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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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이모씨(34)는 지난해 2월 은행에서 신용대출 1억원을 받아 서울 노량진의 9억원대 아파트를 ‘갭 투자(전세 끼고 매수)’했다. 남은 대출금 일부는 한 암호화폐를 샀다. 연 2%대였던 A씨 신용대출 금리는 올 들어 4%대까지 뛰었고, 한때 원금의 두 배 가까이 불어났던 코인도 급전직하했다. 그는 최근 코인 계좌에서 자금을 전액 인출해 연말 성과급 등을 합쳐 신용대출을 모두 갚았다. 이씨는 “더 이상 코인에 돈을 넣어뒀다간 장기간 물릴 수 있다는 생각에 대출 이자라도 아껴보자는 차원에서 빚을 모두 갚은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대출로 코인 투자했던 직장인, 1억 빚 모두 갚은 이유

두 달 연속 감소한 가계대출 잔액

27일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에 따르면 이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23일 기준)은 전달 말보다 8355억원 줄어든 706조854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1월에도 전년 말 대비 1조3634억원 감소한 데 이어 두 달 연속 감소세가 확실시된다.

개인들의 체감 이자부담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대출 가중평균금리(예금취급은행 신규 취급 신용대출 금리 기준)는 2020년 6월 연 2.93%에서, 작년 말 연 5.12%까지 올라갔다. 5대 은행 신용대출 잔액은 전년 말보다 2조4938억원 급감한 137조634억원으로 집계됐다.

최근 주택시장의 하향 안정세로 주택담보대출도 이달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5대 은행 주담대 잔액(23일)은 506조1350억원으로 1월 말 대비 6831억원 줄었다.

이는 지난 수년간 전례가 없었던 현상이라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코로나 시기의 ‘유동성 파티’가 점차 끝나가는 가운데 자산시장을 관망하던 개인이 ‘빚투(빚내서 투자)’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리만 날리는 은행 영업점

최근 대도시 은행 영업점에선 신용대출 및 부동산 대출 중도상환, 햇살론 등 정책금융상품 연체율 증가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리 상승과 글로벌 인플레 확산으로 위험자산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빚을 내기보다 갚는 사람이 늘고 있다.

주택 거래 자체가 줄면서 구도심의 은행 지점에선 신규 주담대 문의 자체가 끊기다시피 했다. 서울 아현동의 한 은행 지점장은 “어떻게 하면 (대출 규제를 피해) 잔금일에 맞춰 정상적으로 대출받을 수 있겠느냐며 문의가 빗발쳤던 작년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왜 고정금리 대신 변동금리로 대출받게 해서 이런 고생을 시키느냐며 원망하거나 중도상환을 묻는 고객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올 들어 강화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대책도 잔액 감소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고액 신용대출의 만기를 연장하려면 은행별로 연봉 이내 혹은 연봉의 1.5배 이내로 재약정해야 하는데 그만큼 대출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의 한 은행 지점장은 “고액 신용대출의 한도를 유지하려면 장기분할상환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어떤 방식이든 현금흐름 측면에서 지금보다 개인 차주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향후 금리가 더 오르면 한계 차주들의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은행 고위 임원은 “현 상황대로라면 연초 금융당국이 설정했던 가계대출 증가율(4~5%)은 오히려 금융회사들의 희망 사항이 될 것”이라며 “여기에다 경기 위축까지 동반될 경우 각 은행의 자금 운용 고민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진우/빈난새/김대훈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