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내년부터 현지에서 생산된 전기자동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처리에 들어갔다. 아직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는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지 생산 계획을 앞당기고 생산 모델도 더 늘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美 전기차 '보조금 확보전'…속타는 현대차

“아이오닉 5·EV6 미국 생산해야”

미국 상원은 6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 1차안을 51 대 50으로 통과시켰다. 최대 20시간 논의 및 수정, 하원 송부와 조 바이든 대통령 서명 절차가 남아 있다. 이번주 초 모든 절차가 완료될 것이라는 게 현지 업계의 전망이다.

이 법안은 3690억달러 규모의 ‘그린 부양안’이 핵심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그린뉴딜’처럼 세계 그린산업 빅뱅의 트리거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산업계에선 새로운 전기차 보조금 지급안에 주목하고 있다. 이달 법안이 통과하면 내년부터 북미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적용하고,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대당 7500달러의 보조금을 세액공제 형태로 지급한다.

현대차·기아는 아직 미국에서 생산 중인 전기차가 없어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대차 아이오닉 5, 기아 EV6는 전량 한국에서 생산 중이다. 현대차는 오는 11월 GV70 전기차, 기아는 내년 하반기 EV9을 미국에서 생산할 예정이지만 경쟁에서 이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새로 짓기로 한 조지아 전기차 공장은 2025년에야 완공된다.

현대차가 당장 미국 전략을 전면 재수립하더라도 노동조합 반발이 걸림돌이다. 단체협약에 따라 국내에서 생산 중인 모델을 해외로 옮기려면 노조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 생산을 앞당기지 않으면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칠 수 있어 결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북미 전기차 시장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지난달 미국 전기차 점유율은 7.6%를 기록, 4위로 두 계단 내려앉았다. 테슬라가 독주하는 가운데 포드(10.4%)가 2위, 폭스바겐(8.5%)이 3위를 차지했다. 현대차·기아의 점유율 하락은 화물연대 파업으로 수출 선적이 줄어든 데다 현지 경쟁 모델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K배터리는 추가 러브콜 받을 듯”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 중인 제너럴모터스(GM), 포드와 각각 합작공장을 짓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에는 이번 법안이 사업 확장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두 회사는 이미 미국에 공장을 가동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완성차업체뿐 아니라 유럽, 일본 브랜드의 추가 파트너십 요청이 잇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법안엔 배터리 셀당 에너지 용량이 20Wh를 넘겨야 한다는 규정도 포함됐다. 생산 중인 원통형은 소형으로, 셀당 에너지 용량이 15~18Wh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에너지 용량이 20Wh 이상인 원통형 배터리를 연내 생산하기 시작해 규제에 대응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미국에 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배터리 공장이 없지만, 지금으로선 이 기준을 충족하는 원통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업체가 거의 없어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형규/김일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