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오르자 방 빼고 위스키를 택한 미소…아무리 아껴도 집 못 사니 '욜로족' 된 건 아닐까
“쌀 좀 남는 거 있어? 집에 쌀이 떨어져서.”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이솜 분)는 젊은 가사도우미다. 몇 푼 안 되는 일당으로 단칸방 월세를 감당하느라 쌀을 사는 것도 빠듯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는 게 있다. 담배 한 갑과 몰트바에서의 위스키 한 잔이다. 멋 없는 새치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 따로 약도 지어 먹는다. 거기에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만 있으면 세상은 살 만하다. 그러나 갑작스레 월세와 담뱃값이 오르면서 그동안의 삶이 틀어지고 만다.

가격 올려도 담배는 포기 못해

월세 오르자 방 빼고 위스키를 택한 미소…아무리 아껴도 집 못 사니 '욜로족' 된 건 아닐까
2018년 개봉한 ‘소공녀’는 고전 소설 《소공녀(A little Princess)》와 이름이 같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미소 서식지·미생물 등이 사는 환경). 집 대신 자신만의 작은 ‘취향’을 선택한 청년 미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쥐꼬리 월급으로 월세와 담배, 위스키값을 모두 감당할 수 없게 된 미소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 최소한의 짐만 싸서 집을 뛰쳐 나온다. 대신 과거 밴드를 함께했던 친한 친구들의 집에 돌아가며 머무르기로 한다.

미소는 왜 ‘유랑민’이 되기를 선택했을까. 갑작스레 물가가 올라서다. 집주인은 월세를 올렸다. 설상가상으로 2500원이던 담뱃값은 하루아침에 4500원이 됐다. 정부가 담배에 붙이는 세금을 높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왜 담배에 붙는 세금을 올렸을까.

대부분의 사회에서 흡연은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담배를 피울수록 흡연으로 인한 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간접 흡연으로 인한 피해도 많다. 흡연자가 늘어날수록 정부의 건강보험료 등 사회적 지출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특정 경제 주체의 행동이 다른 주체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을 ‘외부 불경제’라고 한다. 술, 담배, 패스트푸드 생산 기업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이런 경우 정부는 외부 불경제 효과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높이기도 한다. 일종의 죄악세(sin tax)다.

월세 오르자 방 빼고 위스키를 택한 미소…아무리 아껴도 집 못 사니 '욜로족' 된 건 아닐까
<그림1>에서 정부가 기대한 것은 세금을 높여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담뱃값을 높이면 그만큼 담배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영화 속 미소 역시 집을 떠나면서도 담배는 놓지 못한다. ‘에쎄’를 500원 더 싼 ‘디스’로 바꿀지언정 말이다. 정부의 계산과 달리 담배의 수요 탄력성이 낮았던 셈이다. 수요 탄력성이란 가격에 따라 수요가 변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미소에게 담배와 위스키는 수요 탄력성이 없는, 즉 가격이 올라도 포기할 수 없는 재화였다.

평온함 뒤에 기회비용 있었네

미소는 최소한의 짐만 싸가지고 나와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산다. 이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문영, 부모님의 단독 주택에서 사는 록이, 결혼해 번듯한 가정을 꾸린 현정, 아파트 한 채를 자가로 마련한 대용, 부잣집에 시집간 정미까지. 이들은 모두 오랜 친구인 미소에게 “얼마든지 지내다 가라”며 남은 방을 내어준다.

그러나 곧 친구들의 속살이 하나둘 드러난다. 겉은 번지르르했던 친구들의 한구석은 모두 곪아 있었다. 번듯한 집에 시집간 것 같았던 현정과 정미는 남편과 시부모의 등쌀을 하루하루 견디며 살고 있었다. 대용은 결혼을 위해 집을 마련했지만 결혼하자마자 이혼한 상태였다. 남은 것은 월급에 버금가는 주택담보대출 빚이었다. 문영은 회사 쉬는 시간마다 링거를 맞으며 버텼고, 록이는 부모님의 간섭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에게 그때그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쪽은 미소였다.

미소의 친구들은 왜 그렇게 힘든 현실을 버텼을까. 경제학적으로는 기회비용이 적은 쪽을 선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집이나 회사가 주는 안정감이 더 컸기 때문에 자유라는 기회비용을 감내한 셈이다.

월세를 벌었는데 왜 남는 돈은 없을까

결국 미소가 각 집에서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어느 집에서도 ‘가시방석’ 신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정미는 자신의 집에 머무르는 미소에게 “요즘 담뱃값이 올랐다던데, 집이 없을 정도로 돈이 없으면 나 같으면 독하게 끊었겠다”고 일침을 놓는다. 미소는 “알잖아. 나 술담배 사랑하는 거”라고 답한다. 정미는 “그것(술담배) 때문에 집도 하나 못 구해가지고, 우리 집에 와 지내면서 다 이해해주길 바라는 네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 안 드니?”라고 꼬집는다. 그러나 미소는 한결같다. 월세를 아껴 여윳돈이 생기자 ‘디스’ 대신 더 비싼 ‘에쎄’를 피울 뿐이다.

정미와 미소의 삶은 왜 이렇게 다를까. 경제학자 케인스는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소비를 비교하면서 ‘한계소비성향’이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한계소비성향은 추가로 발생한 소득 중 소비되는 금액의 비중을 뜻한다. 저소득자일수록 한계소비성향이 크다고 케인스는 정의한다. 예를 들어 보자. 월 수입이 100만원인 사람은 소득이 10% 늘어나면 10만원을 다 소비할 확률이 높다. 생필품이나 식음료를 사는 데 곧장 지출하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입이 1000만원인 사람은 소득이 10% 늘어나면 100만원을 다 쓰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대신 이 금액을 저축하거나 투자하게 된다. 이런 한계소비성향 때문에 소득이 많은 사람은 자산이 더 빨리 늘어난다.

경제학 법칙 무너뜨린 부동산 폭등

그러나 케인스도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케인스는 한계효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경제 주체가 소비를 늘리는 요인으로 △자산 증가 △물가 하락 △이자율 감소 △미래 소득 증가 등을 들었다. 이 같은 요인이 맞아떨어질 때 개인이 돈을 더 많이 쓰게 된다는 설명이다. 미소의 삶에는 이들 중 어떤 것도 없다. 집이 없으니 자산이 증가할 일은 없다. 물가는 해마다 오르고 비정규직인 가사도우미 월급도 크게 늘 리 없다. 그래도 미소는 마지막까지 담배 한 개비에 몰트 위스키 한 잔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미소가 ‘현재의 소비’를 택한 건 아등바등 살아봤자 자신의 힘으로 ‘집’이라는 자산을 얻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기 때문일 수도 있다. 최근 사회적 흐름으로 대두된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문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차피 열심히 돈을 벌어도 집을 사기는 어려우니 차라리 포기하고 현재를 즐기겠다는 태도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스몰 럭셔리’(작은 사치) 등도 그런 일환이다. 부동산 폭등 때문에 경제학 법칙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된 셈이다.

영화 속 미소는 결국 친구들의 집을 영영 떠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소는 한강변에 텐트를 치고 산다. 텐트 속에서 백발이 된 채 서울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텐트를 전전하면서도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못하는 미소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일종의 판타지다. 그러나 현실의 청년들에게는 잡지도 못할 만큼 값이 오른 ‘서울 집’ 역시 판타지이긴 매한가지일 듯하다.

신혼집 위해 사우디로 간 한솔, 돈 벌었어도 천정부지 집값에…그의 약속은 실현 불가능

영화 ‘소공녀’ 후반 미소(이솜 분)의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은 웹툰 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다. “5000만원을 벌어 돌아와 집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시간이 흘러 한솔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둘은 새 집에서 행복하게 재회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집값이 그 사이 천정부지로 더 올랐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2014년이다. 국내 부동산 가격은 2014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오름세를 보였다.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한 것이 계기였다. 현 정부 들어서는 상승세가 더 가팔라졌다. 2017년 6월 서울 평균 아파트 가격(KB부동산시세 기준)은 3.3㎡당 1967만원에서 지난해 12월 2845만원까지 올랐다. 3년 반 만에 44.6%나 급등했다.

월세 오르자 방 빼고 위스키를 택한 미소…아무리 아껴도 집 못 사니 '욜로족' 된 건 아닐까
정부가 각종 규제를 쏟아내는데 부동산 가격은 왜 계속 오르는 걸까. 정부는 대출을 조이고 조세 부담을 높이는 방식으로 부동산 수요를 억제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대책을 통해 <그림2>의 주택 수요 곡선이 왼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 경우 부동산 가격은 떨어진다. 그러나 이 같은 대책의 약발은 매번 ‘반짝 효과’에 그쳤다.

공급을 늘리지 않은 채 수요만 억제하는 방식이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 초과이익환수제 등으로 재건축·재개발을 억제하고 있다. 서울시는 재건축 때 층수 제한도 강화했다. 이 때문에 공급은 계속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내집 마련’을 하고자 하는 수요는 줄지 않았다. <그림2>에서 수요 곡선은 정부의 기대와 달리 반대로 이동했다.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공급 곡선만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가격은 더욱 오른 것이다.

세금 인상은 다른 부작용까지 수반한다. 집주인이 세금 상승분을 고려해 전·월세 가격을 올려 세입자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 그런 사례다. 경제학원론에서는 이를 ‘조세부담의 귀착’이라고 부른다. 수요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더 걷는 정책이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솔의 ‘내집 장만’의 꿈도 신기루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약속대로 5000만원을 벌어왔다고 하더라도 단칸방 전세조차 들어가기 어려운 금액이기 때문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를수록 청년들의 좌절감은 그만큼 커진다. 이들에게는 영화보다 영화 밖 현실이 어쩌면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