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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수영
    성수영 문화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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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계에 실 한가닥…이게 작품이라고?

    서울 삼청동 백아트 전시장. 갤러리 벽에 붙은 이상한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시침과 분침 없이 초침만 덜렁 남아 있지만, 그 초침마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초침 끝에 묶여 있는 실 가닥의 무게 때문이다. 작품명은 ‘쓰레드 클락(Thread Clock·사진)’. 작품은 이게 전부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그런데 잠시 서 있으면 초침을 눈이 따라가기 시작한다. 애써 나아가려 하지만 가라앉는 초침의 모습에 감정이입을 하는 관객도 있다.미국 로스엔젤레스(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개념미술 작가 B.고(B. Koh)의 개인전 ‘제이 스컬쳐 쇼(J Sculpture Show)’가 열리고 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참여한 기록을 제외하면 국내에 거의 이력이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작가다. 오직 작품만 봐줬으면 좋겠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라고.그리 넓지 않은 전시장에는 그의 개념미술 작품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헤어 플라이’는 천장에서 내려온 머리카락 끝을 파리처럼 뭉쳐둔 작품이다. 진짜 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가 뒤늦게 머리카락임을 깨닫게 된다. ‘웻 체어’는 천장에 매달린 전구가 플라스틱 의자 위에 고인 물웅덩이에 닿도록 설치된 작품이다. 물이 서서히 마르면서 작품의 모습도 변한다.개념미술 작품인 만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시각적으로 압도되는 경험, 살아 숨 쉬는 붓질이나 조각의 생생한 양감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별것 아닌 것 같은 사물 앞에서 생각지 못한 감각이 느껴지는 순간을 즐길 준비가 돼 있다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전시는 5월 2일까지.성수영 기자

    2026.04.19 16:55
  • 죽은 아들 품은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곧 살아날 거니까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죽은 아들을 무릎에 안고 있는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 자국이 없습니다. 대신 어머니는 하늘을 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레밍케이넨의 어머니’. 핀란드 신화를 소재로 한,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입니다.핀란드의 신화 속 용사인 레밍케이넨은 공주를 구하러 모험을 떠났다가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시신은 토막 나 버려졌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나섰습니다. 어머니는 강바닥에서 아들의 몸을 하나씩 건져 올려 꿰매 붙였습니다. 그래도 숨이 돌아오지 않자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신은 꿀벌을 보냈습니다. 꿀벌이 가져오는 신의 꿀이 닿으면 아들은 되살아날 것입니다. 어머니가 울지 않는 이유는 아들이 곧 살아날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이 그림이 완성될 당시 핀란드의 상황이 딱 이랬습니다. 핀란드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처럼 외세의 오랜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림을 그린 화가는 믿었습니다.그림을 그리기 2년 전, 화가는 네 살 난 딸을 잃었습니다. 딸은 죽음에서 살려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통해 나라는 살려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핀란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화가, 핀란드의 국기와 지폐를 디자인했던 국민 화가 악셀리 갈렌칼렐라(1865~1931) 이야기. 사라져 가는 나라의 화가북유럽에 있는 나라 핀란드. 이곳에 사는 핀란드인의 조상은 시베리아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이주해 온 사람들입니다. 오랫동안 부족 생활을 하던 이들은 12세기부터 약 600년 동안 스웨덴 왕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지배층은 스웨덴어를 썼습니다. 학교에서도 신문에서도 모두 스웨덴어

    2026.04.18 02:21
  • [이 아침의 화가] 해외 미술계도 인정한 40여년 '원색의 미학'

    “이것만 끝내놓고 좀 쉴 거야.”2013년 이두식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은 홍익대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정년퇴임 기념전 개막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튿날 새벽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40년 넘게 힘찬 원색을 캔버스에 쏟아부은 화가다운 마지막이었다.1947년 경북 영주의 사진관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그림 공부를 따로 하지 않고도 서울예술고와 홍익대에 진학했다. 젊은 시절 생활고에 시달리며 처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수출용 이발소 그림’을 5년간 그리면서도 밤에는 자기 그림을 그렸다. 1980년대 후반 이두식은 한국 전통 오방색을 사용해 삶의 환희를 표현한 ‘잔칫날’ 연작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995년 이탈리아 로마시의 의뢰로 로마 지하철 플라미니오역에 가로 14m짜리 대형 모자이크 벽화를 남겼다.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다시 만난 축제’는 이두식 13주기를 기념한 회고전이다. 잔칫날 연작을 비롯해 회화와 드로잉 6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5월 5일까지.성수영 기자

    2026.04.16 17:52
  • 이쾌대부터 김창열…8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서울 돈암동 458-1. 지금은 숙박업소가 서 있는 이 자리에 80년 전 ‘성북회화연구소’라는 문패를 단 화실이 있었다. 젊은 시절의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 근현대 조각의 선구자 권진규(1922~1973), 추상화 선구자 남관(1911~1990)이 한 자리에 모여 그림을 그렸다. 그 중심에 화실을 연 한국 근대미술 거장 이쾌대(1913~1965)가 있었다.1945년 해방 직후 한국 미술계는 정치판이었다. 작가들은 좌우로 나뉘어 정치색을 띤 기념전과 모금전에 앞다퉈 참여했다. 하지만 성북회화연구소에 모인 작가들은 정치 대신 미술에만 집중했다. 이념이 어떻든, 미술사조가 어떻든 예술을 사랑하는 작가라면 누구나 연구소에서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었다. 이쾌대, 성북회화연구소를 열다서울 성북동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1946, 성북회화연구소’는 그 시절 연구소에 몸담았던 작가들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자리다. 연구소 출신의 현대미술 주요 예술가 30여명 가운데 12명의 작품 40점과 관련 기록을 모았다. 지난달 개막한 이 전시는 국내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올 상반기 최고의 전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이렇게 존재감 있는 전시가 구립미술관 규모에서 가능했던 건 성북구립미술관의 특수성 때문이다. 성북구립미술관은 2009년 전국 최초의 ‘구립’ 공립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성북구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기까지 화가와 조각가들이 밀집해 살았던 한국 근현대미술의 중심지. 미술관은 이런 지역적 자산을 바탕으로 연고 작가들을 꾸준히 연구해왔다. 지역 밀착형 연구에서는 웬만한 국립미술관 못지않은 전문성을 쌓아온 셈이다.이번 전시는 2024년 베네치아비엔

    2026.04.14 18:05
  • 김창열, 권진규 배출한 '전설의 화실'…80년 만에 되살아났다

    서울 돈암동 458-1. 지금은 숙박업소가 서 있는 이 자리에 80년 전 ‘성북회화연구소’라는 문패를 단 화실이 있었다. 젊은 시절의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 근현대 조각의 선구자 권진규(1922~1973), 추상화 선구자 남관(1911~1990)이 한 자리에 모여 그림을 그렸다. 그 중심에 화실을 연 한국 근대미술 거장 이쾌대(1913~1965)가 있었다. 1945년 해방 직후 한국 미술계는 정치판이었다. 작가들은 좌우로 나뉘어 정치색을 띤 기념전과 모금전에 앞다퉈 참여했다. 그림의 주제도, 전시 이유도 정치가 결정했다. 하지만 성북회화연구소에 모인 작가들은 정치 대신 미술에만 집중했다. 이념이 어떻든, 미술사조가 어떻든 예술을 사랑하는 작가라면 누구나 연구소에서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족적은 그대로 한국 현대 미술사가 됐다.이쾌대, 성북회화연구소를 열다서울 성북동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1946, 성북회화연구소’는 그 시절 연구소에 몸담았던 작가들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자리다. 연구소 출신의 현대미술 주요 예술가 30여명 가운데 12명의 작품과 관련 기록을 모았다. 지난달 개막한 이 전시는 국내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올 상반기 최고의 전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이렇게 존재감 있는 전시가 구립미술관 규모에서 가능했던 건 성북구립미술관의 특수성 때문이다. 성북구립미술관은 2009년 전국 최초의 ‘구립’ 공립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성북구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기까지 화가와 조각가들이 밀집해 살았던 한국 근현대미술의 중심지. 이쾌대가 보문동에 살았고, 권진규의 아틀리에(동선동)는 지금도 등록문화재

    2026.04.14 14:54
  • 기와집 15채값 주고 지켜낸 백자 나왔다

    1936년 11월, 일제강점기 경성의 미술품 경매장 ‘경성미술구락부’.국화와 난, 벌레가 그려진 백자병 하나를 놓고 숨 막히는 경합이 벌어졌다. 한·중 문화재들을 대량으로 미국과 유럽에 팔아넘기던 일본의 거상(巨商) 야마나카 상회 관계자를 비롯해 수많은 일본인이 호가 경쟁에 뛰어든 끝에 최종 낙찰가는 1만4580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는 값이었다. 작품을 낙찰받은 이는 조선인 간송 전형필(1906~1962). 백자병은 훗날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라는 이름의 국보가 됐다.1922년 일본인 골동상들이 세운 경성미술구락부는 조선 최대의 미술품 거래 기관이었다.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 등 해외로 빠져나가는 주요 통로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간송은 1930년부터 1944년까지 14년간 사재를 아낌없이 털어 유물들을 지켰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간송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오는 15일 여는 특별전 ‘문화보국(文化保國)’은 국보 1건, 보물 1건 등 총 46점의 유물을 통해 그 경매 현장을 되짚는 전시다.전시장인 보화각 2층의 ‘조선 회화’ 섹션은 간송 수집의 핵심을 보여준다. 그는 특정 시대나 화가에 치우치지 않고 조선 전 시기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고루 수집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남기기보다는 우리 그림의 역사를 보존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였다.심사정과 강세황의 합작 ‘표현연화첩’은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그가 구입해 해외 유출을 막은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일본인인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장, 조선총독부 외무국장의 소장을 거쳐 1943년 경매에 나온 것을 간송이 낙찰받았다. 이 밖에도 장승업의 ‘팔준도&r

    2026.04.13 17:19
  • 백자 1병에 기와집 15채 값을 태워?…日 틈바구니에 조선의 보물 파수꾼

    1936년 11월, 일제강점기 경성의 미술품 경매장 ‘경성미술구락부’. 국화와 난, 벌레가 그려진 백자병 하나를 놓고 숨 막히는 경합이 벌어졌다. 한·중 문화재들을 대량으로 미국과 유럽에 팔아넘기던 일본의 거상(巨商) 야마나카 상회 관계자를 비롯해 수많은 일본인이 호가 경쟁에 뛰어든 끝에 최종 낙찰가는 1만4580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는 값이었다. 작품을 낙찰받은 이는 조선인 간송 전형필(1906~1962). 백자병은 훗날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라는 이름의 국보가 됐다. 1922년 일본인 골동상들이 세운 경성미술구락부는 조선 최대의 미술품 거래 기관이었다.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 등 해외로 빠져나가는 주요 통로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간송은 1930년부터 1944년까지 14년간 사재를 아낌없이 털어 유물들을 지켰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간송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오는 15일 여는 특별전 ‘문화보국(文化保國)’은 국보 1건, 보물 1건 등 총 46점의 유물을 통해 그 경매 현장을 되짚는 전시다.전시장인 보화각 2층의 ‘조선 회화’ 섹션은 간송 수집의 핵심을 보여준다. 그는 특정 시대나 화가에 치우치지 않고 조선 전 시기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고루 수집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남기기보다는 우리 그림의 역사를 보존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였다.심사정과 강세황의 합작 ‘표현연화첩’은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그가 구입해 해외 유출을 막은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일본인인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장, 조선총독부 외무국장의 소장을 거쳐 1943년 경매에 나온 것을 간송이 낙찰받았다. 이

    2026.04.13 14:08
  • "거지 아냐?" 비참하게 죽은 천재…한국인 홀린 사연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쾅!1926년 6월 7일 저녁,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길거리. 길을 건너던 추레한 행색의 노인이 노면전차(트램)에 치여 날아갔습니다. 갈비뼈는 부러져 숨을 잘 쉬지 못했고, 두개골도 골절된 것 같았습니다.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노인의 신원을 파악하려고 낡은 옷을 뒤졌지만, 신분증은 없었습니다. “거지인가?” 그래도 사람들은 쓰러진 노인을 택시에 실어 병원으로 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은 손을 저으며 떠나갔습니다. 택시비를 받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요. 신고를 받고 뒤늦게 도착한 경찰이 그를 병원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빈민 병원이었습니다. 의사는 노인에게 응급 처치만 해줬습니다.그의 정체가 밝혀진 건 다음 날이었습니다. 병원에 방문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정성당)의 사제가 노인을 알아봤습니다. “가우디 선생님, 왜 여기에...!”노인의 정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하고 바르셀로나의 풍경을 바꾼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였습니다. 급히 가우디를 다른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그를 치료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상황. 사흘 뒤 가우디는 세상을 떠났습니다.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는 왜 거지로 오해받아 세상을 떠났을까요. 그는 무엇을 남겼을까요. 지난해에만도 한국인 24만 명이 찾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여행지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오늘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가우디의 삶과 그의 건축을 이야기합니다. 보일러공의 아들1850년대 스페인 카탈루냐의 작은 도시 레우스. 구리 세공 작업장에서 한 아이가 아버지의 일

    2026.04.10 22:55
  • 이집트서 람세스 2세 상형문자 발견한 韓 조사단

    국가유산청은 이집트의 한 신전에서 람세스 2세의 이름이 새겨진 상형문자를 발견했다고 9일 발표했다. 한국의 국가유산청은 어쩌다 이집트에서 유물을 발견한 걸까.이집트 유물최고위원회는 2023년부터 국가유산청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국제개발협력(ODA)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의 기술력으로 이집트 룩소르 지역 문화유산의 보존·복원을 돕는 사업이다.국가유산청은 이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6월부터 지난 2월까지 룩소르 라메세움 신전 입구의 거대한 문(탑문) 북측 지역을 발굴 조사했다. 나일강 서쪽에 위치한 라메세움 신전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유명한 파라오 중 하나로 꼽히는 람세스 2세가 세운 유적이다. 람세스 2세 본인이 죽은 뒤 제사를 지내고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지난해 11월 이곳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가유산청은 탑문 기초석에 새겨진 람세스 2세의 카르투슈를 발견했다. 카르투슈는 파라오의 이름을 감싼 타원형 테두리로, 형태와 이름을 통해 정확한 시대를 특정할 수 있어 고고학적 가치가 크다. 하샴 엘레이시 이집트 유물최고위원회 사무총장은 “기존의 다른 카르투슈와 모양이 달라 신전 안의 건축물이 어떤 순서로 지어졌는지 밝히는 귀중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국가유산청은 람세스 2세의 영토 확장 범위를 보여주는 지명(地名)이 적힌 건축 자재, 신전 건축 방식을 추정할 수 있는 토층(土層)도 함께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이집트 당국과 협력해 탑문을 해체한 뒤 원래대로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가유산청은 “룩소르박물관을 디지털화하고 이집트 실무진을 대상으로 3차원(3D) 스캐닝 등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며 “

    2026.04.09 17:53
  • "백남준 작품 중 딱 한점 남긴다면 미디어 샌드위치"

    “백남준 에스테이트(유산 관리 재단)에 있는 작품 중 딱 한 점만 가질 수 있다면, 저는 이 작품을 선택하겠습니다.”백남준(1932~2006)의 장조카이자 유산 관리자인 하쿠다 겐(75)은 지난 1일 ‘미디어 샌드위치’(1961~1964)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된 이 작품은 한국과 일본의 레코드판 8장과 독일 전자공학 잡지 8권, 19세기 인쇄물 하나를 나란히 배치한 백남준의 초기작이다. 레코드판(소리)과 잡지(전자 기술), 인쇄물(시각 이미지)을 결합한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은 미디어아트라는 장르의 서막을 올렸다.백남준의 20주기 회고전 ‘백남준: 되감기/되풀이(Rewind/Repeat)’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1층 전시공간 ‘APMA’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 최대 화랑 가고시안과 백남준 에스테이트가 함께 마련한 전시다. 백남준 에스테이트 큐레이터이자 생전 동료였던 존 호프먼이 기획을 맡았는데, 에스테이트와 공식 협업한 전시가 국내에서 열린 건 25년 만이다.백남준의 핵심 희귀작들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밀도 높은 전시다. 출품작 11점 가운데 10점은 국내 최초 공개작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1969). 투명 비닐 브래지어에 소형 흑백 텔레비전 두 대를 내장한 구조로, 당대 유명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이 뉴욕 하워드와이즈갤러리의 퍼포먼스에서 처음 착용했다. 무어만이 활을 그을 때 발생하는 소리가 TV 화면의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변화시킨다. 하쿠다는 “기계를 차갑고 기능적인 도구로 보기보다 인간의 몸과 감정, 행위에 직접 연결시키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컬러TV조차 찾아보기 어렵던 50여 년 전에 백남준은

    2026.04.09 17:17
  • 한국 최초 미술기자 이구열…평생 모은 기록 첫 공개한 리움미술관

    그림은 남아있어도 그 그림이 놓였던 맥락은 쉽게 잊히곤 한다. 작가가 왜 그렸는지,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전시장에서 어떤 작품과 나란히 걸렸는지는 작품만 봐서 알기 어렵다.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게 신문기사 스크랩이나 전시 팸플릿, 도록 같은 사료(史料)들이다.이 귀중한 사료들을 평생에 걸쳐 모은 사람이 국내 최초의 미술 전문 기자인 이구열(1932~2020)이다. 1959년부터 약 15년간 미술현장을 취재했고, 기자직을 그만둔 뒤인 1975년에는 ‘한국근대미술연구소’를 열어 개화기 이후의 미술 관련 문헌과 자료를 직접 수집·정리하는 작업에 매달렸다.이구열은 화가와 그들의 지인을 찾아 화단의 비화를 캐고 사라져가는 근현대미술의 흔적을 좇았다. 고희동·박수근·천경자 등과 직접 교류했고, 나혜석을 발굴·재조명한 게 그다. 그렇게 40여 년 동안 모은 자료가 4만여 건. 기사 원고, 스크랩북, 사진, 편지, 전시 도록, 작가 기록 카드까지 한국 근현대미술의 관계망과 흐름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이구열은 자신이 모은 자료를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했다. 삼성문화재단은 1999년 이를 포함한 근현대작가 160여 명의 기증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미술기록보존소’를 설립했다. 국내 최초의 미술 전문 아카이브다. 이는 2024년 총 8만5000여 건 규모의 ‘리움 아카이브’로 확대 구축됐다.오는 10일부터 6월 14일까지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아카이브 이후: 이구열의 기록들’은 이 사료들을 주제로 한 첫 연구 프로그램이자 전시다. 이구열 기증 자료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첫 자리이기도 하다.프로그램은 전시와 포럼으로 나

    2026.04.09 09:24
  • 수천 개의 색연필 선, 우주의 질서 그리다

    지근욱(41·사진)은 캔버스 위에 색연필을 수천 번 그어 기하학적 무늬를 그린다. 마치 금속판에 그린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에서는 색연필로 그려진 수천 개 선이 모여 우주의 질서를 표현한다.숙명여대 회화과 교수인 그는 홍익대 판화과를 졸업한 뒤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스에서 아트&사이언스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물리학에 빠졌고, ‘중력을 추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가 찾은 방법은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에 모인 선은 물결처럼 일렁이고,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작디작은 먼지와 얼음 조각이 모여 행성의 고리를 이루듯, 그림 표면에 남긴 색연필 가루가 모여 하나의 면이 되는 것이다.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열리는 지근욱 개인전 ‘금속의 날개’에서 그의 회화 59점을 만날 수 있다. 신작 ‘스페이스 엔진’ 연작은 스테인리스 성분의 안료로 금속 질감을 만들고, 자외선 프린터로 그러데이션을 깐 뒤 그 위에 색연필 선을 빽빽이 채웠다. 대표작 ‘금속의 장’은 같은 크기 사각형 24개를 이어 붙인 작품인데, 무수한 선이 시선을 안쪽으로 끌어들였다가 바깥으로 밀어내며 무한히 확장하는 우주의 감각을 자아낸다. 전시는 오는 5월 9일까지.성수영 기자

    2026.04.08 17:37
  • 먹 그림 741조각으로 완성한 바다…한국화 경계 넘는 젊은 작가전

    권세진 작가의 작품 ‘바다를 구성하는 741개의 드로잉’을 멀리서 보면 사실적으로 그린 흑백의 바다 풍경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간 관객은 이 작품이 가로세로 10cm짜리 종이 741장을 이어 붙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장 놀라운 대목은 이 그림을 전통 동양화 재료인 먹으로 그렸다는 점이다.먹은 종이에 스며들면 고칠 수 없다. 번지기도 쉽다. 그래서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권세진은 이 약점을 역으로 이용했다. 종이를 잘게 잘라 조각마다 풍경의 일부를 그린 뒤, 퍼즐처럼 맞춰 거대한 화면을 구성한 것이다. 그 덕분에 멀리서 보면 사진 같고 가까이 가면 추상화가 되는 독특한 개성의 화풍이 완성됐다.서울 상일동 강동아트센터 아트랑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그것의 미래: 동시대 먹그림’은 이처럼 신선한 한국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강동문화재단과 문화예술 미디어 스타트업 ‘널위한문화예술’이 공동 기획했고, 권세진을 포함해 8명의 한국화 작가가 참여한다. 동양화는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가진 관객이라면 생각이 바뀔 만한 전시다.한국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시도가 눈에 띈다. 김소영은 한국화의 전통 지지체인 장지에 서양화 물감인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김지민은 캔버스에 먹과 금박을 사용해 작품을 그렸다.노한솔은 장지에 먹과 스프레이를 함께 사용했고, 진민욱은 먹과 숯, 한지로 배접한 비단 등 전통 재료를 겹겹이 쌓아 올린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화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옛날 그림’ 이미지를 깨는 작품들이다. 2m가 넘는 대작도 여럿 걸려 있어 보는 맛

    2026.04.08 11:05
  • 병원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안내서 [책마을]

    우리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건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죽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막연한 바람에서 그칠 뿐, 구체적인 준비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 대가는 원하는대로 삶의 마지막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48%가 자신의 집에서 임종을 맞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과반수가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약사이자 건강·보건분야 작가인 박한슬의 <내 집에서 나이들 수 있을까>는 품위 있는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실전 안내서다. 건강과 정책, 재정 등 노년의 삶을 대비하기 위한 핵심 정보를 분야별로 총망라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쓴 것이 특징이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막연한 개념인 ‘늙는다는 것’, 즉 노화가 무엇인지를 짚는다. 핵심 개념은 ‘예비력’(몸의 회복력)이다. 예를 들어 몸을 움직이면 피로가 쌓이고, 술에 취하면 숙취가 생긴다. 휴식을 취하면 몸은 다시 정상으로 회복한다. 그 힘이 갈수록 약해지는 것이 노화다. 어린 시절에는 금방 회복할 수 있었던 골절이 고령의 나이에는 치명적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연구에 따르면 75세 이전까지는 운동·돌봄·재활 등 종합적 관리를 통해 예비력을 일상에 문제 없는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관리보다 단기적인 치료와 입원에 집중하고 있고, 이는 노년의 삶의 질을 낮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2부에서는 정책을 다룬다.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미국, 독일, 일본, 북유럽 각국의 제도를

    2026.04.07 09:06
  • 바다로 뛰어든 '물고기 화가'의 해저 세계

    파도, 해안선, 항구, 범선….바다는 화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주제 중 하나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거장들이 바다를 소재로 숱한 명화를 남겼다. 그런데 수면 아래의 세계, 즉 ‘바닷속’을 그린 명화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조광현 작가(67·사진)는 그 ‘블루 오션’을 20년 넘게 개척해온 사람이다.조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물고기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해양생물공학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가 한반도 주변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그린 1000점 넘는 세밀화는 그 정밀함으로 미술계와 해양학계의 인정을 함께 받고 있다.비늘 한 장 한 장을 그리던 조 작가의 손이 바닷속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생명 전체를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했다. 조 작가는 “지난 20여년간 봐 왔던 바닷속 세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삼성동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물의 정령들’은 그 결과물이다. ◇바다 전체와 생명체들의 대비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작품은 크기가 가로 7.8m, 세로 2.3m에 달하는 대형 유화 ‘윤회하는 행성’과 같은 크기의 ‘푸른 탄소의 바다’다. 가로 5.2m의 ‘푸른 탄소의 숲’도 함께 걸렸다. 어두운 조명 아래 걸린 신비로운 분위기의 수중 풍경화들에서는 소리 없이 약동하는 바다의 생명력을 체감할 수 있다. 조 작가는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라며 “바다는 공기 중의 탄소를 저장하는 등 현재 우리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란 사실을 그림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대형 회화 사이사이에는 100점 넘는 세

    2026.04.06 17:58
  • "뭐 이렇게 생겼냐"...'수백억 작품', 세금 폭탄 맞은 사연이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이게 뭔가요?”“조각 작품입니다. 새를 표현했습니다.”“새요? 날개도 없고 부리도 없는데? 그냥 금속으로 만든 도구처럼 보이네요. 관세 40%를 부과하겠습니다.”1926년 10월 미국 뉴욕의 항구. 프랑스에서 온 배에는 루마니아 출신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1876~1957)의 작품이 실려 있었습니다. 뉴욕 갤러리 전시에 나올 작품이었습니다. 미국 관세법에 따라 예술품은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됐고, 브랑쿠시의 작품들도 그래야 했지요.문제는 높이 137cm의 황동 조각이었습니다. 세관원의 눈에 이 물건은 도저히 예술 작품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매끈하게 연마된 곡선이 위를 향해 뻗은 길쭉한 금속 막대. 세관은 이 물체를 ‘주방용품 및 병원 용품’ 항목으로 분류한 뒤 40%의 관세를 매겼습니다. 작품을 사기로 했던 구매자는 황당해했습니다. 졸지에 거액의 세금을 부담하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세관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날개도 부리도 깃털도 없는 이것을 ‘새를 표현한 예술품’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그렇게 미국 법정에서는, “뭐가 예술이고 뭐가 예술이 아닌가”를 판단하는 ‘세기의 재판’이 열렸습니다.조각이라고 하면 보통 사실적인 작품들을 떠올립니다. ‘생각하는 사람’(지옥의 문)으로 유명한 오귀스트 로댕 같은 조각가의 작품들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사실 요즘의 조각 중 이렇게 사실적인 것은 거의 없습니다. 미술관에는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형태의 조각이 가득하고, 미술품 경매에서는 이런 조각에 ‘억’ 소리 나는 가격이 붙습니다. 이런 작품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요.

    2026.04.03 23:07
  • 25년만에 돌아온 백남준 조카…"작품 하나만 남긴다면 이것"

    “백남준 에스테이트(유산 관리 재단)에 있는 작품 중 딱 한 점만 가질 수 있다면, 저는 이 작품을 선택하겠습니다.”백남준(1932~2006)의 장조카이자 유산 관리자인 켄 하쿠타(75)는 지난 1일 ‘미디어 샌드위치’(1961~1964)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 작품은 한국과 일본의 레코드판 8장과 독일의 전자공학 잡지 8권, 19세기 인쇄물 하나를 나란히 배치한 백남준의 초기작이다.레코드판(소리)과 잡지(전자 기술), 인쇄물(시각 이미지)을 결합한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은 미디어아트라는 장르의 서막을 올렸다. 존 호프만 큐레이터는 “백남준이 작곡가를 그만두고 미디어아트를 막 시작했을 때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백남준의 20주기 회고전 ‘백남준: 되감기/되풀이(Rewind/Repeat)’가 지금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1층 전시공간 ‘APMA’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 최대 화랑 가고시안과 백남준 에스테이트가 함께 마련한 전시다. 백남준 에스테이트 큐레이터이자 백남준의 생전 동료였던 존 호프만이 기획을 맡았는데, 에스테이트와 공식 협업한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는 건 25년 만이다.전시장이 넓지 않지만 백남준의 핵심적인 희귀작들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밀도 높은 전시다. 출품작 11점 가운데 10점은 국내 최초 공개작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1969). 투명 비닐 브래지어에 소형 흑백 텔레비전 두 대를 내장한 구조로, 당대 유명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이 뉴욕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의 퍼포먼스에서 처음 착용했다. 무어만이 활을 그을 때 발생하는 소리가 TV 화면의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변

    2026.04.03 16:42
  • 시계에 매단 실 한가닥…상식 비트는 개념미술의 '묘한 매력'

    서울 삼청동 백아트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갤러리 벽에 붙은 이상한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시침과 분침 없이 초침만 덜렁 남아 있지만, 그 초침마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초침 끝에 묶여 있는 실 가닥의 무게 때문이다. 작품명은 ‘쓰레드 클락(Thread Clock)’. 작품은 이게 전부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그런데 잠시 서 있으면 초침을 눈이 따라가기 시작한다. 애써 나아가려 하지만 가라앉는 초침의 모습에 감정이입을 하는 관객도 있다.지금 백아트에서는 미국 로스엔젤레스(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개념미술 작가 고(B. Koh)의 개인전 ‘제이 스컬쳐 쇼(J Sculpture Show)’가 열리고 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참여한 기록을 제외하면 국내에 거의 이력이 알려져 있지 않다. 백아트 관계자는 “작품만 봐 줬으면 좋겠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그리 넓지 않은 전시장에는 그의 개념미술 작품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헤어 플라이’는 천장에서 내려온 머리카락 끝을 파리처럼 뭉쳐둔 작품이다. 진짜 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가 뒤늦게 머리카락임을 깨닫게 된다. ‘웻 체어’는 천장에 매달린 전구가 플라스틱 의자 위에 고인 물웅덩이에 닿도록 설치된 작품이다. 물이 서서히 마르면서 작품의 모습도 변한다. 하나씩 들여다보면 슬그머니 재미가 생기는 작품들이다.개념미술 작품인 만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시각적으로 압도되는 경험, 살아 숨쉬는 붓질이나 조각의 생생한 양감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별것 아닌 것 같은 사물 앞에서 생각지 못한 감각이 느껴지는 순간을 즐길

    2026.04.02 16:18
  • 한글날 100주년에 광화문 '현판 논쟁'…한글·한문 함께 써야하나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함께 달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얼굴’은 한글이어야 합니다.”(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31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광화문 현판 토론회’에서는 이런 주장들이 쏟아졌다. 반면 “없던 현판을 문화유산에 덧붙이는 건 역사 왜곡”(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찮았다. 이들은 왜 광화문 현판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문체부는 왜 직접 나서서 토론회까지 열어준 걸까. ◇광화문 현판 수난사광화문 현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의 중심이었다. 6·25 전쟁으로 불탄 광화문을 박정희 대통령이 1968년 철근콘크리트로, 재건하고 여기에 친필 한글 현판을 단 게 시작이었다. 박 대통령의 친필이 서울의 중심에 있는 왕궁 정문에 걸려 있다는 사실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현판을 교체하려다가 정쟁 끝에 흐지부지된 일도 있었다.광화문 현판이 지금의 한문 필체로 바뀐 건 2010년이다. 광화문 복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현판을 19세기 경복궁 중건 당시의 글씨체로 바꾼 것. 그런데 석 달 만에 현판에 균열이 생겼다. 2016년에는 색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확인됐다.이런 틈을 비집고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꾸자”는 주장이 대두됐다. 한자 교육 약화, 반중 감정 격화와 맞물려 “중국 글씨가 왜 저기 걸려있느냐”는 젊은 층의 반응이 나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4년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한글 현판을 제안했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당시 국가유산청장이 문화재를 원래 모습대로 보존해야 한

    2026.03.31 17:47
  • 바닷속에 뛰어든 물고기 화가, 살아 숨쉬는 바다를 그리다

    파도, 해안선, 항구, 범선…. 바다는 화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주제 중 하나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거장들이 바다를 소재로 숱한 명화를 남겼다. 그런데 수면 아래의 세계, 즉 ‘바닷속’을 그린 명화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조광현 작가(67)는 그 ‘블루 오션’을 20년 넘게 개척해온 사람이다. 조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물고기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해양생물공학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가 한반도 주변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그린 1000점 넘는 세밀화는 그 정밀함으로 미술계와 해양학계의 인정을 함께 받고 있다. 비늘 한 장 한 장을 그리던 조 작가의 손이 바닷속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생명 전체를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했다. 조 작가는 “지난 20여년간 봐 왔던 바닷속 세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삼성동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물의 정령들’은 그 결과물이다.대형 바다 풍경화·세밀화 한눈에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작품은 크기가 가로 7.8m, 세로 2.3m에 달하는 대형 유화 ‘윤회하는 행성’과 같은 크기의 ‘푸른 탄소의 바다’다. 가로 5.2m의 ‘푸른 탄소의 숲’도 함께 걸렸다. 어두운 조명 아래 걸린 신비로운 분위기의 수중 풍경화들에서는 소리 없이 약동하는 바다의 생명력을 체감할 수 있다. 조 작가는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라며 “바다는 공기 중의 탄소를 저장하는 등 현재 우리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란 사실을 그림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대형 회화

    2026.03.30 14:53
  • [이 아침의 미술가] 깨진 소주병 샹들리에…위태로운 도시를 말하다

    영화 ‘하녀’(2010)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등장한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외국산 조명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 배영환 작가(57·사진)가 깨진 소주병으로 특별 제작한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술병을 깨서 조명을 만드는 ‘불면증’ 연작은 배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멀리서 보면 번쩍이지만 가까이 가면 초라하고 위태로운 현대인과 도시의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배 작가는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붓이 아니라 공사 현장의 폐목, 깨진 병, 버려진 가구를 집어 들었다. 그의 이름을 알린 건 1990년대 후반 발표한 ‘유행가’ 시리즈다. 알약과 면도날로 유행가 가사를 써 내려가 완성한 작업으로, 약으로는 몸을 달래고 노래로는 마음을 달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각화했다. 사람들이 버린 것을 통해 시대의 초상을 끌어내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배 작가는 베네치아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샤르자비엔날레 등을 거치며 한국 현대미술계 주요 작가로 자리 잡았다.지금 서울 성북동 BB&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단체전 ‘행잉 어라운드’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다음달 11일까지.성수영 기자

    2026.03.29 17:26
  • "돈 찍어내는 기계"…처자식 밟고 올라간 '역대급 성공남' 최후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너는 내 작업실 바닥의 먼지만도 못해.”그 남자,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연인에게 차갑게 내뱉었습니다. 이때까지 전 여자친구들에게 늘 그래왔던 것처럼.그는 연인의 자존심을 짓밟고 공격해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자존심 높은 여성이라도 그 남자가 하는 말에는 진심으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희대의 천재이자 미술계의 신과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하지만 이 여성, 프랑수아즈 질로만큼은 달랐습니다. 질로는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내가 먼지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당신의 빗자루에 쓸려가는 먼지가 아니에요. 내가 원할 때 스스로 떠날 수 있는 먼지죠.”7년 뒤 그녀는 피카소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를 데리고 정말로 떠나버렸습니다. 피카소는 울고, 화내고,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질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피카소의 여인 일곱 명 중 그를 버린 사람은 질로가 유일합니다. 피카소에게 버림받거나 그의 곁에서 무너지지 않고, 유일하게 자기 인생을 온전히 살아낸 사람도 이 여자뿐이었습니다. 1,2편에 이어지는 마지막 3편에서는 피카소를 버린 여자, 천재의 최후, 그리고 그가 떠난 뒤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체리 한 그릇1943년 프랑스 파리. 피카소도 어느덧 환갑이 넘은 62세의 나이가 됐습니다. 온 파리 사람이 세계 최고의 예술가인 그를 알아봤습니다. 누구든 그를 발견하면 따라와 싸인 하나라도 얻으려 했습니다. 낙서라도 하나 받으면 그야말로 횡재였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레스토랑에 앉아있던 피카소는 옆 테이블로 눈을 돌렸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거기 있었습니다. 피

    2026.03.28 00:01
  • 이름값 떼고 보는 유럽 그림…성수동에 걸린 모더니즘 70점

    한국에서 유화를 수집한다고 하면 대개 수천만원대 이상의 고가 작품을 떠올린다. 목적이 감상보다는 투자나 절세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유화의 본고장 유럽에서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름 없는 화가의 중저가 작품도 마음에 들면 서슴없이 사서 거실에 건다. 되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일 보면서 일상에 활력을 얻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유럽 그림들이 서울에 왔다.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성수나무는 오는 28일부터 기획전 '에브리데이 모더니즘(Everyday Modernism)'을 연다. 유럽 각지의 작업실과 소규모 갤러리, 지역 경매 등에서 수집한 20세기 유럽 회화 70여 점이 출품된다. 가격대는 대부분 100만원 안팎이다. 영국왕립예술협회 회원이었던 에블린 애스턴, 덴마크 화가 시그리드 한손, 프랑스 인상파 계열의 I.A. 몽탈 등 국내 미술사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낯선 이름이 많다. 하지만 유명하지 않다고 작품 수준이 낮은 건 아니다. 갤러리 관계자는 "한 컬렉터가 직접 수집한 그림"이라며 "작가의 이름값이 아니라 화면의 밀도를 기준으로 골랐기 때문에 그림의 퀄리티에는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전시 기간 중 기획자 토크(4월 4일), 김현희 전 서울옥션 수석경매사의 미니 경매(4월 8일), 유럽 컬렉팅 문화 특별 강연(4월 18일) 등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전시는 4월 20일까지.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2026.03.27 10:09
  • 거장인가 퇴물 장사꾼인가…여러분이 평가할 시간

    당장이라도 보는 이를 물어뜯으려는 듯 입을 쩍 벌린 상어.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광경이다. 거대한 유리 수조 안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상어 사체를 전시한 이 작품 하나로, 영국의 현대미술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60)는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자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떠올랐다.허스트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파격적인 작품과 숱한 기행 때문이다. 그는 죽음과 자본, 과학에 대한 맹신 등 미술에서 잘 다루지 않은 주제들을 혁신적 방식으로 조명해 스타 작가로 도약했다. 반면 그가 자극적인 작품으로 관심을 끄는 한물간 장사꾼이라고 깎아내리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허스트 전시 계획을 발표하자 미술계에서 “왜 하필 허스트냐”며 논쟁이 일었던 이유도 그래서다.허스트의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인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지난 20일 개막했다. 초기작부터 최신 회화까지 50여 점, 평생의 주요 작품 대부분을 포함한 대규모 전시다. 그가 거장인지 장사꾼인지 이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차례다. 죽음을 다루는 예술가허스트가 처음부터 집요하게 파고든 주제는 죽음이었다. 초입에 걸린 사진 ‘죽은 자의 머리와 함께’는 허스트가 열여섯 살 때인 1981년 시체 안치소에 갔다가 찍은 사진이다. 어린 허스트 옆에 있는 건 진짜 시체의 머리. 표정은 웃고 있지만 허스트는 훗날 “속으로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고 털어놨다. 죽음에 대한 의도적 외면과 조롱, 그 밑에 깔린 공포와 삶에 대한 집착은 이후 허스트의 작품 세계를 지배한다.전시 2부에서 마주하는 그

    2026.03.26 17:14
  • 미술관 앞마당에 등장한 SWIM 큐브…서울은 아직 보랏빛

    “I just wanna dive, I just wanna dive.”서울 사간동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에서는 지금 방탄소년단(BTS) 신곡 ‘SWIM’이 울려 퍼진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푸른색 구조물 ‘BTS 사운드 큐브’다. 매달린 파란색 종이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파도 소리를 닮은 소리가 퍼진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BTS 노래를 말 그대로 ‘온몸으로’ 들을 수 있다. 밤이 되면 이 구조물 바깥에는 ‘KEEP SWIMMING’ 문구와 빛이 물결처럼 흘러간다. 미술관은 다음달 19일까지 외국인 관람객을 위한 작품 해설 프로그램 ‘MMCA: Meet the K아트’도 운영한다.광화문광장에서 열린 ‘BTS 컴백 공연: 아리랑’은 지난 21일 끝났지만 공연의 여운은 4월까지 이어진다. 도시 곳곳의 랜드마크를 BTS로 꾸미는 체험형 프로젝트 ‘BTS 더 시티 아리랑 서울’(서울 더 시티)을 통해서다. ‘더 시티’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202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다. 당시 BTS는 4회 공연에 30만 명을 동원했고 라스베이거스 곳곳은 BTS 팬클럽 ‘아미’의 상징색인 보랏빛으로 바뀌었다. 부대 행사로 열린 사진전에만 4만4000명이 방문했다. 같은 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전체 방문객(4만5000명)에 버금가는 규모였다.20일 개막한 서울 더 시티는 다음달 19일까지 한 달간 운영된다. 서울 도심 곳곳에서 미디어 연출과 체험 프로그램이 순차적으로 펼쳐진다. 청계천에는 오간수교에서 버들다리까지 약 500m 왕복 산책로를 조성했다. 다음달 12일까지 매일 오후 8~9시 청계천 주변으로 서치라이트쇼가 이어진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4월 12일까지 미디어파사드를 선보인다. 오후 7

    2026.03.26 17:13
  • "뱅크시 실체, 굳이 알려야했나"…'익명 화가' 공개에 비난 여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익명 예술가’ 뱅크시의 본명이 공개되자 미술계 안팎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뱅크시의 실명을 보도한 로이터통신은 “왜 그걸 굳이 밝히느냐”는 원성으로 난감한 처지에 몰렸다.뱅크시는 전쟁·자본주의·권력을 풍자하는 거리 벽화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래피티 작가다. 작품 한 점이 경매에서 수백억원에 거래되고, 담장에 벽화가 그려지면 해당 집 가격이 급등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본인은 한 번도 공식적으로 정체를 밝힌 적 없이 신비주의를 고수해 왔다. 로이터통신은 뱅크시의 실체가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그래피티 작가 로빈 거닝엄(51)이라고 최근 보도했다.로이터통신 기사에 미술계 안팎의 비판이 쏟아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익명성 훼손이다. 뱅크시 측 관계자는 “익명성은 보복이나 검열 없이 권력에 진실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체가 드러난 이상 앞으로 뱅크시가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 같은 민감한 분쟁 지역에서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프렌드레드 펭 런던예술대학 교수는 미국 CNN 방송에 “익명성은 단순한 비공개가 아니라 예술적인 의도가 들어간 선택”이라며 “익명성이 깨진 뒤 작품이 작가의 신상과 묶여서 해석되면 보편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사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2008년 이미 거닝엄을 뱅크시로 지목한 바 있다. 이후 미술계에는 거닝엄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 사실을 굳이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

    2026.03.25 18:11
  • 석공에서 BTS 뷔의 소장 작가로…앨리슨 프렌드 첫 아트북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뷔의 소장 작가로 유명한 앨리슨 프렌드(53)의 첫 아트북 <내 강아지의 사생활>이 국내에 출간됐다. 인스타그램 91만 팔로워를 사로잡은 그의 작품 세계를 담은 책이다.프렌드는 동물을 의인화한 초상화로 이름을 알린 영국 작가다. 17~18세기 유럽 고전 초상화의 구도와 기법을 빌려 개와 고양이에게 사람의 자세와 표정을 입힌 그림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이력이 독특하다. 영국의 소도시 돈캐스터에서 태어난 그는 동물 그림이 취미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그림은 가족의 위로가 됐다. 그림이 좋아 노팅엄 트렌트대에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석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팅엄시 최초의 여성 석공이었다.‘올해의 석공’에 선정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가슴 속에는 여전히 그림에 대한 열정이 끓었다. 석공을 그만두고 7년간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출판사를 돌아다닌 끝에 삽화가가 됐다. 이곳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유명 출판사에서 펴낸 아동도서 20여 권에 삽화를 그리게 됐다. 그러다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코로나19 사태가 전환점이 됐다. 집에 있는 시간 동안 매일 동물 유화를 한 점씩 제작해 SNS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작품은 SNS를 타고 전세계로 퍼졌다. 어느덧 작가로 인정받으며 전시 이력도 쌓였다. 영국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츠 단체전, 미국 LA 개인전 등에 작품을 걸었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서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설립한 카이카이키키 갤러리 부스를 통해 한국 미술 애호가들과 만났다

    2026.03.25 14:13
  • 뱅크시 정체 만천하에 공개되자…"눈치 없어" 비난 폭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익명 예술가’ 뱅크시의 본명이 만천하에 공개되자 미술계 안팎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 사실을 보도한 로이터통신에 “왜 그걸 굳이 밝히느냐”며 원성이 자자하다.로이터통신은 뱅크시의 실체가 영국 브리스틀 출신의 그래피티 작가 로빈 거닝엄(51)이라고 보도했다. 뱅크시는 전쟁·자본주의·권력을 풍자하는 거리 벽화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래피티 작가다.작품 한 점이 경매에서 수백억원에 거래되고, 담장에 벽화가 그려지면 해당 집 가격이 급등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본인은 한 번도 공식적으로 정체를 밝힌 적 없이 신비주의를 고수해 왔다. 로이터통신이 그런 뱅크시의 본명을 지난 13일 밝혔다. 기사에는 1년여에 걸친 탐사보도 과정이 함께 소개됐다. 2022년 우크라이나에 뱅크시가 벽화를 남길 때 목격자들의 증언, 우크라이나 출입국 기록, 2000년대 경범죄 기록 등이 근거였다. 뱅크시 측 변호사 마크 스티븐스는 “보도 내용의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면서도 뱅크시의 본명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하지만 이 기사에 미술계 안팎의 비판이 쏟아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익명성 훼손이다. 뱅크시 측 관계자는 “익명성은 보복이나 검열 없이 권력에 진실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체가 드러난 이상 앞으로 뱅크시가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 같은 민감한 분쟁 지역에서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프렌드레드 펭 런던예술대학 교수는 CNN에 “익명성은 단순한

    2026.03.25 14:10
  •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K컬처, 성덕대왕 신종처럼 세계로 퍼져가길"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박물관에서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K컬처 확산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상설전시관을 함께 둘러봤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K팝 가수의 앨범에 우리 문화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 사유의 방, 분청사기·백자실, 청자실, 감각전시실 등을 차례로 소개했다.유 관장은 “그중 특히 들려주고 싶은 것은 ‘성덕대왕 신종’의 소리였다”며 “음악 하는 사람이면 이 소리는 꼭 들어봐야 한다고 방 의장에게 권했다”고 했다. 1000여 년 전 신라 장인이 빚어낸 종소리는 장중하면서도 맑고, 한 번 울리면 맥놀이가 길게 이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성덕대왕 신종의 명문에는 이 소리가 ‘진리의 원음’이라고 새겨져 있다. 부처님 말씀을 글로 옮기면 불경이 되고, 모습을 형상으로 옮기면 불상이 되듯, 목소리를 옮겨놓은 것이 바로 종소리라는 의미다.방 의장은 성덕대왕 신종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 소리는 BTS의 새 앨범 수록곡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문화유산의 ‘원음’이 오늘의 음악 속으로 들어가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셈이다.유 관장은 ‘박물관이 K컬처의 뿌리’라고 불리는 까닭도 여기서 찾았다. 박물관의 유물이 오늘의 감각과 만나 새로운 콘텐츠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BTS가 광화문을 화려하게 수놓고 블랙핑크가 국립중앙박물관을 핑크색으로 물들이는 가운데, 전통과 현대는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고 있다”며 “그 만남 속에서 K컬처는 시대의 언어이자 세계적 문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

    2026.03.23 18:11
  • [이 아침의 화가] 비움·절제 벗어나 '파격의 美' 그리다

    1970년대 한국 화단은 단색화의 전성기였다. 흰색, 회색, 베이지색으로 캔버스를 채우고 비움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던 그때, 이명미(76·사진)는 빨강과 파랑을 거침없이 짜냈다. 동물과 사람을 아이 그림처럼 단순하게 그리고 캔버스 위에 글씨까지 써넣었다.홍익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 창립 멤버이자 최연소 여성 참가자로 화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반세기 넘게 구상과 추상, 원색과 문자, 회화와 콜라주를 한 화면에 뒤섞어 캔버스에 풀어냈다. 지난해 그는 “도전적 상상력과 색채감각으로 예술성 및 실험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와 함께 이인성미술상을 받았다.서울 한남동 우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얼마나 많은 이명미가 필요한가’에서 그가 걸어온 길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작 ‘랜드스케이프’는 1990년에 그린 그림을 잘라 새 캔버스에 붙인 뒤 2026년 붓질을 이어 그린 작품이다. 36년 전의 이명미와 지금의 이명미를 한 작품에서 함께 만날 수 있다. 전시는 5월 9일까지.성수영 기자

    2026.03.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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