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개발하는 드림에이스가 다음달 스타트업 가운데 처음으로 차량 관제 시스템 및 인포테인먼트 기기 생산에 들어간다. 올해 제조하는 중국 전기트럭 장착용 기기는 1만5000대로, 매출은 120억원 규모다. 이 회사는 2015년 설립 초기 차에서 즐기는 음악·영상, 길 안내, 차량 점검 정보를 제공하는 인포테인먼트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시작했다. 하드웨어 없이는 투자 유치도, 고객사 수주도 어려워 제조에까지 뛰어든 경우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은 삼성SDS에서 홈IoT(사물인터넷)사업부를 인수했고, 금융 슈퍼 앱 토스는 카드 결제 단말기 제조업체를 사들여 토스플레이스를 설립하고 하드웨어를 장착했다. 앞서 카카오와 네이버는 인공지능(AI) 스피커를 시도했다가 포기했지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는 하드웨어 스타트업 인수를 통해 주도권 경쟁을 하고 있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그래픽=이정희 기자
벤처 투자 혹한기에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성장한 플랫폼 기업 대신 수익을 내는 제조 스타트업과 기술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팹리스 반도체, 2차전지, 항공우주 스타트업에 뭉칫돈이 몰렸으며 스마트 소형가전, 웰니스 기기 업체 등도 해외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기회 열리는 하드웨어 스타트업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가운데 의료기기를 제외한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전체의 9% 정도다. 업종별로는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량 21.5%, 비메모리 반도체 16.8%, 드론 및 항공우주 14.9%, 정보기술 기기·부품 14%, 2차전지 10.3%, 로봇 9.3%, 특수·신소재 6.5%, 3차원(3D) 프린팅 3.7%, 기타 2.8% 등이다.

지난해 6월 기준 하드웨어 유니콘기업 스타트업은 107곳으로 중국이 42곳, 미국이 40곳을 차지한다. 일본 기업도 5곳이 이름을 올렸는데 한국 기업은 없다. 대기업 중심으로 제조업 밸류체인이 구축되면서 상대적으로 제조 스타트업 육성과 투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기술 개발부터 스케일업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B2B(기업간 거래) 사업모델이 많다”며 “유니콘기업으로 키우기 위해선 지속적인 투자와 밸류체인 안에서 균형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으로 국내 제조 스타트업에 기회가 생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2차전지 분야에서 우리가 중국을 이기기 쉽지 않았지만 ‘편 가르기’로 기회가 열렸고 챗GPT 열풍 덕분에 AI 반도체 분야도 좋다”며 “태양광 방위산업 등 제조업 분야에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AI 반도체·2차전지 분야 ‘유니콘’ 줄 잇나

AI 반도체, 2차전지 스타트업에 뭉칫돈이 몰리면서 유니콘기업이 다수 나올 전망이다.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컨트롤러를 주력으로 하는 파두는 지난달 진행한 프리IPO(상장 전 지분 투자)에서 기업가치를 1조800억원으로 평가받으며 팹리스 반도체 스타트업 가운데 첫 유니콘기업이 됐다. 지난해 매출 560억원을 넘어서고 영업이익도 흑자로 전환했다.

빠른 속도에 강점이 있는 리벨리온과 AI 연산에 강점이 있는 퓨리오사AI는 각각 카카오벤처스와 네이버 D2SF에서 투자받았다. 리벨리온은 지금까지 1120억원을 유치했으며, 퓨리오사AI는 2000억원 규모로 시리즈C 라운드를 진행 중이다.

2차전지 양극재 스타트업 에스엠랩은 누적 기준 1056억원을 투자받았으며, 바나듐 전지 스타트업 스탠다드에너지와 에이치투에도 지금까지 각각 975억원, 510억원이 몰렸다. 이달 첫 민간 로켓 한빛-TLV 발사에 성공한 이노스페이스도 345억원을 투자받았다.

○해외 진출 확대하는 제조 스타트업

완성품을 만드는 제조 스타트업은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햄버거 패티 조리 로봇과 완전 자동조리 모듈 로봇을 개발한 에니아이는 햄버거 본고장인 미국에 본사를 설립하고, 올해 100개 납품 및 계약을 목표로 잡았다. 드림에이스는 미국 베트남 대만 등에 협력사를 확보하고 글로벌 완성차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세연 드림에이스 공동대표는 “한국의 ‘제조강국’ 이미지 덕분에 제조 스타트업의 해외 투자 유치와 시장 진출이 좀 더 수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 대상 제품 시장도 국내에 한정돼 있지 않다. 3D 스캐닝 맞춤 안경 브랜드 브리즘을 운영하는 콥틱은 최근 미국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소비자 직접 판매(D2C)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저주파 미니 마사지기 클럭으로 시작한 데일리앤코는 스트레칭 마사지기로 제품군을 확대하고 침대 메트리스 브랜드 몽제를 출시해 일본과 싱가포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21년 기준 매출 1130억원, 순이익 127억원을 올렸다.

한 제조 스타트업 대표는 “K콘텐츠의 인기 덕분에 완성품 시장의 고객군이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 중동으로 확대됐다”며 “온라인 D2C 시장을 글로벌로 확장하는 게 매우 유리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 소형가전·웰니스 기기 ‘봇물’

이 밖에 스타트업이 제조·기획한 다양한 스마트 소형가전이 잇달아 시장에 나오고 있다. 건강 관리를 돕는 웰니스 제품도 인기다.

가상으로 헤어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스마트 미러를 제조하는 미러로이드, 아마존의 알렉사 스피커 모듈을 장착한 액자와 조명을 생산하는 나팔, 수면관리용 조명기기를 만든 루플, 코골이 완화 베개를 출시한 텐마인즈 등이 있다. 고퀄은 스마트홈 카메라 등 홈 IoT 제품을 판매 중이다.

즉시 잠김 기능을 적용한 스마트 도어록 키인을 출시한 라오나크와 가정용 구강 모니터링 기기를 개발한 스마투스코리아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3’에서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워치 제품은 세계적으로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장애인 보조기기 제조 스타트업 닷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스마트워치에 이은 촉각 디스플레이 ‘닷 패드’로 CES 2023에서 최고혁신상을 거머쥐었다. 인핸드플러스는 환자가 언제 어떤 약물을 복용하는지 분석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와 복약 관리 솔루션으로, 리베스트는 휘어지는 배터리를 장착한 스마트워치 밴드 ‘아르테닉스’로 CES 2023 혁신상을 받았다.

신생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 서울시는 이달 용산구 원효전자상가 6동에 용산시제품제작소를 열었다. 제작소에는 전자회로 설계, 3D 모델링, 제조 엔지니어 12명이 상주해 있어 과정별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창업 7년 미만인 스마트 소형가전 스타트업 40곳을 선발해 제작소가 제품 개발부터 제조·판매·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을 공동 개발 형태로 지원할 계획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