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4%로, 1965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낮았다. 이마트 서울 용산점 신선식품 매장에서 31일 소비자들이 상품을 고르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2019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4%로, 1965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낮았다. 이마트 서울 용산점 신선식품 매장에서 31일 소비자들이 상품을 고르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2019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년 내내 0%대와 마이너스를 오감에 따라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하락에 따른 경기침체)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가 나빠지자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이로 인해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해 경기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끌어올려 전체 임금 수준이 상승했음에도 0%대 물가를 기록했다는 것은 디플레이션 초입에 다다랐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4년 만에 0%대 물가

통계청이 31일 내놓은 ‘2019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2019년 소비자물가는 1년 전에 비해 0.4% 상승했다. ‘메르스 사태’가 터지고 중국 경기 둔화와 유가 하락까지 겹쳤던 2015년(0.7%) 이후 4년 만에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를 기록했다.
불황에 지갑 닫고 기업은 실적악화 악순환…전문가 "디플레 초입"
근원물가도 0.9% 상승에 그쳐 1999년(0.3%) 이후 가장 낮았다. 근원물가란 계절 요인이나 일시적 충격에 따른 물가 변동분을 제외하고 장기적인 추세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하는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를 뜻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0.7% 상승했다. 역시 1999년(-0.2%) 이후 최저다.

품목별로 보면 석유류(-5.7%)와 농·축·수산물(-1.7%)이 전체 물가를 각각 0.26%포인트, 0.13%포인트 끌어내렸다. 반면 개인서비스(1.9%)는 전체 물가를 0.59%포인트 끌어올렸다. 집세와 공공서비스는 각각 0.1%, 0.5% 떨어졌다. 지출 목적별로는 식료품·비주류 음료가 농·축·수산물 가격 하락 등으로 보합을 나타냈다. 의류 및 신발(0.1%)은 1985년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낮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통신(-2.3%)과 교통(-1.8%)은 각각 2012년(-2.6%), 2009년(-3.5%) 이후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수요를 끌어올리는 힘이 크지 않은 가운데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가격 하락, 무상교육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으로 소비자물가가 역대 가장 낮은 상승률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저물가는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 하락 등 공급 측면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2020년 소비자물가는 연간 1.0%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디플레이션 우려도

2019년을 포함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였던 적은 총 세 번이다. 메르스 사태(2015년)나 외환위기 직후(1999년) 등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충격’이 가해졌을 때 예외적으로 0%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2019년엔 금융위기 등 외부 충격이 없었음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를 기록한 것은 그만큼 소비 부진이 심각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상승률이 낮은 데는 정부 설명대로 공급 측 요인이 아주 없지는 않다”면서도 “최근 들어서는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수요부진 요인이 저물가에 더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물가가 지속하는 가운데 집값 거품이 터지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면 자산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디플레이션 우려도 제기된다. 디플레이션은 물가상승률이 상품과 서비스 전반에서 일정 기간 지속해서 0% 아래로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수요가 급격하게 위축돼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가격이 하락하거나 매출이 증가하지 않을 때 가계와 기업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면 제품을 사거나 투자할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의 저물가는 수요 위축 때문으로 보는 게 맞다”며 “디플레이션 초입에 다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2019년 물가가 워낙 낮아 2020년엔 그보다는 올라갈 것”이라며 “그럼에도 정상적인 물가상승률 정도에서 상당히 이탈했기 때문에 정부는 수요 부진에 따른 저물가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짜야 한다”고 했다.

이태훈/성수영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