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주식과 회사채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금리 인상 기조와 증시 침체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기업들의 자금 경색이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증시 한파에 싸늘해진 IPO·유상증자

大魚급 IPO 줄줄이 연기…'AA급 회사채' 발행금리도 年 5% 넘어
1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들어 기업공개(IPO)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지난 3분기 공모금액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0분의 1토막 수준으로 급감한 IPO 시장은 4분기 들어서 더욱 얼어붙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4분기 ‘IPO 대어’로 꼽히던 골프존커머스와 라이온하트스튜디오가 지난 13일 나란히 공모를 철회했다. 컬리와 골프존카운티, 케이뱅크 등은 상장 심사를 통과한 지 2개월여가 지났지만 공모 시기를 확정하지 못했다. LG CNS 등 이달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할 것으로 예상됐던 곳들도 연말 이후로 일정을 연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증시 침체와 금리 급등으로 인해 투자심리가 위축되자 IPO 시장이 냉각기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시장 상황이 악화하면서 기업이 생각한 적정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워졌다. 쏘카, 더블유씨피 등 3분기 몸값을 낮춰 IPO를 한 기업들이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면서 투자심리가 더욱 싸늘해졌다는 평가다.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도 연말로 갈수록 환경이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올해 3분기까지 국내 상장사의 유상증자 발행 규모는 13조1947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15조9191억원)보다 약 17% 감소했지만 작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증시 변동성이 커지자 유상증자가 철회되거나 불발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올 4월 1317억원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던 쇼박스는 투자자인 마음캐피탈그룹(MCG)이 증자 대금 납입을 거절해 이달 초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했다. 유상증자를 통한 목표 자금 조달에 실패하는 사례도 다수 나왔다. 에어부산, SK리츠, 카이노스메드 등이 대표적이다.

우량 회사채도 고금리에 발행

회사채 시장도 냉각기가 이어지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미매각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신용등급 AA급 우량채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수요예측을 시행한 메리츠금융지주(AA급)와 SK리츠(AA-급)는 모집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회사채 완판에 성공한 초우량 기업들도 웃지 못하고 있다. 조달 금리가 연 5%를 넘어서 이자 부담이 커진 탓이다. CJ제일제당(AA급)은 3년 만기 회사채를 연 5.084% 금리에 발행했다. GS에너지(AA급)도 2·3년 만기 회사채를 모두 5% 넘는 고금리에 조달했다.

A급 이하 비우량채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들어 수요예측을 진행한 콘텐트리중앙(BBB급), 삼척블루파워(A+급), SK렌터카(A급)에서 줄줄이 미매각 사태가 벌어졌다.

마땅한 투자처를 구하지 못하면서 회사채 발행 일정도 내년으로 연기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회사채 시장 ‘큰손’ 중 하나인 롯데그룹 계열사들도 조달 환경 악화로 발행 일정을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석철/장현주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