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그룹을 이끌게 된 김남호 회장은 ‘준비된 총수’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지분 상속은 2000년대 초반에 끝났다. 김 회장은 DB그룹에서 금융과 제조 부문 지주회사에 해당하는 DB손해보험(지분율 9.01%)과 DB Inc(16.83%)의 최대주주다. 2015년부터 그룹의 싱크탱크인 DB금융연구소에서 근무하며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업무를 맡는 등 후계자 수업도 착실히 받았다.

"후계자 대우 없이 현장서 훈련받은 준비된 총수"
경제계에선 올해 초부터 김 회장이 연내 그룹을 물려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창업주인 김준기 전 회장은 지난해 세 번째 암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다. 2017년 9월 취임한 이근영 회장은 고령으로 체력 부담이 커져 여러 번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DB그룹이 적절한 시기에 2세 경영을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김 회장은 세간에서 상상하는 재벌 2세들과는 전혀 다른 성장 과정을 거쳤다. 부친인 김 전 회장의 엄격한 교육관 때문이다. 김 회장은 미국 미주리주의 소도시 풀턴에 있는 웨스트민스터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김 전 회장이 한인이 많은 대도시로 유학을 가면 학업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한국인이 거의 없는 소도시의 기숙사 학교를 골랐다는 후문이다.

군 복무지도 범상찮다. 김 회장은 훈련이 혹독하기로 유명한 강원 인제 육군 3포병여단에서 병장으로 제대했다. “남자라면 군대에서 고생을 해봐야 한다”는 김 전 회장의 지론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이 군 복무 중 몸무게가 20㎏ 넘게 빠질 정도로 고된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입사 후에도 ‘후계자 대우’는 없었다. 김 회장의 첫 근무지는 과거 DB그룹 계열사였던 동부제철 당진 공장이었다. 현장 근로자들과도 격의없이 어울려 대부분은 김 회장을 평범한 인사팀 직원으로 알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김 회장이 그룹 경영에 뛰어든 것은 DB금융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2015년부터다.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조 부문 지주회사인 DB Inc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동부팜한농, 동부대우전자 매각에도 깊이 관여했다. 최근에는 2015년부터 채권금융회사 공동관리(워크아웃)를 받아온 DB메탈의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DB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은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금융 전문가”라며 “성장률이 둔화된 금융사업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