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첫 직업은 화가가 아니었다. 가난한 재봉사의 아들이었던 그는 열세 살 때 도자기 공장에 들어가 접시 위에 꽃무늬를 그리는 일을 했다.손재주를 타고나 손이 빨랐고 솜씨가 좋았다. 결국 그의 손끝은 캔버스 위로 옮겨갔다. 미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클로드 모네를 비롯한 동료 화가들을 만났고, 함께 야외로 나가 빛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상주의가 탄생했다.‘안락의자에 앉은 여인’은 1874년 인상주의의 태동기에 그린 작품이다. 그림에는 초기 인상주의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인상주의 이전 미술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전통적인 회화와 인상주의 그림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빛의 처리다. 아카데미에서는 명암을 정교하게 단계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르누아르는 빠른 붓질로 여인의 얼굴과 팔 위로 쏟아지는 빛의 느낌을 표현했다.또다른 차이점은 초점이다. 여인의 모습은 선명하지만 안락의자와 배경은 비교적 흐릿하다. 마치 카메라 렌즈로 여인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아카데미 회화에서는 화면 전체를 균일하게 마감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르누아르는 시선이 가는 곳만 선명하고 나머지는 흐리게 뒀다. 이는 우리 눈이 실제로 세상을 보는 방식에 가깝다.마지막으로 마감이다. 이 그림에는 붓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피부는 매끄럽지 않고, 배경은 대충 처리한 것처럼 보인다. 당시 아카데미 기준으로 이 작품은 ‘그리다 만 그림’이었다. 인상주의가 당대 비평가들에게 욕을 먹은 주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르누아르에
2024년 여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 중 하나인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5층.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와 같은 거장들의 방을 지나면 39번 방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방혜자(1937~2022)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국 출신인 그의 작품들을 최고 거장들의 옆에 나란히 놓은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그를 잘 몰랐다. 방혜자 작가의 국공립미술관 회고전이 열린 적조차 한번도 없었다.청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는 작가 타계 4년만에 뒤늦게 열린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이 전시에는 작품 67점과 아카이브 200여점이 나왔다. 퐁피두센터 소장품 8점, 파리 시립 세르누치박물관 소장품 9점 등 절반 이상이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문학 소녀, 빛을 좇는 화가로방혜자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경기도 고양군 능동(현재 서울) 아차산 아랫마을에서 7남매 중 가장 허약한 아이로 태어났다. 집 근처 개울가에서 햇빛이 물결 속 조약돌 위로 반짝이는 광경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그는 생각했다. ‘저 빛을 내 손으로 표현하고 싶다.’6·25 전쟁 때 얻은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요양차 찾아간 수덕사에서 노스님에게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과 병고를 거치면서 어둠을 밝히는 빛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처음 관심을 가진 건 문학이었다. 학창시절 그는 랭보와 보들레르에 빠진 문학소녀였다. 경기여고 시절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반에 들어간 것이 방혜자를 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유영국과 김병기의 현대미술연구소에서 추상미술에
서울 광화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해머링 맨’은 흥국생명빌딩 앞에서 높이 22m, 무게 50t의 거인이 천천히 망치질을 하는 설치 작품이다. 조너선 보롭스키가 2002년 설치한 이후 지난 24년 동안 구부정한 자세로 묵묵히 망치질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은 매일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직장인들을 위로하는 듯하다.그런 위로의 공간이 흥국생명빌딩 건물 안에도 있다. 2~3층에서 도심 속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세화미술관이다. 사립미술관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컬렉션과 전시 기획을 자랑하는 이 미술관이 최근 전시장을 새로 단장하고 기획전 두 건을 동시에 열었다. 먹고 만지고 듣는…오감 전시2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은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전시다. 이원우의 ‘상냥한 왕자’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남을 돕는 왕자의 이야기를 담은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를 소재로 삼은 작품. 화요일, 일요일 오후 3시마다 작품 앞에서는 직원이 솜사탕 기계로 솜사탕을 만든 뒤 관람객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퍼포먼스가 진행된다.퍼포먼스를 할 때마다 달콤한 솜사탕 향이 전시장을 채운다. 선우지은 세화미술관 큐레이터는 “뜬구름처럼 잡기 어려운 행복을 솜사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예솔의 작품 ‘동그라미를 잘 굴리는 방법’은 관객이 쇠구슬과 나무 바퀴를 직접 굴려 흔적을 남기는 체험형 작품이다. 이를 통해 관객의 행동과 대화를 이끌어내고, 엄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관 공간을 생동감 있게 만든다. 정만영의 ‘순환하는 소리’는 눈이 아닌 청각을 자극하
“엽서 아니야?”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 걸린 모린 갈라스(66·사진)의 그림을 처음 마주한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 손바닥 두 개 정도에 불과한 그림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감상이 달라진다. 화면을 거의 덮을 만큼 큰 붓자국 덕분에 한 번의 붓질이 하늘과 바다, 집이 된다. 그 사실을 눈앞에서 느끼는 순간, 엽서 같던 그림은 갑자기 넓어 보이기 시작한다.지금 글래드스톤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갈라스는 미국 뉴욕대(NYU)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30년 넘게 풍경화를 그려온 화가다. 201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시카고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풍경화가다.갈라스의 그림들은 주제가 비슷하다.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의 집, 해안, 꽃 등이 반복된다. 구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갈라스를 평생 비슷한 주제를 그렸던 폴 세잔(1839~1906), 조르조 모란디(1890~1964) 같은 화가들과 비교하곤 한다.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갈라스는 “같은 주제라도 새롭게 그릴 것들은 늘 남아있다”며 “대상에 생명을 불어넣을때까지, 끝장을 낼 때까지 그리려고 한다”고 말했다.갈라스는 사진을 토대로 작품을 구상한다. 실제 사진과 똑같이 그리는 건 아니다. 그는 “에드워드 호퍼가 뉴욕 풍경을 그릴 때 실제 모습과 다르게 그렸던 것처럼, 마음에 드는 비례와 느낌으로 고쳐 그린다”고 말했다.그래서 그가 그리는 집은 현실과 미묘하게 다르다. 갈라스의 집 그림에는 사람이나 가구가 없고, 문이나 창문조차 없을 때도 있다. 비평가들은 이 빈 집에서 미국 사회의 불안,
올해로 15주년을 맞은 비(非)서울권 최대 아트페어 아트부산이 다음달 21~2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아트부산은 올해 행사에 참가하는 갤러리와 주요 프로그램을 28일 공개했다. 가나아트, 국제갤러리, 조현화랑, 리안갤러리 등 국내 주요 갤러리들과 함께 글래드스톤 갤러리, 탕 컨템포러리 아트, 화이트스톤 등 18개국 총 110여개 갤러리가 참가한다.부산 최대 아트페어답게 출품작도 화려하다. 글래드스톤은 우고 론디노네 신작 회화 3점과 알렉스 카츠 대형 회화를 내건다. 국제갤러리는 줄리안 오피의 작품으로 솔로 부스를 구성했고, 조현화랑은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구마 겐고의 작품을 선보인다. 리안 갤러리는 이강소와 에디 마르티네즈를 함께 걸고, 우손갤러리는 하반기 예정인 유키마사 이다 개인전을 프리뷰 형식으로 공개한다.올해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섹션 구성이다. 설립 5년 이하 신진 갤러리 23곳이 참여하는 '퓨처' 섹션에서는 하나금융그룹이 '하나퓨처아트어워드'를 통해 신진 작가 3인을 선정해 부스를 지원한다. '라이트하우슨' 섹션은 갤러리 부스 자체를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프로그램이다. 4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홍정욱 작가의 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부스를 꾸민다. '커넥트' 섹션에서는 기관과 갤러리가 협업해 5개 전시를 선보인다. 호주 시드니의 갤러리 엘엔엘이 서용선의 작품을 준비했다.이 밖에 김은주·이인미 작가의 스튜디오 투어, 홍승혜 작가의 토크 프로그램, 부산시립미술관·부산현대미술관 연계 프로그램 등도 마련된다. 올해부터 총괄 기획을 맡은 정선주 이사는
산에서 막 내려온 화가 박고석(1917~2002)은 작업실로 직행해 흙과 돌가루가 엉겨 붙은 등산화를 신은 채 캔버스 앞에 섰다. 산에서 얻은 영감이 생생할 때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도봉산, 내설악, 외설악, 치악산, 백학봉…. 50대에 시작한 산행은 그를 ‘산의 화가’로 만들었다.평양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박요섭이다. 1935년 일본 유학을 떠나며 ‘오래된 돌’이라는 뜻의 ‘고석’이란 호를 스스로 붙였다. 니혼대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10년을 일본에서 보냈지만 도쿄 대공습으로 초기작은 모두 잿더미가 됐다. 광복 후 서울에 정착해 배화여고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1·4후퇴 때 부산 범일동 공동묘지 근처에 판자 작업실을 지었다. 이 시절 그는 이중섭과 한집에 살 만큼 절친했다. 1956년 이중섭이 40세로 요절했을 때 유해 일부를 건네받아 1년간 집에 모신 게 그였다.한때 추상화 실험에 매진하던 박고석은 50대에 접어들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자신의 호처럼 우직하게 산을 그렸다. 지금 서울 대치동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전시에서 그의 작품 ‘외설악’을 만날 수 있다.성수영 기자
“엽서 아니야?”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 걸린 모린 갈라스(66)의 그림을 처음 마주한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 가로 30cm를 넘지 않는, 손바닥 두 개 정도에 불과한 그림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감상이 달라진다. 화면을 거의 덮을 만큼 큰 붓자국 덕분에 한 번의 붓질이 하늘과 바다, 집이 된다. 그 사실을 눈앞에서 느끼는 순간, 엽서 같던 그림은 갑자기 넓어 보이기 시작한다.지금 글래드스톤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갈라스는 미국 뉴욕대(NYU)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30년 넘게 풍경화를 그려온 화가다. 201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시카고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풍경화가다.갈라스의 그림들은 모두 주제가 비슷비슷하다.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의 집, 해안, 꽃 등이 반복된다. 구도도 대부분 엇비슷하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갈라스를 평생 비슷한 주제를 그렸던 폴 세잔(1839~1906), 조르조 모란디(1890~1964) 같은 화가들과 비교하곤 한다.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갈라스는 “같은 주제라도 새롭게 그릴 것들은 늘 남아있다”며 “대상에 생명을 불어넣을때까지, 끝장을 낼 때까지 그리려고 한다”고 말했다.갈라스는 사진을 토대로 작품을 구상한다. 실제 사진과 똑같이 그리는 건 아니다. 그는 “에드워드 호퍼가 뉴욕 풍경을 그릴 때 실제 모습과 다르게 그렸던 것처럼, 마음에 드는 비례와 느낌으로 고쳐 그린다”고 말했다.그래서 그가 그리는 집은 현실과 미묘하게 다르다. 갈라스의 집 그림에는 사람이나 가구가 없고, 문이나 창문조차 없을 때도 있
지금 한국에서 역사적 인물 가운데 최고의 화제는 단연 단종(1441~1457)이다. 숙부에게 왕위를 억울하게 빼앗기고 쫓겨나 열여섯 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소년왕. 그 이야기를 다룬 ‘왕과 사는 남자’는 최근 1600만 관객을 넘기는 대흥행을 기록했다. 그런데 지난 40년 가까이 단종 이야기를 묵묵히 그려온 화가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역 화가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용선(75)이다.서 작가가 단종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서른다섯 살이던 1986년이다. 단종이 마지막 나날을 보낸 강원 영월군에서 친구와 단종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단종을 소재로 인간의 비극을 그려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구 미술에 비해 한국 미술에서는 역사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 충분치 않다는 문제 의식도 있었다. 그 길로 붓을 든 그는 이때까지 유화 150여 점, 드로잉 350여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남겼다.서용선의 그림은 예쁘지 않다. 얼굴은 뒤틀려 있고, 선과 색은 거칠다. ‘잘 그렸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이는 의도된 것이다. 역사화를 기록화처럼 정밀하게 재현하는 대신, 단종이라는 인간이 처한 상황의 긴장과 불안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다.붉은색도 마찬가지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선택한 장치다. 단종이 영월에서 썼던 시 자규사(子規詞)의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붉은 꽃이 진다’는 구절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서울 4개 갤러리(갤러리밈·디스코스온아트·아트스페이스3·갤러리JJ)와 강원 영월관광센터 등 5곳에서 서용선의 단종 그림 40주년을 기념하는 합동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단종 역사화의 궤적을 정리한 단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역사적 인물은 단연 단종(1441~1457)이다. 숙부에게 왕위를 억울하게 빼앗기고 쫓겨나 열여섯 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소년왕. 그 이야기를 다룬 '왕과 사는 남자'는 최근 1600만 관객을 넘기는 대흥행을 기록했다. 그런데 지난 40년 가까이 단종 이야기를 묵묵히 그려온 화가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역 화가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용선(75)이다.서 작가가 단종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서른다섯 살이던 1986년이다. 단종이 마지막 나날을 보낸 강원도 영월에서 친구와 단종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단종을 소재로 인간의 비극을 그려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구 미술에 비해 한국 미술에서는 역사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 충분치 않다는 문제 의식도 있었다. 그 길로 붓을 든 그는 이때까지 유화 150여 점, 드로잉 350여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남겼다.서용선의 그림은 예쁘지 않다. 얼굴은 뒤틀려 있고, 선과 색은 거칠다. ‘잘 그렸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이는 의도된 것이다. 역사화를 기록화처럼 정밀하게 재현하는 대신, 단종이라는 인간이 처한 상황의 긴장과 불안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다.붉은색도 마찬가지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선택한 장치다. 단종이 영월에서 썼던 시 자규사(子規詞)의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붉은 꽃이 진다’는 구절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서울 4개 갤러리(갤러리밈·디스코스온아트·아트스페이스3·갤러리JJ)와 강원도 영월관광센터 등 5곳에서 서용선의 단종 그림 40주년을 기념하는 합동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단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미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하나다. 전세계 어디에서든 그의 작품이 전시되는 장소엔 관객이 구름처럼 몰린다.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잡아끄는 건 붓질이다.내면의 격정과 고통을 담아 두껍게 쌓아올린 물감, 화면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거친 붓자국은 스크린이나 인쇄된 그림으로는 느낄 수 없다. 직접 원화 앞에 서서 캔버스 위에 남은 물감의 두께와 결, 붓이 지나간 방향과 속도를 눈으로 따라간 관객만이 130여 년 전 고흐가 붓을 휘두르던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다음달 28일부터 8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에는 고흐의 작품 두 점이 포함돼 있다. 1886년 고흐가 프랑스 파리에 체류할 때 그린 ‘카네이션이 있는 꽃병’, 1890년 오베르에 체류할 때 그린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다.‘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는 고흐가 남긴 작품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림이다. 고흐는 37년 인생의 대부분을 방황하며 보냈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판매원, 책방 점원, 탄광촌의 전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27세에 화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불과 10년 남짓의 시간 동안 고흐는 유화 약 860점, 소묘 약 1200점을 남겼다.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는 1890년 7월,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한 달 전에 그린 작품이다.그림의 분위기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고흐 작품의 분위기와 다소 차이가 있다. 수평적인 안정감과 청량한 색채 덕분에 그림은 평온하면서도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우아즈 강변이 고흐에게 마음의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2017년 개봉해 전세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미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하나다. 전세계 어디에서든 그의 작품이 전시되는 장소엔 관객이 구름처럼 몰린다.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잡아끄는 건 붓질이다.내면의 격정과 고통을 담아 두껍게 쌓아올린 물감, 화면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거친 붓자국은 스크린이나 인쇄된 그림으로는 느낄 수 없다. 직접 원화 앞에 서서 캔버스 위에 남은 물감의 두께와 결, 붓이 지나간 방향과 속도를 눈으로 따라간 관객만이 130여 년 전 고흐가 붓을 휘두르던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다음달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하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에는 고흐의 작품 두 점이 포함돼 있다. 1886년 고흐가 프랑스 파리에 체류할 때 그린 ‘카네이션이 있는 꽃병’, 1890년 오베르에 체류할 때 그린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다. 이 중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는 고흐가 남긴 작품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림이다.격정 속 한순간의 평온함고흐는 37년 인생의 대부분을 방황하며 보냈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판매원, 책방 점원, 탄광촌의 전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괴팍한 성격 때문에 번번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랬던 고흐가 화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건 27세였던 1880년이 돼서였다. 그가 제대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10년 남짓. 그 짧은 시간 동안 고흐는 유화 약 860점, 소묘 약 1200점을 남겼다.‘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는 1890년 7월,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한 달 전에 그린 작품이다. 37세였던 고흐는 당시 남프랑스 생레미의 정신병원을 나와 파리 북서쪽의 작은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에 머
그 남자는 평생 자기 집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평생 남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지요. 한곳에 머물다가 떠나고, 또 다른 집에 들어가 살다가 또 떠나고…. 그런 떠돌이 생활이 끝없이 반복됐습니다.가난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는 돈을 꽤 잘 벌었습니다. 화가였던 그는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었습니다. 은행가와 미술상들이 줄 서서 그의 그림을 샀습니다. 하지만 번 돈을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맨손으로 출발한 뜨내기였습니다. 집을 살 만큼 돈을 모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폐병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항상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그에게 미래를 준비할 여유는 없었습니다.그런데 그가 그린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했습니다. 화려한 파티가 열리고, 아름다운 공원에서 귀족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장면. 37세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는 자신이 결코 초대받을 수 없는 파티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들은 서양미술사에서 ‘로코코’라고 불리는 화려한 미술의 시대를 엽니다. 로코코를 만든 화가, 앙투안 바토(1684~1721)의 이야기. 파리의 이방인1684년 바토는 프랑스 북부의 도시 발랑시엔에서 지붕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지만, 그림에는 재능이 있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8세가 된 바토는 돈도 연줄도 없이 파리로 떠납니다.무일푼으로 며칠을 걸어 도착한 파리. 그곳의 사람들은 바토에게 차가웠습니다. 바토의 고향인 발랑시엔은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땅이 아니었습니다. 스페인이 지배하던 네덜란드의 영토를 루이 14세가 전쟁으로
빈센트 반 고흐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미술사의 두 거장이 남긴 그림이 아름답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파블로 피카소도 그렇다. 그림을 잘 몰라도 다른 화가 작품과 뭔가 다르다는 건 척 보면 알 수 있다.우리의 이해는 대개 여기까지다. 어째서 이 작품들이 감동적이고 위대하다는 건지, 왜 인류 역사상 불멸의 명작으로 남은 건지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서양미술사 책을 한 번쯤 사본 경험은 있을 테다. 하지만 책장을 넘긴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큰맘 먹고 산 미술사의 벽돌책은 장식용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도심 곳곳에 세계적인 미술관과 명화가 즐비한 뉴욕, 런던, 파리와 달리 국내에서는 원화를 실제로 만나기 어렵다. 이런 명작이 아직도 교과서에 실린 삽화로만 느껴지는 이유다.한국경제신문사가 미국 디트로이트 미술관과 함께 5월 28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 2관에서 개막하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은 모처럼 열리는 체계적인 서양미술사 전시다. 전시에는 르누아르, 에드가르 드가, 폴 세잔, 고흐, 앙리 마티스, 바실리 칸딘스키, 피카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의 작품이 등장한다. 인상주의부터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추상 등 미술사 교과서의 목차와 함께 반드시 나오는 이름들이다.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이어진 서양 미술의 흐름이 이들의 명작 52점을 통해 전시장에 펼쳐진다. 빛을 그린 인상주의 화가들의 시선이 이후 어떤 작품으로 이어졌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디트로이트를 ‘모터시티’로만 연상한다면 더 의미
사람들이 ‘이건희 컬렉션’에 열광하는 건 단지 작품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재력과 안목을 지닌 인물이 직접 고른 수집품이라는 사실이 후광을 더한다. 한 사람이 확고한 기준으로 핵심적인 작품을 골라 쌓은 컬렉션은, 마구잡이로 긁어모은 작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지닌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음달 28일 개막하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에 나오는 소장품 대부분이 그런 컬렉션에서 나왔다.디트로이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동차, 쇠락 그리고 파산이다. 2013년 미국 역대 최대 규모의 지방자치단체 파산을 겪은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다. 하지만 이 도시에 있는 디트로이트 미술관(DIA)은 그 이미지와 정반대다. 1885년 설립돼 소장품 6만5000점을 갖춘 이 미술관은 ‘미국 6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힌다.쇠락한 산업 도시에 이런 탁월한 미술관이 존재하는 건, 디트로이트가 미국 자동차산업의 수도로 전성기를 보내던 시절에 탁월한 안목을 가진 관장과 기증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미국에서 DIA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설명은 ‘빈센트 반 고흐 작품을 가장 일찍 구입한 미국의 미술관’이다. 주인공은 1924년부터 1945년까지 미술관을 이끈 빌헬름 발렌티너 관장. 그는 고흐, 에드가르 드가, 클로드 모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같은 화가들이 아직 미국에서 거장 대우를 받지 못할 때 선제적으로 작품을 구입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그가 1922년 뉴욕 플라자호텔 경매에서 고흐의 ‘자화상’(1887)을 4200달러에 낙찰받은 것이다. 지금 가치로 약 7만5000달러(약 1억1000만원
경기 남양주 봉선사 동종(사진)이 23일 국보로 승격됐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지 63년만이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조선 전기 양식을 대표하는 봉선사 동종은 조선 8대 임금 예종(재위 1468~1469)이 아버지 세조(재위 1455~1468)의 명복을 빌기 위해 광릉 인근에 봉선사를 건립하면서 제작했다. 중국 동종에서 흔히 보이는 양식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한국 고유의 문양 요소를 더한 게 특징이다.당대 문장가이자 화가로 이름난 강희맹(1424~1483)이 짓고 정난종(1433~1489)이 쓴 글이 새겨져 있다. 국가유산청은 “균열과 구조적 결함이 거의 없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고 설명했다.국가유산청은 이날 고려시대 상감 청자인 ‘청자 상감쌍룡국화문 반’과 조선시대 초상화·보관함 유물인 ‘유효걸 초상 및 궤’도 각각 보물로 지정했다. 13세기 제작으로 추정되는 ‘청자 상감쌍룡국화문 반’은 안쪽 바닥에 물결 흐름을 형상화한 문양과 두 마리 용이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최진영/성수영 기자
데이미언 허스트, 백남준, 김윤신, 이배 등 국내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가 진행 중인 작가들의 작품이 경매에 대거 나왔다.오는 29일 서울 신사동 본사에서 열리는 케이옥션 경매에서는 허스트의 작품 네 점을 비롯해 총 101점, 약 104억원 규모의 작품들이 새 주인을 찾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벌이고 있는 허스트의 2019년작 ‘리서검’은 지름 213.4cm의 대형 원형 캔버스에 수천 마리의 나비 날개를 빼곡히 배치한 작품으로, 추정가는 7억~13억원이다. 이와 함께 ‘버젯/럭셔리’(5억∼9억원)와 ‘시편 115: 논 노비스, 도미네’(2억5000만∼4억원), ‘멜라민’(1억6000만∼3억원) 등이 함께 나왔다.5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이 예정돼 있는 유영국의 ‘작업(Work)’은 시작가 5억원에 출품됐다. 전성기로 분류되는 1965년작이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회고전 중인 김윤신의 ‘합이합일 분이분일 2020-3’은 재활용 목재 위에 아크릴을 더한 작업이다. 나무 결을 따라 분절과 결합을 반복하는 구조를 통해 생명성과 순환의 개념을 드러냈다. 추정가는 4500만∼9000만원이다.전날인 28일 서울옥션이 서울 신사동 강남센터에서 여는 경매에는 141점(약 88억원 규모)의 작품이 출품됐다. 간판 작품은 원주 뮤지엄 산에서 전시가 진행중인 이배의 회화 ‘불로부터’. 추정가는 2억6000만~4억5000만원으로 책정됐다.지금 서울 용산동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는 백남준의 작품 ‘김활란 박사’(사진)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최초 여성 박사 김활란을 모티프로 제작한 비디오 설치 작품으로 추정가는 1억5000만~3억원이다. 작
데이미언 허스트, 백남준, 김윤신, 이배 등 국내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가 진행 중인 작가들의 작품이 경매에 대거 나왔다. 미술관 전시로 작가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을 겨냥한 출품이다.오는 29일 서울 신사동 본사에서 열리는 케이옥션 경매에서는 허스트의 작품 네 점을 비롯해 총 101점, 약 104억원 규모의 작품들이 새 주인을 찾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벌이고 있는 허스트의 2019년작 '리서검'은 지름 213.4㎝의 대형 원형 캔버스에 수천 마리의 나비 날개를 빼곡히 배치한 작품으로, 추정가는 7억~13억원이다. 이와 함께 '버젯/럭셔리'(5억∼9억원)와 '시편 115: 논 노비스, 도미네'(2억5000만∼4억원), '멜라민'(1억6000만원∼3억원) 등이 함께 나왔다.5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이 예정돼 있는 유영국의 ‘작업(Work)’은 시작가 5억원에 출품됐다. 전성기로 분류되는 1965년작이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회고전 중인 김윤신의 '합이합일 분이분일 2020-3'은 재활용 목재 위에 아크릴을 더한 작업이다. 나무 결을 따라 분절과 결합을 반복하는 구조를 통해 생명성과 순환의 개념을 드러냈다. 추정가는 4500만∼9000만원이다.전날인 28일 서울옥션이 서울 신사동 강남센터에서 여는 경매에는 141점(약 88억원 규모)의 작품이 출품됐다. 간판 작품은 원주 뮤지엄 산에서 전시가 진행중인 이배의 회화 '불로부터'. 추정가는 2억6000만~4억5000원으로 책정됐다.지금 서울 용산동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는 백남준의 작품 ‘김활란 박사’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최초 여성 박사 김활란을 모티프로 제
서울 삼청동 백아트 전시장. 갤러리 벽에 붙은 이상한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시침과 분침 없이 초침만 덜렁 남아 있지만, 그 초침마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초침 끝에 묶여 있는 실 가닥의 무게 때문이다. 작품명은 ‘쓰레드 클락(Thread Clock·사진)’. 작품은 이게 전부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그런데 잠시 서 있으면 초침을 눈이 따라가기 시작한다. 애써 나아가려 하지만 가라앉는 초침의 모습에 감정이입을 하는 관객도 있다.미국 로스엔젤레스(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개념미술 작가 B.고(B. Koh)의 개인전 ‘제이 스컬쳐 쇼(J Sculpture Show)’가 열리고 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참여한 기록을 제외하면 국내에 거의 이력이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작가다. 오직 작품만 봐줬으면 좋겠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라고.그리 넓지 않은 전시장에는 그의 개념미술 작품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헤어 플라이’는 천장에서 내려온 머리카락 끝을 파리처럼 뭉쳐둔 작품이다. 진짜 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가 뒤늦게 머리카락임을 깨닫게 된다. ‘웻 체어’는 천장에 매달린 전구가 플라스틱 의자 위에 고인 물웅덩이에 닿도록 설치된 작품이다. 물이 서서히 마르면서 작품의 모습도 변한다.개념미술 작품인 만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시각적으로 압도되는 경험, 살아 숨 쉬는 붓질이나 조각의 생생한 양감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별것 아닌 것 같은 사물 앞에서 생각지 못한 감각이 느껴지는 순간을 즐길 준비가 돼 있다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전시는 5월 2일까지.성수영 기자
죽은 아들을 무릎에 안고 있는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 자국이 없습니다. 대신 어머니는 하늘을 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레밍케이넨의 어머니’. 핀란드 신화를 소재로 한,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입니다.핀란드의 신화 속 용사인 레밍케이넨은 공주를 구하러 모험을 떠났다가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시신은 토막 나 버려졌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나섰습니다. 어머니는 강바닥에서 아들의 몸을 하나씩 건져 올려 꿰매 붙였습니다. 그래도 숨이 돌아오지 않자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신은 꿀벌을 보냈습니다. 꿀벌이 가져오는 신의 꿀이 닿으면 아들은 되살아날 것입니다. 어머니가 울지 않는 이유는 아들이 곧 살아날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이 그림이 완성될 당시 핀란드의 상황이 딱 이랬습니다. 핀란드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처럼 외세의 오랜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림을 그린 화가는 믿었습니다.그림을 그리기 2년 전, 화가는 네 살 난 딸을 잃었습니다. 딸은 죽음에서 살려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통해 나라는 살려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핀란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화가, 핀란드의 국기와 지폐를 디자인했던 국민 화가 악셀리 갈렌칼렐라(1865~1931) 이야기. 사라져 가는 나라의 화가북유럽에 있는 나라 핀란드. 이곳에 사는 핀란드인의 조상은 시베리아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이주해 온 사람들입니다. 오랫동안 부족 생활을 하던 이들은 12세기부터 약 600년 동안 스웨덴 왕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지배층은 스웨덴어를 썼습니다. 학교에서도 신문에서도 모두 스웨덴어
“이것만 끝내놓고 좀 쉴 거야.”2013년 이두식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은 홍익대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정년퇴임 기념전 개막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튿날 새벽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40년 넘게 힘찬 원색을 캔버스에 쏟아부은 화가다운 마지막이었다.1947년 경북 영주의 사진관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그림 공부를 따로 하지 않고도 서울예술고와 홍익대에 진학했다. 젊은 시절 생활고에 시달리며 처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수출용 이발소 그림’을 5년간 그리면서도 밤에는 자기 그림을 그렸다. 1980년대 후반 이두식은 한국 전통 오방색을 사용해 삶의 환희를 표현한 ‘잔칫날’ 연작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995년 이탈리아 로마시의 의뢰로 로마 지하철 플라미니오역에 가로 14m짜리 대형 모자이크 벽화를 남겼다.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다시 만난 축제’는 이두식 13주기를 기념한 회고전이다. 잔칫날 연작을 비롯해 회화와 드로잉 6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5월 5일까지.성수영 기자
서울 돈암동 458-1. 지금은 숙박업소가 서 있는 이 자리에 80년 전 ‘성북회화연구소’라는 문패를 단 화실이 있었다. 젊은 시절의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 근현대 조각의 선구자 권진규(1922~1973), 추상화 선구자 남관(1911~1990)이 한 자리에 모여 그림을 그렸다. 그 중심에 화실을 연 한국 근대미술 거장 이쾌대(1913~1965)가 있었다.1945년 해방 직후 한국 미술계는 정치판이었다. 작가들은 좌우로 나뉘어 정치색을 띤 기념전과 모금전에 앞다퉈 참여했다. 하지만 성북회화연구소에 모인 작가들은 정치 대신 미술에만 집중했다. 이념이 어떻든, 미술사조가 어떻든 예술을 사랑하는 작가라면 누구나 연구소에서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었다. 이쾌대, 성북회화연구소를 열다서울 성북동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1946, 성북회화연구소’는 그 시절 연구소에 몸담았던 작가들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자리다. 연구소 출신의 현대미술 주요 예술가 30여명 가운데 12명의 작품 40점과 관련 기록을 모았다. 지난달 개막한 이 전시는 국내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올 상반기 최고의 전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이렇게 존재감 있는 전시가 구립미술관 규모에서 가능했던 건 성북구립미술관의 특수성 때문이다. 성북구립미술관은 2009년 전국 최초의 ‘구립’ 공립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성북구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기까지 화가와 조각가들이 밀집해 살았던 한국 근현대미술의 중심지. 미술관은 이런 지역적 자산을 바탕으로 연고 작가들을 꾸준히 연구해왔다. 지역 밀착형 연구에서는 웬만한 국립미술관 못지않은 전문성을 쌓아온 셈이다.이번 전시는 2024년 베네치아비엔
서울 돈암동 458-1. 지금은 숙박업소가 서 있는 이 자리에 80년 전 ‘성북회화연구소’라는 문패를 단 화실이 있었다. 젊은 시절의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 근현대 조각의 선구자 권진규(1922~1973), 추상화 선구자 남관(1911~1990)이 한 자리에 모여 그림을 그렸다. 그 중심에 화실을 연 한국 근대미술 거장 이쾌대(1913~1965)가 있었다. 1945년 해방 직후 한국 미술계는 정치판이었다. 작가들은 좌우로 나뉘어 정치색을 띤 기념전과 모금전에 앞다퉈 참여했다. 그림의 주제도, 전시 이유도 정치가 결정했다. 하지만 성북회화연구소에 모인 작가들은 정치 대신 미술에만 집중했다. 이념이 어떻든, 미술사조가 어떻든 예술을 사랑하는 작가라면 누구나 연구소에서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족적은 그대로 한국 현대 미술사가 됐다.이쾌대, 성북회화연구소를 열다서울 성북동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1946, 성북회화연구소’는 그 시절 연구소에 몸담았던 작가들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자리다. 연구소 출신의 현대미술 주요 예술가 30여명 가운데 12명의 작품과 관련 기록을 모았다. 지난달 개막한 이 전시는 국내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올 상반기 최고의 전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이렇게 존재감 있는 전시가 구립미술관 규모에서 가능했던 건 성북구립미술관의 특수성 때문이다. 성북구립미술관은 2009년 전국 최초의 ‘구립’ 공립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성북구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기까지 화가와 조각가들이 밀집해 살았던 한국 근현대미술의 중심지. 이쾌대가 보문동에 살았고, 권진규의 아틀리에(동선동)는 지금도 등록문화재
1936년 11월, 일제강점기 경성의 미술품 경매장 ‘경성미술구락부’.국화와 난, 벌레가 그려진 백자병 하나를 놓고 숨 막히는 경합이 벌어졌다. 한·중 문화재들을 대량으로 미국과 유럽에 팔아넘기던 일본의 거상(巨商) 야마나카 상회 관계자를 비롯해 수많은 일본인이 호가 경쟁에 뛰어든 끝에 최종 낙찰가는 1만4580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는 값이었다. 작품을 낙찰받은 이는 조선인 간송 전형필(1906~1962). 백자병은 훗날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라는 이름의 국보가 됐다.1922년 일본인 골동상들이 세운 경성미술구락부는 조선 최대의 미술품 거래 기관이었다.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 등 해외로 빠져나가는 주요 통로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간송은 1930년부터 1944년까지 14년간 사재를 아낌없이 털어 유물들을 지켰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간송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오는 15일 여는 특별전 ‘문화보국(文化保國)’은 국보 1건, 보물 1건 등 총 46점의 유물을 통해 그 경매 현장을 되짚는 전시다.전시장인 보화각 2층의 ‘조선 회화’ 섹션은 간송 수집의 핵심을 보여준다. 그는 특정 시대나 화가에 치우치지 않고 조선 전 시기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고루 수집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남기기보다는 우리 그림의 역사를 보존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였다.심사정과 강세황의 합작 ‘표현연화첩’은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그가 구입해 해외 유출을 막은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일본인인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장, 조선총독부 외무국장의 소장을 거쳐 1943년 경매에 나온 것을 간송이 낙찰받았다. 이 밖에도 장승업의 ‘팔준도&r
1936년 11월, 일제강점기 경성의 미술품 경매장 ‘경성미술구락부’. 국화와 난, 벌레가 그려진 백자병 하나를 놓고 숨 막히는 경합이 벌어졌다. 한·중 문화재들을 대량으로 미국과 유럽에 팔아넘기던 일본의 거상(巨商) 야마나카 상회 관계자를 비롯해 수많은 일본인이 호가 경쟁에 뛰어든 끝에 최종 낙찰가는 1만4580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는 값이었다. 작품을 낙찰받은 이는 조선인 간송 전형필(1906~1962). 백자병은 훗날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라는 이름의 국보가 됐다. 1922년 일본인 골동상들이 세운 경성미술구락부는 조선 최대의 미술품 거래 기관이었다.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 등 해외로 빠져나가는 주요 통로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간송은 1930년부터 1944년까지 14년간 사재를 아낌없이 털어 유물들을 지켰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간송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오는 15일 여는 특별전 ‘문화보국(文化保國)’은 국보 1건, 보물 1건 등 총 46점의 유물을 통해 그 경매 현장을 되짚는 전시다.전시장인 보화각 2층의 ‘조선 회화’ 섹션은 간송 수집의 핵심을 보여준다. 그는 특정 시대나 화가에 치우치지 않고 조선 전 시기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고루 수집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남기기보다는 우리 그림의 역사를 보존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였다.심사정과 강세황의 합작 ‘표현연화첩’은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그가 구입해 해외 유출을 막은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일본인인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장, 조선총독부 외무국장의 소장을 거쳐 1943년 경매에 나온 것을 간송이 낙찰받았다. 이
쾅!1926년 6월 7일 저녁,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길거리. 길을 건너던 추레한 행색의 노인이 노면전차(트램)에 치여 날아갔습니다. 갈비뼈는 부러져 숨을 잘 쉬지 못했고, 두개골도 골절된 것 같았습니다.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노인의 신원을 파악하려고 낡은 옷을 뒤졌지만, 신분증은 없었습니다. “거지인가?” 그래도 사람들은 쓰러진 노인을 택시에 실어 병원으로 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은 손을 저으며 떠나갔습니다. 택시비를 받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요. 신고를 받고 뒤늦게 도착한 경찰이 그를 병원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빈민 병원이었습니다. 의사는 노인에게 응급 처치만 해줬습니다.그의 정체가 밝혀진 건 다음 날이었습니다. 병원에 방문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정성당)의 사제가 노인을 알아봤습니다. “가우디 선생님, 왜 여기에...!”노인의 정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하고 바르셀로나의 풍경을 바꾼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였습니다. 급히 가우디를 다른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그를 치료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상황. 사흘 뒤 가우디는 세상을 떠났습니다.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는 왜 거지로 오해받아 세상을 떠났을까요. 그는 무엇을 남겼을까요. 지난해에만도 한국인 24만 명이 찾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여행지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오늘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가우디의 삶과 그의 건축을 이야기합니다. 보일러공의 아들1850년대 스페인 카탈루냐의 작은 도시 레우스. 구리 세공 작업장에서 한 아이가 아버지의 일
국가유산청은 이집트의 한 신전에서 람세스 2세의 이름이 새겨진 상형문자를 발견했다고 9일 발표했다. 한국의 국가유산청은 어쩌다 이집트에서 유물을 발견한 걸까.이집트 유물최고위원회는 2023년부터 국가유산청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국제개발협력(ODA)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의 기술력으로 이집트 룩소르 지역 문화유산의 보존·복원을 돕는 사업이다.국가유산청은 이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6월부터 지난 2월까지 룩소르 라메세움 신전 입구의 거대한 문(탑문) 북측 지역을 발굴 조사했다. 나일강 서쪽에 위치한 라메세움 신전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유명한 파라오 중 하나로 꼽히는 람세스 2세가 세운 유적이다. 람세스 2세 본인이 죽은 뒤 제사를 지내고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지난해 11월 이곳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가유산청은 탑문 기초석에 새겨진 람세스 2세의 카르투슈를 발견했다. 카르투슈는 파라오의 이름을 감싼 타원형 테두리로, 형태와 이름을 통해 정확한 시대를 특정할 수 있어 고고학적 가치가 크다. 하샴 엘레이시 이집트 유물최고위원회 사무총장은 “기존의 다른 카르투슈와 모양이 달라 신전 안의 건축물이 어떤 순서로 지어졌는지 밝히는 귀중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국가유산청은 람세스 2세의 영토 확장 범위를 보여주는 지명(地名)이 적힌 건축 자재, 신전 건축 방식을 추정할 수 있는 토층(土層)도 함께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이집트 당국과 협력해 탑문을 해체한 뒤 원래대로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가유산청은 “룩소르박물관을 디지털화하고 이집트 실무진을 대상으로 3차원(3D) 스캐닝 등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며 “
“백남준 에스테이트(유산 관리 재단)에 있는 작품 중 딱 한 점만 가질 수 있다면, 저는 이 작품을 선택하겠습니다.”백남준(1932~2006)의 장조카이자 유산 관리자인 하쿠다 겐(75)은 지난 1일 ‘미디어 샌드위치’(1961~1964)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된 이 작품은 한국과 일본의 레코드판 8장과 독일 전자공학 잡지 8권, 19세기 인쇄물 하나를 나란히 배치한 백남준의 초기작이다. 레코드판(소리)과 잡지(전자 기술), 인쇄물(시각 이미지)을 결합한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은 미디어아트라는 장르의 서막을 올렸다.백남준의 20주기 회고전 ‘백남준: 되감기/되풀이(Rewind/Repeat)’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1층 전시공간 ‘APMA’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 최대 화랑 가고시안과 백남준 에스테이트가 함께 마련한 전시다. 백남준 에스테이트 큐레이터이자 생전 동료였던 존 호프먼이 기획을 맡았는데, 에스테이트와 공식 협업한 전시가 국내에서 열린 건 25년 만이다.백남준의 핵심 희귀작들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밀도 높은 전시다. 출품작 11점 가운데 10점은 국내 최초 공개작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1969). 투명 비닐 브래지어에 소형 흑백 텔레비전 두 대를 내장한 구조로, 당대 유명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이 뉴욕 하워드와이즈갤러리의 퍼포먼스에서 처음 착용했다. 무어만이 활을 그을 때 발생하는 소리가 TV 화면의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변화시킨다. 하쿠다는 “기계를 차갑고 기능적인 도구로 보기보다 인간의 몸과 감정, 행위에 직접 연결시키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컬러TV조차 찾아보기 어렵던 50여 년 전에 백남준은
그림은 남아있어도 그 그림이 놓였던 맥락은 쉽게 잊히곤 한다. 작가가 왜 그렸는지,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전시장에서 어떤 작품과 나란히 걸렸는지는 작품만 봐서 알기 어렵다.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게 신문기사 스크랩이나 전시 팸플릿, 도록 같은 사료(史料)들이다.이 귀중한 사료들을 평생에 걸쳐 모은 사람이 국내 최초의 미술 전문 기자인 이구열(1932~2020)이다. 1959년부터 약 15년간 미술현장을 취재했고, 기자직을 그만둔 뒤인 1975년에는 ‘한국근대미술연구소’를 열어 개화기 이후의 미술 관련 문헌과 자료를 직접 수집·정리하는 작업에 매달렸다.이구열은 화가와 그들의 지인을 찾아 화단의 비화를 캐고 사라져가는 근현대미술의 흔적을 좇았다. 고희동·박수근·천경자 등과 직접 교류했고, 나혜석을 발굴·재조명한 게 그다. 그렇게 40여 년 동안 모은 자료가 4만여 건. 기사 원고, 스크랩북, 사진, 편지, 전시 도록, 작가 기록 카드까지 한국 근현대미술의 관계망과 흐름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이구열은 자신이 모은 자료를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했다. 삼성문화재단은 1999년 이를 포함한 근현대작가 160여 명의 기증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미술기록보존소’를 설립했다. 국내 최초의 미술 전문 아카이브다. 이는 2024년 총 8만5000여 건 규모의 ‘리움 아카이브’로 확대 구축됐다.오는 10일부터 6월 14일까지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아카이브 이후: 이구열의 기록들’은 이 사료들을 주제로 한 첫 연구 프로그램이자 전시다. 이구열 기증 자료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첫 자리이기도 하다.프로그램은 전시와 포럼으로 나
지근욱(41·사진)은 캔버스 위에 색연필을 수천 번 그어 기하학적 무늬를 그린다. 마치 금속판에 그린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에서는 색연필로 그려진 수천 개 선이 모여 우주의 질서를 표현한다.숙명여대 회화과 교수인 그는 홍익대 판화과를 졸업한 뒤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스에서 아트&사이언스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물리학에 빠졌고, ‘중력을 추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가 찾은 방법은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에 모인 선은 물결처럼 일렁이고,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작디작은 먼지와 얼음 조각이 모여 행성의 고리를 이루듯, 그림 표면에 남긴 색연필 가루가 모여 하나의 면이 되는 것이다.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열리는 지근욱 개인전 ‘금속의 날개’에서 그의 회화 59점을 만날 수 있다. 신작 ‘스페이스 엔진’ 연작은 스테인리스 성분의 안료로 금속 질감을 만들고, 자외선 프린터로 그러데이션을 깐 뒤 그 위에 색연필 선을 빽빽이 채웠다. 대표작 ‘금속의 장’은 같은 크기 사각형 24개를 이어 붙인 작품인데, 무수한 선이 시선을 안쪽으로 끌어들였다가 바깥으로 밀어내며 무한히 확장하는 우주의 감각을 자아낸다. 전시는 오는 5월 9일까지.성수영 기자
권세진 작가의 작품 ‘바다를 구성하는 741개의 드로잉’을 멀리서 보면 사실적으로 그린 흑백의 바다 풍경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간 관객은 이 작품이 가로세로 10cm짜리 종이 741장을 이어 붙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장 놀라운 대목은 이 그림을 전통 동양화 재료인 먹으로 그렸다는 점이다.먹은 종이에 스며들면 고칠 수 없다. 번지기도 쉽다. 그래서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권세진은 이 약점을 역으로 이용했다. 종이를 잘게 잘라 조각마다 풍경의 일부를 그린 뒤, 퍼즐처럼 맞춰 거대한 화면을 구성한 것이다. 그 덕분에 멀리서 보면 사진 같고 가까이 가면 추상화가 되는 독특한 개성의 화풍이 완성됐다.서울 상일동 강동아트센터 아트랑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그것의 미래: 동시대 먹그림’은 이처럼 신선한 한국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강동문화재단과 문화예술 미디어 스타트업 ‘널위한문화예술’이 공동 기획했고, 권세진을 포함해 8명의 한국화 작가가 참여한다. 동양화는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가진 관객이라면 생각이 바뀔 만한 전시다.한국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시도가 눈에 띈다. 김소영은 한국화의 전통 지지체인 장지에 서양화 물감인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김지민은 캔버스에 먹과 금박을 사용해 작품을 그렸다.노한솔은 장지에 먹과 스프레이를 함께 사용했고, 진민욱은 먹과 숯, 한지로 배접한 비단 등 전통 재료를 겹겹이 쌓아 올린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화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옛날 그림’ 이미지를 깨는 작품들이다. 2m가 넘는 대작도 여럿 걸려 있어 보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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