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제너럴모터스(GM)가 투자한 전고체 배터리 스타트업 솔리드에너지시스템(SES)에 공동 투자자로 참여한 것은 ‘가볍고 오래가는’ 배터리 기술 확보 차원에서다. 글로벌 완성차 제조업체의 최대 과제는 미래형 ‘모빌리티(이동 수단)’ 시장 선점이다. 현행 리튬이온 전지의 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기술 확보에 완성차 업체들이 사활을 거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번 투자를 독립 기술 확보를 추구하는 현대차의 ‘배터리 내재화’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모빌리티 '심장'도 만든다…현대차 '배터리 기술독립' 한발 앞으로

“차세대 기술 확보 위한 제휴도 불사”

모빌리티 '심장'도 만든다…현대차 '배터리 기술독립' 한발 앞으로
현대차는 올초 연구개발본부 내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위한 연구진을 대폭 강화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취임 첫 일성으로 도심항공이동수단(UAM) 등 차세대 모빌리티를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제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사장) 지휘 아래 완전 고체형(all solid) 배터리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SES에 대한 1억달러 투자는 자체 개발과 제휴를 동시에 전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SES는 전고체 일종의 리튬메탈배터리(LMB) 분야 선두 주자다. 실제 자동차에 적용 가능한 상용화 직전의 ‘프로토타입’을 GM과 공동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025년 본격 상용화를 목표로 GM과 보스턴에 생산 공장도 지을 예정이다.

SES가 연내 상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도 현대차의 투자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배터리 스타트업 중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부터 1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받은 곳은 SES와 퀀텀스케이프(QS, 폭스바겐과 제휴)가 유일하다. 지난해 9월 시가총액 33억달러(약 3조8000억원)에 스팩 합병 방식으로 상장한 QS의 시가총액은 지난 2일 기준 108억달러(약 12조3000억원) 규모다.

강화되는 한·미 배터리 동맹

전문가들은 이번 투자를 계기로 한·미 배터리 동맹이 더욱 공고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전기차의 ‘심장’으로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LIB)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다. 전기차업계 관계자는 “2010년 초반에 A123이라는 배터리 선도 기업이 망한 이후 미국은 배터리 제조 기반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으며, 이 공백을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 등 한국 기업이 메워줬다”고 말했다.

한·미 산업 동맹을 가속화하는 또 다른 동력은 중국과의 대결이다. 자국 수요를 바탕으로 글로벌 1위 배터리 공급사로 부상한 중국의 CATL은 폭스바겐의 유력한 합작사로 거론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GM과 2개의 배터리 생산 공장을 미국에 짓기로 하고, SK이노베이션이 최근 포드와 6조원 규모로 복수의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기로 한 것은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맞대응 전략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GM이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서 한·미 공동 전선을 펼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차로선 미국의 UAM 시장(2030년 360조원 전망)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라는 점도 SES 투자의 또 다른 효과다. 현대차는 항공교통으로서 UAM 상용화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열릴 것으로 판단하고 미국에 ‘제네시스 에어 모빌리티’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국내에선 수소연료전지에 기반한 물류운송용 UAM 개발에 주력하고, 전기 배터리를 활용한 UAM은 2024년 미국에서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LG 등 국내 기업도 차세대 기술 총력전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내재화에 속도를 내면서 기존 배터리 공급사들도 대응 전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배터리 업체들은 대체로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 시점을 2030년 이후로 점친다. 그때까진 기존 LIB의 성능을 높여 전고체 배터리에 버금가는 효율을 낸다는 전략이다. ‘하이니켈’ 배터리가 그중 하나다. 배터리 양극재 소재 중 하나인 니켈 함량을 높일수록 배터리 성능이 개선될 수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 연구다.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기술을 보유하는 것과 대량 생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기술을 내재화하더라도 원하는 수준의 가격에 양산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동휘/도병욱/안재광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