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대주주가 없어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금융지주사와 포스코, KT 등의 최고경영자(CEO)는 사외이사들이 뽑는다. 회사마다 ‘OOO후보추천위원회’로 이름만 다를 뿐 사외이사가 후보를 발굴하고 평가를 거쳐 CEO를 선정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문제는 금융지주사의 경우 현재 CEO가 차기 CEO 후보를 정하는 권한을 쥔 사외이사들을 선임하는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외이사 선임에 금융지주 회장 입김…'장기 집권' 길 터줘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34명의 지난해 3분기까지 주요 안건(30건) 찬성률은 96.7%에 달했다. 반대표는 변양호 전 신한금융 사외이사가 던진 한 건뿐이었다.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가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외이사 선임 방식도 논란거리다. 사외이사들로 꾸려진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천거하는 ‘셀프 추천’ 방식이어서다. 현 경영진이 이사회 사무국을 통해 사외이사 후보 추천 단계에 개입하는 것도 가능한 구조다. 해당 사업 분야의 전문성이 없더라도 퇴직한 고위 공직자와 법조인, 교수 등 사회 명망가는 누구나 사외이사를 맡을 수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2001년 금융지주가 출범한 이후 4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연임에 실패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라응찬 신한금융 초대 회장(4연임)과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4연임)은 10년 가까이 회장을 지냈다. 한 전직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회장의 영향력 아래 사외이사가 추천되고, 그 사외이사들이 다시 회장 선임을 결정한다”며 “금융지주는 회장부터 사외이사까지 모두 ‘셀프 연임’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금융지주 회장은 처음 되기가 어렵지 한 번 되면 10년은 간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KT와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퇴임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2002년 민영화 이후 KT의 수장 가운데 초대 이용경 사장을 제외한 네 명 중 두 명은 연임을 시도하다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물러났다.

2000년 민영화된 포스코도 최정우 회장 이전 수장 8명 가운데 임기를 채우고 퇴임한 CEO는 한 명도 없다. 전임 권오준 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1개월 만인 2018년 4월 임기를 2년 남기고 돌연 사퇴했다. 당시 권 전 회장은 문 대통령 해외 방문 경제사절단에서 번번이 제외됐다.

김보형/이상은/김재후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