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못한 쇼핑몰이 책임져라"…유통가에 튄 '크레빌 불똥'
“쇼핑몰이면 입점업체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요?”

지난 25일 서울 한강로 HDC아이파크몰 소비자센터에 모인 영어 키즈카페·어학원 크레빌의 ‘먹튀 사태’ 피해자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아이파크몰에 책임을 따져 물었다. 아이파크몰 관계자는 “크레빌 명도가 이뤄진 뒤에나 법적 검토를 할 것”이라며 환불해 줄 수 없다고 맞섰다.

▶본지 4월 22일자 A31면 참조

대형 쇼핑몰·백화점들이 크레빌 먹튀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전국 1000여 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이 “입점업체를 관리하지 못했다”며 유통사의 연대 책임을 요구하면서다. 판매수수료, 보증금 유무 등 입점 계약 조건이 다 달라 크레빌을 입점시킨 유통사들의 책임을 놓고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백화점으로 튄 크레빌 불똥

28일 피해자와 경찰 등에 따르면 수개월치 이용료를 미리 결제한 회원들은 크레빌 경영진이 잠적한 뒤 카카오톡 대화방을 개설해 환불 요구에 불응하는 유통업체에 대해 집단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HDC아이파크몰 지점 회원들은 매일 오전과 오후로 나눠 항의차 방문하고 있다. 전국 11개 크레빌 직영점 이용자의 1인당 피해금액은 100만~7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2016년 설립된 크레빌은 전국 11개 직영점과 가맹점 4곳을 운영하는 선불형 영어키즈카페·어학원이다. 프리미엄 영어교육 콘텐츠로 입소문이 나며 학부모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관리못한 쇼핑몰이 책임져라"…유통가에 튄 '크레빌 불똥'
크레빌은 소득 수준이 높은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아이파크몰을 비롯해 현대백화점 롯데몰 등 유명 브랜드 쇼핑몰과 백화점에 직영점을 입점시켰다. 울산 롯데백화점 지점 피해자 최모씨는 “크레빌 이름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롯데백화점이라는 브랜드를 보고 아이를 맡겼다”며 “자기 간판을 내준 백화점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통사들의 대응은 엇갈리고 있다.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은 사건 이후 이틀 동안 환불해줬다. 재차 “소비자 환불을 책임지고 하겠다”고 공지했다. 롯데쇼핑도 마찬가지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전국 롯데백화점, 롯데몰 소비자의 피해가 전혀 없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HDC아이파크몰은 “고객 환불 취소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공지했고, 전주 DK몰은 ‘법적 책임이 없어 환불이 불가하다’는 내용을 피해자들에게 통보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크레빌과의 매장 임대 계약 조건에 따라 업체마다 법적 책임 유무와 정도가 다 다르다”며 “보증금이 크거나 판매수수료율이 높은 경우 유통사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에 일부 업체가 적극적인 보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법적 책임 없지만, 도의적 책임 져야”

유통업체들은 “우리도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크레빌이 잠적하면서 임대료, 판매수수료 모두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유통사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법적으로 유통사의 관리 책임 의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공정거래법상 유통사는 입점 업체의 경영에 간섭할 수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유통사에 대한 규제가 많아 민법 판례상 유통사의 책임 범위가 크진 않다”고 설명했다.

유통사가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쇼핑몰은 일종의 플랫폼이기에 거래 중재자가 돼야 한다”며 “플랫폼사가 소비자 피해를 외면한다면 기업 이미지에도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구민기/이광식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