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밤 9시 밤 늦은 시간 뉴욕 맨해튼 구겐하임 뮤지엄, 화려한 플라워 패턴의 드레스와 재킷을 입은 젊은 뉴요커들이 하나 둘 몰려 들었다. 평소 낮 시간에만 운영되는 뉴욕의 상징적인 갤러리가 이날 만큼은 특별한 파티 공간으로 변신했다. 화려한 조명 속 디제이가 뿜어내는 활기찬 비트 소리에 맞춰 참석자들은 샴페인 잔을 부딪쳤다. 배우 이정재가 2층 난간에 모습을 드러내자 이곳저곳에서 그의 대표작인 "오징어 게임"(Squid game)을 외쳤다.
LG의 투명 디스플레이로 제작한 포토존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LG 제공
LG의 투명 디스플레이로 제작한 포토존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LG 제공
이날 열린 행사는 LG가 후원하는 '젊은 예술 후원가들의 파티(YCC·Young Collector’s Council Party)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술, 음악,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매년 구겐하임에서 열린다.

올해는 특히 인공지능(AI)과 예술의 조화를 키워드로 더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파티 주제는 ‘인공 디지털 천국(Artificial Digital Paradise). LG 측은 투명 올레드 등 첨단 디스플레이로 만든 런웨이와 포토월을 마련해 미래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드레스 코드는 ‘미래 지향적인 꽃무늬 복장(Futuristic Floral Attire)’. 저마다 개성을 뽐냈지만, 단연 눈에 띄는 건 AI 틸다와 박윤희 디자이너가 협업한 의상을 입은 참석자들이었다. 틸다는 LG가 만든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을 두뇌로 탑재한 AI 아티스트다.
LG의 AI 아티스트 '틸다'가 '금성에 핀 꽃'을 주제로 생성해낸 이미지 패턴들.
LG의 AI 아티스트 '틸다'가 '금성에 핀 꽃'을 주제로 생성해낸 이미지 패턴들.
엑사원 플랫폼을 구축 중인 LG AI연구원의 이화영 상무는 "문장이나 아이디어를 쓰면 엑사원이 그에 맞는 그림이나 패턴을 즉시 다수 생성한다"며 "챗GPT 등 기존의 생성형 AI가 정해진 결과물만 내놓는다면, 엑사원은 AI로부터 영감을 받아 최종 결과물은 사람이 디자인하도록 설계했다"고 소개했다.

'그리디어스 바이 틸다'라는 이름의 AI 의상 컬렉션도 틸다가 '금성에서 핀 꽃'을 주제로 생성한 3000여장의 패턴과 이미지를 토대로 박 디자이너가 최종 제작했다. 지난 2월 뉴욕 패션위크에서도 첫 선을 보이기도 했던 이 컬렉션의 의상을 입은 박 디자이너와 뉴요커들이 런웨이에 오르자 시선이 집중됐다.
AI를 활용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는 박윤희 디자이너(왼쪽)와 참석자들. 박윤희 디자이너 제공
AI를 활용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는 박윤희 디자이너(왼쪽)와 참석자들. 박윤희 디자이너 제공
이날 건배 제의는 배우 이정재와 뉴욕의 아티스트 스테파니 딘킨스 교수의 몫이었다. LG와 구겐하임 뮤지엄은 지난 19일 열린 제1회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로 딘킨스 교수를 선정했다. 그는 AI,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AI의 편향을 경고하는 예술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 LG는 2027년까지 매년 뉴욕에서 이같은 ‘기술과 예술의 융합’ 사례를 발굴해 지원하기로 했다.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세상'을 추구하겠다는 게 LG의 포부다. LG와 엑사원 개발을 위해 협업 중인 임정기 파슨스디자인스쿨 교수는 "디자인이라는 것이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인 만큼 AI가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협업툴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AI 기술에 대해 고민하는 기업이 더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뉴욕=정소람 특파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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