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해외 출장 가능성은 지난 9월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 부회장이 직접 움직여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설비 투자 등의 안건을 정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실제 해외 출장이 성사된 것은 11월 중순이다. 경제계에선 빡빡한 재판 일정 탓에 이 부회장의 출장이 늦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14일 경제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합병 등과 관련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이 열리는 매주 목요일엔 꼼짝없이 법정에 나가야 한다. 다만 다음 목요일인 오는 18일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져 공판 일정이 없다. 이 부회장은 이 같은 일정을 고려해 해외 출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이상의 시간을 번 만큼 미국 주요 거래처 관계자를 두루 만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의 입국은 다음 재판이 예정된 25일에 임박한 시점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이 해외 출장을 갈 수 있는지 여부는 지난 8월 가석방 출소 당시에도 화제였다. 일반적으로 가석방 상황에선 출국이 쉽지 않다. 형 집행 완료 때까지 보호관찰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취업이 제한된 게 아니냐는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에 따르면 징역형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반도체 투자와 코로나19 백신 확보 등 전 국민의 관심사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8월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에 대해 “취업이라 보긴 어렵지 않으냐”며 “이 부회장은 몇 년째 무보수이고 비상임, 미등기 임원”이라고 말했다. 또 “이 부회장은 미등기 임원이기 때문에 이사회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고 언급해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이 취업 제한 위반은 아니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선 이렇게라도 미국 방문이 성사된 것에 대해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공장 최종 부지 결정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모더나 코로나 백신 확보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내년 백신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출장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