은 낮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템플턴도 추석 연휴가 끝나는 다음달 중순 국채 재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다음달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을 전후해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다시 부각될 수 있는 데다 미국 중앙은행(Fed)도 본격적인 자산 축소에 들어간다는 점은 외국인 자금 추가 이탈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외국인은 지난 15일 이후 이날까지 11거래일 연속 선물시장에서 10년 만기 국채 선물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누적 순매도액만 2조2885억원에 달한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북한 간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원·달러 환율의 상승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원화 약세는 외국인의 국채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이라고 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 7일 북·미 간 군사적 긴장이 길어지면 한국 국가신용등급(AA0)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국인의 원화 채권 보유액은 지난 26일 99조1968억원으로, 지난 4월25일(99조9671억원) 이후 5개월 만에 100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하헌형/김은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