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이 로봇산업에 뛰어든다. 수년 내 물류 로봇과 서비스 로봇 등을 양산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3개 계열사와 정의선 그룹 회장(사진)이 11일 미국 로봇개발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분 80%를 8억8000만달러(약 9558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도 로봇산업 진출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정 회장도 사재 2390억원을 투자해 지분 20%를 확보한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기술과 현대차그룹의 대량생산 능력을 접목해 글로벌 로봇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로봇시장 매년 30% 성장 전망

정의선 회장 첫 M&A는 1조 로봇 회사…사재 2400억 투자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이동수단) 서비스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로봇산업 진출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완전자율주행 시스템을 구현하려면 차량에서 최종목적지까지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 로봇이 필요하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협업이 가능하다. 자율주행과 커넥티드카 서비스에는 최첨단 인지 및 제어 기술이 필수적인데, 이들 기술은 로봇산업의 핵심이기도 하다.

글로벌 로봇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시장 규모가 올해 444억달러(약 48조원)에서 2025년 1772억달러(193조원)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년 30%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부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성장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현대차그룹 외 도요타, 닛산, 혼다,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와 콘티넨탈, 보쉬 등 글로벌 부품업체도 로봇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개발한 사족보행 로봇 개 '스팟'과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현대자동차 제공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개발한 사족보행 로봇 개 '스팟'과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현대자동차 제공

자율주행·모빌리티사업과 시너지

관건은 현대차그룹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시너지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구글과 소프트뱅크에 인수됐지만 각각 5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보유한 기술력과 별개로 사업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두 발 또는 네 발로 걷는 로봇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로봇 개’와 두 발로 걸어다니다 물구나무서기, 공중제비 같은 고난도 동작을 하는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기업 특유의 고집이 있어 구글 등 기존 대주주와 제대로 시너지를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며 “현대차그룹이 부품 공급 및 양산 등을 총괄해야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보유한 기술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인지 기술을 자율주행 및 도심항공모빌리티(UAM)에 적용하고, 외부환경 변화에 따라 정밀하게 각 부문을 구동하는 제어기술은 자동차 안전성을 높이는 데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우선 시장 규모가 큰 물류 로봇 시장에 진출한다. 이후 건설 현장 감독이나 시설 보안 등의 역할을 하는 서비스형 로봇 사업에도 투자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사람과 비슷한 ‘휴머노이드 로봇’도 개발한다.

차량용 반도체 사업도 강화

자동차업계에서는 정의선 회장 체제의 현대차그룹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대차 미래 사업의 50%는 미래자동차, 30%는 UAM, 20%는 로봇”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 10일 ‘CEO 인베스터데이’ 행사를 열고 2025년까지 60조1000억원을 연구개발 및 미래기술 확보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모비스가 이날 현대오트론의 반도체 사업 부문을 1332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도 미래차 분야에서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분산된 차량용 반도체 개발 부문을 한데 모아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현대오트론의 소프트웨어 부문과 현대엠엔소프트 등 그룹 내 소프트웨어 계열사들은 현대오

에버에 합병된다. 그룹 관계자는 “미래차의 경쟁력은 결국 소프트웨어에서 나온다”며 “그룹 내 소프트웨어 3사의 경쟁력을 모아 미래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병욱/이선아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