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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 성수영 기자
    성수영 기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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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입니다. 미술과 문화재, 문화체육관광부를 취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 대부업체 창고에 있던 '십자가 위 그리스도'…가나에 정착하다

    “무슨 예수상이 이렇게 무섭고 투박해요.”1970년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서울 동선동 작업실. 작품을 의뢰한 교회 관계자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사진)가 완성됐다는 연락을 받고 들뜬 마음으로 달려왔는데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어서다. 이들이 주문했던 조각상의 모습은 성스러운 ‘신의 아들’. 하지만 예수의 얼굴은 잿빛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질감은 거칠었다. 결국 교회 측은 ‘반품’을 선언했다.지금이야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리는 한국 최고의 근현대 조각 거장으로 인정받지만, 당시 권진규는 가난한 무명 조각가에 불과했다. 조각상은 그런 권진규가 모처럼 받은 일감이었다. 그는 좌절했다. 작품은 어디 보낼 곳이 없어서 작업실 벽에 걸어뒀다. 3년 뒤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가 내려다보는 곳에서였다.50년이 지난 지금 조각상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3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신소장품전 2022’에 나와 있다. 가나문화재단이 지난해 구입한 소장품을 소개하는 전시다.조각상이 가나문화재단 손에 들어가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30년 넘게 유족이 보존하는 작업실에 걸려 있었던 이 작품은 권진규미술관 건립이 두 차례 불발되면서 한때 대부업체 창고에 보관돼 있었다. 그러다 2019년 소송을 통해 유족에게 반환됐고, 이호재 가나아트·서울옥션 회장이 구입을 결정하면서 지난해 12월 중순 재단에 인도됐다. 이보름 가나문화재단 큐레이터는 “권진규의 대표작이자 가장 큰 작품을 소장하게 돼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예수상 외에도 전시장에

    2023.01.25 17:52
  • '반짝이 의자' 앞에서 눈물 흘린 관람객…이유 봤더니

    2009년 6월 중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다음 달 영국 런던에서 시작하는 월드 투어 '디스 이즈 잇(This is it)'의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었다. 탁월한 노래, 화려한 춤과 퍼포먼스로 세계를 사로잡았던 잭슨. 하지만 그의 나이도 어느덧 50줄이었다. 26년 전 처음으로 문워크를 선보였을 때처럼 무대 위를 날아다닐 수는 없었다.그래도 잭슨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관객들에게 최고의 공연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는 매일같이 혹독한 연습을 반복했다. 노래와 춤은 물론, 완벽주의자답게 백댄서와 코러스, 무대효과, 의상 등 공연의 모든 부분을 직접 챙겼다. 월드투어 중 숙소에서 사용하기 위한 의자까지 주문 제작해 놨다. 반짝이는 것이라면 뭐든지 좋아했던 잭슨답게 이 의자에는 크리스털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 의자에서 지친 몸을 쉬는 일은 없었다. 투어 시작을 3주 앞둔 25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놓인 '반짝이 의자' 앞에 오래도록 머무르는 관객이 많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 이곳에선 세종문화회관과 이랜드뮤지엄이 공동 주최한 '셀럽이 사랑한 Bag&Shoes'전이 열리고 있다. 세계적인 스타와 유명 인사의 신발·가방 등 패션 소장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사연을 모르고 그냥 둘러보면 특별한 것 없는 물건들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스타, 내가 아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잭슨의 의자처럼. 서영희 이랜드뮤지엄 이사는 “의자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잭슨의 팬들도 있다”고 말했다.전시장 초입에서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썼던 모자(주케토)와 레오13세 전

    2023.01.25 12:53
  • '재벌집 맏며느리'도 몰랐다는데…대체 '단색화'가 뭐길래

    “형님, 단색화가 뭔지는 아세요?”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재벌가 둘째 며느리가 앙숙인 첫째 며느리에게 ‘교양 없다’며 조롱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이를 본 미술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오류 지적.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2000년대 초반인데, 단색화라는 단어는 2012년 이후에 나왔기 때문이다.다른 하나는 “우리도 단색화가 뭔지 모른다”는 뜻밖의 고백이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의 단색화’ 전시를 연 뒤 너도나도 이 단어를 따라 썼을 뿐, 단색화의 정의조차 미술계에서 명확하게 규정한 적이 없어서다. 대략 ‘한 색조로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작업 과정이 반복적인 그림’ 정도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게 전부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단색화가 뭔지 궁금하다’고 작가한테 말하고 싶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단색화 핵심은 절제·응축·은은함”어느새 ‘한국 대표 미술 장르’가 돼버린 단색화가 궁금한 미술 애호가들을 위한 전시회가 마련됐다. ‘5대 메이저 갤러리’로 꼽히는 학고재가 미술평론가 이진명과 함께 단색화를 파고드는 전시회 ‘의금상경(衣錦尙絅)’을 서울 삼청동 전시관에서 열고 있다. 우찬규 학고재 회장은 “한국 미술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정작 우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 사조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해보려 했다”며 전시회를 연 이유를 설명했다.통상 이런 일은 학계와 평론계의 몫이다. 아무

    2023.01.24 16:59
  • "나는 그림의 신"…다빈치 이긴 '국민 화가' 그림 어떻길래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1520년 8월 2일 벨기에 앤트워프의 한 여관방. 어두운 등불 아래, 중년의 남자가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이따금 뭔가를 웅얼거리며 펜을 든 손을 움직이는 걸 보니 중요한 일을 하는 모양입니다. 뭐라고 혼잣말을 하는지 한 번 들어볼까요.“그때 그 식당에서 팁을 너무 많이 냈군. 그래도 상대방이 밥을 샀으니…. 계산해보니 이득이야. 아니다, 내가 준 선물값을 생각하면 손해인가. 아쉽다 아쉬워….” 그때 남자의 아내가 침대에서 벼락같이 일어나 소리를 칩니다. “지긋지긋한 양반아, 쪼잔하게 이 밤중까지 그런 거나 계산하고 앉아있어? 빨리 잠이나 자!”밤늦게 가계부의 자잘한 내용을 챙기던 이 사람, 꼼꼼한 장사꾼인가 싶지만 사실은 예술가였습니다. 그것도 독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였죠. 그는 이때 ‘떼인 돈’을 받아내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돈을 떼먹은 사람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스페인·네덜란드·이탈리아 왕 카를 5세였다는 겁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세계 최강자’에게 돈을 떼였을 때 ‘똥 밟았다’ 생각하고 참았을 겁니다.하지만 돈에 대한 뒤러의 집착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여행에서 꼼꼼히 일지를 적었는데, 책 한 권 전체가 다 돈 이야기입니다. 숙박비나 식비는 물론 언제 과소비했다느니, 이발비가 어떻다느니 하는 내용이 깨알같이 적혀있지요. 역사학계에선 이 일지를 당시의 물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취급할 정도입니다. 돈을 이렇게나 밝히는 사람이 어떻게 훌륭한 예술가가 됐을까

    2023.01.21 07:30
  • 르네상스에 입힌 상상력…"누가 봐도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싶었다"

    명화(名畵)란 무엇인가.표준국어대사전엔 ‘아주 잘 그린 그림, 또는 유명한 그림’이라고 적혀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박민준 작가(52)의 그림은 명화다. 그의 그림을 본 대다수 사람이 ‘아주 잘 그린 그림’이라는 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유럽의 고풍스러운 미술관에 걸려 있을 법한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 회화를 연상시킨다. 우아한 색감과 완성도 높은 구성, 극도로 정밀한 묘사 때문이다. 작품 주제도 독특하다. 자신이 만들어낸 판타지 세계 속 서커스단을 그린다. 그 상상 속 이야기를 소설책 두 권으로 정리해 출판하기도 했다. 잘 그리고 독창적인 데다 배경 설명이 탄탄하니, 요즘 관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박 작가의 열 번째 개인전 ‘X’엔 연일 사람들로 북적인다.이상한 점도 있다. 요즘 웬만한 현대미술관과 비엔날레 전시장에 나온 동시대 미술 작품은 대부분 설치미술 아니면 미디어아트다. 회화는 대부분이 추상화다. 주제도 한국, 여성, 흑인 등 작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배경으로 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 속 이야기를 서양의 고전 회화풍으로 그리는 박 작가는 시류를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지난 12일 갤러리현대에서 만난 그에게 물었다. “왜 이런 그림을 그리나요.”그림의 美, 르네상스 때 정점그의 대답은 짧고 명료했다. “아무 배경지식 없이 봐도 감동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입니다.”홍익대 미대를 다니던 그는 극사실주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림 그리는 기술엔 자신이 있었지만,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마음이 아니라

    2023.01.19 17:00
  • 설 연휴, 블록버스터급 전시 '몰아보기' 해볼까

    영화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만 ‘몰아보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시장 거리에 따라 미술이나 유물 전시도 얼마든지 몰아서 볼 수 있다. 올해 설 연휴는 ‘전시 몰아보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두 곳만 둘러봐도 세계적인 유물과 국내외 거장의 그림 등을 내세운 ‘블록버스터 전시’를 여럿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쁜 연말 연초를 보내느라 삭막해진 마음을 인문학과 미술로 촉촉하게 적셔보는 건 어떨까.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해외 미술관·박물관의 소장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은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이 소장한 명작 96점을 가져온 전시다. “이렇게 좋은 작품으로 둘러싸였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안 오겠느냐”(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는 평가처럼, 이 전시는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전시 중 하나다. 폐막일이 오는 3월 1일인 만큼 남은 전시 기간이 길지 않다. 전시의 단점은 딱 하나. 관람객이 너무 많아 표를 사고 입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의 유물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세계 최고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소장품 66점을 빌려왔다. 메소포타미아는 인류 최초의 문자(쐐기문자)가 태어난 곳이다. ‘모든 이야기의 원조’로 불리는 길가메시 서사시, 함무라비 법전, 60진법, 도시의 개념도 이곳에서 나왔다. 전시장에서 쐐기문자 기록물과 조각상, 부조 등 유물을 통해 4500년 전 인류 문명의 토대를 닦은 이

    2023.01.19 16:04
  • 백자 위 호랑이와 까치가 전하는 '한국의 美'

    도자기 위에 그려진 호랑이의 모습이 익살스럽다. 머리 꼭대기에는 까치 한 마리가 올라앉아 있다. 새해 부적으로 쓰였던 호작도(虎鵲圖)다.최원선 작가는 백자 도자기 판에 한국의 문화유산을 새겨넣는 도자회화(陶瓷繪畵)가다. 도자기 판 위에 물감을 바른 뒤 뾰족한 도구로 그림을 그리고 이를 1250도 가마에서 구워내 작품을 완성한다. 도자기를 고온에 굽는 과정에서 작품이 깨지거나 색이 변하기 일쑤지만, 일단 완성된 작품은 수백 년을 너끈히 견딜 정도로 생명력이 길다.최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성북구 연우재갤러리에서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열린다. 새해를 기념한 호작도I(사진) 등 호작도 시리즈, 경복궁 근정전 근처에 놓인 청룡·백호·주작·현무, 궁궐 지붕에 놓인 조형물인 '잡상' 등을 도자기에 표현한 작품들이 나온다. 최 작가는 "작품을 통해 한국의 문화유산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간직되길 바란다"고 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2023.01.18 20:49
  • 올해 미술투자 '신중론'…"처분 쉽고 낙폭 낮은 작가 작품 찾아라"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자산시장엔 이런 격언이 있다. 급등한 자산일수록 가격이 떨어질 때 낙폭이 크다는 뜻이다.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마라”는 말도 자주 쓴다. 하락장에서 신중을 기하라는 뜻이다.미술시장에서도 이런 격언들이 적용된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18일 발표한 ‘미술시장 분석보고서’를 통해 “올해 시장이 큰 폭의 조정을 겪을 것이며 미술품 투자로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경매시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하락세를 탔다. 2021년 전년보다 2.9배(1153억→3294억원) 급성장한 국내 경매시장 낙찰총액은 지난해 32.4% 급감했다.작품값이 가파르게 오른 작가일수록 하락폭이 컸다. 낙찰총액을 기준으로 보면 ‘전통의 강자’ 이우환(-36%) 박서보(-28.6%) 등은 시장 전체와 비슷한 하락폭을 보였지만 우국원(-57.8%) 문형태(-66.7%) 등 최근 몇 년 새 가격이 급등한 작가는 상대적으로 부침을 크게 겪고 있다. 대체불가능토큰(NFT) 시장은 통계를 집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이런 추세는 해외 경매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크리스티·소더비·필립스 등 3대 경매사의 현대미술(동시대미술) 경매 매출은 전년 대비 15.8% 하락했고, 1974년생 이후 젊은 작가의 작품(초현대미술) 매출은 22.9% 하락했다. 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상반기 인기를 끈 아프리카 예술 등 신흥 장르 시장이 하반기 들어 냉각됐다”며 “대신 백인 남성 작가들의 작품이 다시 인기를 끄는 등 불황을 맞아 컬렉터들이 전통적인 취향으로 회귀했다”고 했다.정준모 센터 대표는 “올해 미술품 투자로 수익을 올

    2023.01.18 18:24
  • '아내의 친구와 과감한 불륜'…연인 죽자 보인 광기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1357년 5월 28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새로운 왕의 즉위식이 열리는 날이었거든요.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거리는 한껏 차려입은 시민들로 붐볐습니다. 노점상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푸른 하늘 높이 울려 퍼졌고요. 그야말로 완벽한 봄날이었습니다. 물론 궁전에서 즉위식을 치르고 있는 왕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습니다.대조적으로, 행사에 참석한 포르투갈 귀족들과 신하들의 얼굴은 묘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앞으로 모실 왕에게 잘 보여야 하니 기뻐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보통일 텐데요. 바닥만 내려다보는 사람,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사람마저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왕은 태연하게 즉위식을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입을 엽니다. “이제 모두 새로운 왕비에게 경의를 표하라.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고 충성을 맹세하라.”참석자들 사이에 경악과 공포가 번졌습니다. 그도 그럴 만했습니다. 옥좌에 앉아있는 왕비는 사실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죽은 지 한참 오래돼서 다 썩어가는 시신이었습니다. 참석자들의 표정이 안 좋은 것도 시신에서 나는 냄새 탓이었습니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자 왕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습니다. “지금 왕비를 모욕하는 것이냐?” 왕의 눈에서 광기가 번뜩였습니다. “너희들이 내 아내를 이렇게 만든 것 아닌가?”지금 말씀드린 스토리는 14세기 포르투갈의 왕 페드루 1세(1320~1367)와 그의 아내 이네스 카스트로(1325~1355) 이야기의 한 부분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춘향전을 알듯, 포르투갈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얘기죠. 유럽

    2023.01.14 07:30
  • 불황 그림자 유럽은 '선택과 집중'…아트페어 구조조정

    슈퍼 럭셔리 자동차를 생산하는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최고 실적을 거뒀다. 모두 6021대의 차를 팔아치웠다. 118년 역사상 6000대 이상을 판매한 것은 처음이다. 대형 갤러리를 중심으로 한 미술계는 롤스로이스 판매 성적에 반색했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악화하고 있지만 최상위권 부자들의 씀씀이는 줄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미술시장 매출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부류는 경기 변동과 상관없이 ‘특급 명작’을 사들이는 최상위권 부자다. 1902년 창간한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 전문지 아트뉴스는 이렇게 분석했다. “올해 미술시장도 괜찮을 것 같다.”하지만 미술계 내부 사정은 복잡하다. 초고가 미술품 시장과 대중 작품 거래 시장 사이에 온도차가 크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평범한 부자’가 살 만한 일반적인 작품들은 구매의 손길이 딱 끊긴다. 불황 때마다 미술계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다.이런 현상은 막대한 돈이 오가는 아트페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세계 최대 전시업체 MCH그룹은 2010년 시작한 아트페어 ‘마스터피스 런던’ 개최를 올해부터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지난해 갤러리 128곳이 참여하는 등 호평받아온 행사였다. MCH그룹은 “물가가 오르고 업황이 악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MCH그룹이 본격적인 ‘아트페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고 본다. 한정된 명작 수량을 지난해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기 시작한 ‘파리+’ 등 핵심 아트페어 한두 곳에 몰아주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얘기다. 최근 세계 전시업계에서는 이 같은 ‘약육강식’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

    2023.01.11 18:14
  • [이 아침의 화가] 뉴욕의 쓸쓸함, 외로움…현대인 고독 담아낸 작가 에드워드 호퍼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은 세계 미술의 중심지다. 사람과 돈이 모이는 곳이어서다. 전 세계에서 그림 좀 그린다는 화가들은 죄다 뉴욕에 짐을 푼다. 상상력을 풀어내기 좋은 분위기에 작품을 사줄 ‘큰손’ 컬렉터도 넘쳐나기 때문이다.세계 미술 수도의 ‘국가대표 작가’는 누굴까.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이런 설문조사를 하면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평생을 뉴욕에서 작품 생활을 한 그는 쓸쓸한 풍경과 외로움, 후회, 지루함 등 미묘한 감정을 잘 표현해 ‘현대인의 고독을 가장 잘 풀어낸 화가’란 평가를 받는다.호퍼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작가’로도 불린다. 수많은 예술가가 호퍼의 그림을 모티브로 소설과 시를 쓰고 영화를 찍었다. 아쉬운 건 호퍼가 세상에 남긴 작품 수가 366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작품 수가 적은 데다 웬만하면 1000억원이 넘는 비싼 가격 탓에 미국이 아닌 장소에서 그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그의 작품들이 오는 4월 서울시립미술관에 걸린다. 미국 대표 작가의 주요 작품을 비행기값 들이지 않고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미술 애호가들에겐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성수영 기자

    2023.01.11 18:13
  • 나란히 잠든 연인, 반려견 돌보는 아이…바라만 봐도 행복해진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러시아 귀족 부인의 불륜과 몰락 이야기를 다룬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렇다. 모든 불행에는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다. 그래서 스토리가 된다. 고통과 상실, 이별을 주제로 삼은 예술 작품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림에선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와 빈센트 반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이 이런 예다.프랑스 출신 작가 다비드 자맹(52)은 반대로 행복을 그리는 화가다. “예술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별 얘깃거리가 안되는 행복을 그리는데도 그는 전 세계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인기 작가다.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등 문화 선진국이 앞다퉈 그를 찾는다.이런 자맹의 그림 150여 점(미공개 신작 100점 포함)이 다음달 4일 ‘서울 나들이’에 나선다. 장소는 서울 여의도의 ‘핫 플레이스’가 된 더현대서울에 들어선 전시공간 ALT.1(알트원). 전시를 주최하는 한국경제신문과 비아캔버스는 ‘다비드 자맹: 프로방스에서 온 댄디보이(멋쟁이)’를 최대 44% 싸게 만날 수 있는 ‘얼리버드’ 입장권을 11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판매한다. 가격은 1만원. 성인(1만8000원)과 청소년(1만5000원), 어린이(1만2000원) 정상가보다 17~44% 저렴하다. 인터파크와 네이버 등에서 ‘다비드 자맹’으로 검색한 뒤 예매하면 된다.자맹은 2년 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연 ‘내면 세계로의 여행’ 전시를 통해 국내 관객에게 처음 인사했다. 코로나19가 상륙해 전국에 비상이 걸렸

    2023.01.10 18:12
  • "제보하면 죽인다" "화장 좀 해라"…국립현대미술관의 '민낯'

    국고에 넣어야 할 ‘나랏돈’ 3200만원을 직원 격려금으로 풀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은 일부가 고장 난 채로 전시됐다. 공식 유튜브 계정이 해킹됐는데도 상급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에 보고도 안 했다. 문제가 터지자 상급자가 부하 직원에게 “나가서 (녹음하고 언론에 제보하는 등) 딴소리하면 죽인다”는 조직. 관리자가 여성 직원에게 “옷은 이렇게 입고 할거야? 화장 좀 해라”고 하는 직장.허섭한 동네 미술관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2년간 벌어진 일이다. 문체부는 9일 이 같은 내용의 ‘국립현대미술관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약 한 달간 진행한 감사에서 발견한 문제는 총 16건. 소장품을 구입할 때 자문하는 외부 전문가 수(50명→11명)를 마음대로 줄이는가 하면, 국고로 반납해야 하는 세금 3200만원을 직원 34명에게 나눠주는 상식 밖의 잘못이 여럿 발견됐다. 일부 직원이 시간외근무수당을 부당 수령(총 129만원)하고, 규정에 어긋나는 수의 계약(약 4억원 규모)을 맺은 게 ‘사소한 잘못’으로 보일 정도였다.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사내 갑질이었다. “(얼굴을 점수로 매기면) 너는 10점, 너는 90점, 너는 50점” “너는 수준이 초등학생이다” 등 폭언이 오갔고, 윤범모 관장(사진)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체부는 “윤 관장이 사내 갑질에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미술관 조직 전반에 불신이 퍼졌다”고 밝혔다.한국 대표 미술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상당수 미술계 인사는 “윤 관장이 온 뒤 이런 난맥상이 시작됐

    2023.01.09 18:06
  • 현대미술이 이렇게 쉬웠나요?…48인 작가 특별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왜 이런 재료와 기법을 택했나. 대체 작가가 표현하려는 게 뭘까.난해한 현대미술 작품을 접한 관람객들의 머릿속은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작품 설명은 불친절하다. 아무리 읽어도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큐레이터에게 묻기는 싫다. 무식한 사람 취급당할까봐. 궁금한 게 목 끝까지 차올라도 입 밖엔 안 나온다. 그렇게 이번 전시회도 이해하지 못한 채 패스. 이런 경험이 자꾸 쌓이면 현대미술이 싫어진다. 현대미술을 다룬 기사에 어김없이 “미술은 사기”란 댓글이 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서울 부암동에 있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조금 다르다. 작품마다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다. 그래서 현대미술에 대한 비호감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진다. 지금 방문해보면 알 수 있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이 미술관에는 그동안 이곳에서 전시회를 연 작가 48명의 작품을 벽에 걸었다. 그 옆에는 작가들의 자기소개서와 작품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10주년 맞은 ‘친절한 미술관’이름만 보면 국공립미술관 같지만, 서울미술관은 안병광 유니온제약 회장이 설립한 사립미술관이다. 안 회장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연매출 5000억원대 의약품 유통업체를 일군 기업인이다. 동시에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큰손’ 컬렉터다. 그걸 담으려고 전시관 2개 동, 너비 4만9500㎡짜리 대형 미술관을 지었다. 규모로 따지면 삼성 리움미술관에 이어 사립미술관 중 두 번째다.서울미술관이 있는 부암동은 화랑과 미술관이 집결해 있는 삼청동·한남동·평창동 등에 비해 좋은 입지는 아니다. 대중교통 접근성도 떨어진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2023.01.08 17:41
  • "부자들은 다 죽여라"…'공산주의 전쟁' 언제부터 벌어졌나[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나는 노상강도지만 정정당당하게 힘과 폭력을 사용해서 재산을 빼앗는다. 자네 같은 비열한 은행가와는 다르지. 자네는 위험을 감수하지도 않고 책상 뒤에 숨어서 무고한 사람들을 등쳐 먹잖아. 너처럼 돈 빌려주고 이자나 받는 더러운 인간은 교수대에 매달려야 해.”범죄자가 멀쩡한 은행가에게 훈계라니, 대체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죠. 하지만 1500년대 유럽 사람들에게는 이런 얘기가 꽤 설득력이 있었나 봅니다. 이 대화는 독일의 작가 울리히 폰 후텐이 쓴 <도적들>이라는 소설에 등장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기사(겸 노상강도)는 자본가들을 이런 식으로 맹비난합니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당시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 크던 농민들은 상당수가 이 책에 공감했다고 합니다.지난주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 중 하나로 불리는 독일 기업가 야코프 푸거(1459~1525)의 성공 스토리를 다뤘습니다. 이번 회에서는 푸거가 재산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어쩌다 그의 행동이 종교개혁(가톨릭과 개신교의 분열)과 ‘자본주의 vs 공산주의’ 전쟁으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이야기를 꼭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이 기사부터 먼저 보신 뒤에 읽으셔도 좋습니다). 그러면 바로 시작합니다. 가톨릭-기독교, 푸거 때문에 나뉘었다고?부(富)를 쌓는 건 어렵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게 쌓은 부를 지키는 일입니다. 특히 큰 부자일수록 그렇습니다.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한때 큰 부를 쌓았지만 처절하게 몰락해 알거지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수없이

    2023.01.07 15:27
  • 4월부터 운동하면 '운동용품값' 최대 5만원 준다

    꾸준히 체육활동을 하는 국민은 올해 4월부터 연간 최대 5만원 상당의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운동하는 국민에게 국가가 스포츠 용품 등을 살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하는 ‘국민체력 100’ 프로그램을 통해서다.문화체육관광부는 5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문체부 업무계획의 핵심은 ①K팝, 드라마 등 K콘텐츠 제작 및 수출을 지원하고 ②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관광업을 적극 지원해 활력을 불어넣으며 ③장애인들이 미술관·박물관 등 문화시설에 접근하기 쉽도록 관련 시설을 개선하는 것이다. 2023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세계 15개 도시에서 한국 관광을 홍보하며, 콘텐츠 인재 양성과 스타트업 지원에 대거 예산을 투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관광업·문화콘텐츠 관련 업종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국민 입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색 사업은 생활체육 분야의 ‘국민체력 100’ 프로그램이다. 체육활동을 하고 인증을 받으면 국가에서 체육용품 등을 살 수 있는 포인트를 받는게 골자다.포인트를 받는 과정을 탁구로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국민체력100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한 뒤, 정부가 인증한 탁구장에 출석을 10번 하면 1000포인트(1000원 상당)가 지급된다. 포인트는 최대 5만포인트까지 쌓인다. 이 포인트로는 탁구채와 탁구공 등 체육용품을 구입할 수 있다.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등 일반적인 생활스포츠에 모두 적용되며 골프 등 일부 종목은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상세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4월부터 시범사업 개념으로 사업을 시행할 것&rdqu

    2023.01.05 16:57
  • 클림트부터 고흐까지…전세계 '거장들의 걸작展' 쏟아진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식 안내 책자 미쉐린가이드는 별(★)의 개수로 음식점의 가치를 평가한다. 별 하나는 ‘그 지역을 방문하면 들러볼 만한 집’이란 뜻이다. 별 둘은 ‘원래 목적지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도 가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최고 평점인 별 셋의 뜻은 이렇다. ‘그 음식점에 가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도 여행길에 오를 가치가 있다.’그런 의미에서 2023년은 미쉐린 별 세 개급의 ‘미술 여행’을 떠나기에 좋은 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비엔날레와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가 동시에 열린 지난해처럼 세계적인 미술 행사는 없지만, 1년 내내 세계 곳곳에서 놓치면 아쉬울 만한 블록버스터급 전시들이 열린다. 한국경제신문이 올해 상반기 유럽·미국에서 열리는 ‘스타급’ 전시들을 정리했다. 클림트·반 고흐·로댕 한자리에서 만나볼까유럽에서 열리는 별 셋짜리 전시 중 최고봉은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미술관에서 2월 3일 개막하는 ‘골든보이 클림트’ 전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오는 8일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와 기본적으로 같다. 다만 벨베데레미술관 영구 소장품이자 구스타프 클림트의 최고 역작으로 꼽히는 ‘키스’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다른 점이다.오스트리아 벨베데레미술관 300주년, 네덜란드 반고흐미술관 50주년을 기념해 공동 개최한 이번 전시에는 지난 60년간 일반에 공개된 적 없는 클림트의 작품을 비롯해 유럽 전역과 일본, 미국 등에서 모은 클림트의 진귀한 그림이 즐비하다. 반 고흐, 로댕, 마티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클림트에게 영감을

    2023.01.05 16:45
  • 문체부, 언론진흥재단 예산 대폭 삭감

    문화체육관광부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경상경비와 업무추진비를 대폭 삭감했다. “지난 5년간 재단 수입이 큰 폭으로 늘었지만 내실은 키우지 않고 직원들 배만 불렸다”는 게 문체부의 진단이다. 재단의 인건비와 경상경비 등 일반관리비가 삭감된 건 2010년 기관 출범 이후 처음이다.문체부는 3일 이런 내용을 담은 ‘재단 방만 경영 요소를 개혁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재단 수입이 급증하기 시작한 건 2018년 12월부터다. 재단에 정부 광고 집행 대행 업무를 독점적으로 주고, 광고비의 10%를 수수료로 지급하는 내용의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 시행에 관한 법률’(정부광고법)이 시행된 덕분이다. 그 결과 2018년 726억원이었던 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 수입은 지난해 1035억원으로 늘었다.덩달아 예산도 급격히 증가했다. 사실상 세금으로 거둬들인 수입이지만, 그 덕을 가장 많이 본 건 재단 직원들이었다. 문체부 관계자는 “재단의 인건비와 경상경비 등 기관운영비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한 반면 집행률이 부진한 사업, 유사·중복 사업을 방치하는 등 사업은 뒷전이었다”고 말했다.문체부는 올해 정부 광고 수수료 관련 예산을 지난해(1035억원)보다 21억원 줄어든 1014억원으로 승인했다. 인건비 등 일반관리비는 약 7억원 삭감했다. 특히 경상경비는 10%, 업무추진비는 15% 감축했다.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인 ‘경상경비 -3%, 업무추진비 -10%’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문체부는 사업 구조 재편 방향도 제시했다. 집행률이 부진한 ‘정부 광고 협업사업’은 지난해 120억원에서 올해 84억원으로 감액했다. 대신 새로운 수요

    2023.01.03 17:58
  • '업추비 -15%' 철퇴 맞은 언론진흥재단…"방만경영 탓"

    문화체육관광부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재단)의 경상경비와 업무추진비를 대폭 삭감했다. “지난 5년간 재단 수입이 큰 폭으로 늘었는데도 내실은 키우지 않고 직원들 배만 불렸다”는 게 문체부의 진단이다. 재단의 인건비와 경상경비 등 일반관리비가 삭감된 건 2010년 기관 출범 이후 처음이다.문체부는 3일 ‘재단 방만 경영 요소를 개혁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재단 수입이 급증하기 시작한 건 2018년 12월부터다. 이 때 재단에게 정부 광고 집행 대행을 독점시키고 광고비 10%를 수수료로 지급한다는 내용의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정부광고법)이 제정됐다.목을 꼬박꼬박 통행료를 받게 되면서 2018년 726억원이었던 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 수입은 매년 큰 폭으로 늘어 지난해 1035억원에 이르렀다.수입이 급증하자 예산 규모도 급격히 늘어났다. 사실상 세금으로 거둬들인 수입이었지만, 그 덕을 가장 많이 본 건 재단 직원들이었다. 문체부 관계자는 “재단의 인건비와 경상경비 등 기관운영비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한 반면 집행률이 부진한 사업, 유사·중복 사업을 방치하는 등 사업은 뒷전이었다”고 말했다.이에 따라 문체부는 올해 정부광고수수료 관련 예산을 지난해(1035억원)보다 21억원 줄어든 1014억원으로 승인했다. 인건비 등 일반관리비는 약 7억원 삭감했다. 특히 경상경비는 10%, 업무추진비는 15%나 감축했다.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인 ‘경상경비 -3%, 업무추진비 -10%’를 훨씬 웃도는 숫자다.문체부는 사업 구조 재편 방향도 제시했다. 집행률이 부진한 &lsq

    2023.01.03 12:34
  • [이 아침의 화가] 유물 취급받던 인물화로 추상예술계 호평 이끌어…'사실주의' 필립 펄스타인

    사람들은 화가의 이미지로 외골수를 떠올린다.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화풍과 작업 방식을 고집하는 ‘수도승’ 같은 화가들이 그동안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미술계만큼 유행에 민감한 분야도 없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으면 작품이 안 팔릴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시대에 뒤처졌다’는 핀잔도 듣는다.지난달 20일 세상을 떠난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필립 펄스타인(1924~2022·사진)이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펄스타인이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1940년대 후반 세계 미술계의 대세는 ‘추상표현주의’였다. 구상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았다.하지만 펄스타인은 누드화 등 인물화를 고집했다. 펄스타인은 전통적인 누드화와 달리 구부러지거나 뒤틀린 인체를 그렸다. 지루해하는 모델의 표정까지 화폭에 담았다.미술계도 펄스타인의 끈기 있는 도전에 “심미성과 예술성을 겸비했다”는 호평을 내놓기 시작했다. 저명한 미술평론가 로버트 휴즈는 “펄스타인은 사실주의 그림이 심오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평가했다.성수영 기자

    2023.01.02 18:06
  • 갑옷 입은 토끼·털모자·연적…계묘년 맞아 관련 유물 '총출동'

    새해가 밝을 때마다 국내 주요 박물관은 소장 유물을 통해 그해 띠동물을 조명하는 전시를 연다. 특별히 새롭거나 대단한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닌데도 이런 전시는 항상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띠동물이 토끼처럼 친숙하고 귀여운 동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귀여운 동물의 모습과 이를 묘사한 조상들의 재치를 한 자리에서 둘러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 때문이다.국공립박물관은 올해도 어김없이 토끼와 관련된 전시들을 연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준비한 특별전 ‘새해, 토끼 왔네!’에서는 70여 점의 토끼 관련 유물을 통해 옛사람들이 토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토끼털을 이용해 만든 여성용 방한모 ‘풍차’, 토끼를 수놓은 베갯모판 등 일상용품과 함께 ‘수궁가’의 한 장면을 묘사한 ‘토끼와 자라 목각인형’ 등 설화 속 토끼 관련 작품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토끼와 관련된 현대의 캐릭터 상품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전시는 오는 3월 6일까지.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을 여는 대신 보물찾기를 하듯 상설전시실 곳곳에 토끼 관련 유물들을 배치했다. 전시 제목부터 ‘토끼를 찾아라’다. 토끼 세 마리가 자기 몸보다 훨씬 큰 향로를 짊어진 국보 ‘청자 투각 칠보 무늬 향로’, 토끼가 갑옷을 입고 칼을 든 모습을 돌에 새긴 ‘십이지 토끼상’, 조선 19세기 말 유물인 ‘백자 청화 토끼 모양 연적’ 등에 나타난 토끼의 귀여운 모습이 관람객들의 미소를 자아낸다.국립고궁박물관은 1층 상설전시장 대한제국 전시실에서 ‘토끼와 까마귀가 새겨진 은주전자’를 1월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내놨다. 조

    2023.01.02 17:33
  • 별주부전·달토끼 속 주인공…약하지만 영특하고 헌신적인 동물

    2023년 계묘(癸卯)년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위태로운 경제와 사회 곳곳의 대립, 점점 심해지는 저출산 등 해법을 찾기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다. 영특한 꾀로 위기를 극복하고 전진하는 토끼에서 위기를 헤쳐나갈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토끼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큰 귀와 360도를 볼 수 있는 눈, 자유자재로 땅을 팔 수 있는 앞발, 오르막을 달리기 알맞은 뒷발 덕분에 천적들의 위협 속에서도 번성해 왔다.토끼가 힘센 동물들의 힘을 역이용해 이익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많다. 민족 설화 <별주부전>이 대표적 사례다. 가장 오래된 별주부전 얘기는 <삼국사기>에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 보장왕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정탐꾼으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하자 고구려의 신하인 선도혜에게 뇌물을 바치고 살려주길 부탁했다. 선도혜는 토끼가 거북이를 타고 용궁에 갔다가 거짓말로 잘 둘러대 도망쳤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김춘추는 보장왕에게 “땅을 주겠다”고 둘러대고, 무사히 도망쳐 훗날 왕의 자리에도 오른다.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도 있다. 영리한 토끼는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 굴 세 개를 파 놓는다는 뜻이다. 만일을 위해 이중삼중의 대비를 하는 영리한 지혜를 발휘해 위기를 피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토끼는 헌신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불교 설화에 따르면 어느 날 동방을 지키는 신인 제석환인(帝釋桓因)이 누가 진정으로 보살의 길을 걷고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노인으로 변신해 여우 원숭이 토끼에게 각각 먹을 것을 청했다. 여우는 생선, 원숭이는 과일을 가져왔다. 하지만 토끼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2023.01.01 17:22
  • 중견기업 막내아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 된 사연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지난 25일 인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16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드라마의 완성도나 결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만, 한국 최고 재벌의 창업주 진양철 회장 역을 맡은 배우 이성민의 신들린 연기력이 빛났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합니다. 진양철 회장이 한국 경제계 일인자로 등극하게 된 내용을 프리퀄(본편 이전 이야기) 드라마로 보고 싶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배우의 연기력과 진양철 회장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그만큼 뛰어났기에 나오는 반응이죠.뛰어난 사업가가 성공을 거두는 스토리는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배경의 젊은이가 자신의 지혜와 열정, 용기와 끈기로 거대한 부를 일궈내는 얘기니 배울 점도 많고요. 권력과의 유착, 다른 기업과의 경쟁과 암투, 후계 구도를 둘러싼 투쟁 등도 흥미를 돋웁니다.‘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 중 하나로 불리는 독일의 야코프 푸거(1459~1525)의 삶도 그렇습니다. 농부의 손자로 태어난 그는 현재 가치로 500조원 넘는 부를 쌓았습니다. 돈의 힘으로 남부 독일을 다스리는 백작까지 됐지요. 그가 돈을 굴릴 때마다 전 유럽의 정세가 흔들렸고, 영향력은 황제와 교황을 바꾸고 국경을 새로 그을 정도였습니다. 이 모든 얘기를 ‘그때 그 사람들’ 2회에 걸쳐 풀어보겠습니다. ‘중견기업 막내아들’의 탄생1373년 어느 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시청에 비루한 차림의 젊은이가 쭈뼛대며 들어옵니다. 얼굴은 햇볕에 까맣게 그을렸고, 옷에서는 촌티가 풀풀 납니다. 공무원은 생각했습니다. “한몫 잡아보려는 촌놈이 또 하나 왔구만.” 청년의 말은 예상을 빗겨나가지 않습

    2022.12.31 07:45
  • [책마을] 도쿄 특파원이 지켜 본 일본의 '진짜' 위기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은 연예인과 일본 걱정이다.” 일본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기사에는 어김없이 이런 댓글이 따라붙는다. 오랜 불황을 겪고 있다고는 해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미국과 중국에 이은 3위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자산,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기업들, 막강한 소프트파워를 보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나라를 우리가 대체 왜 걱정해주느냐는 게 댓글의 논리다.“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일본이 정말로 흔들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도쿄특파원인 정영효 기자는 <일본이 흔들린다>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경제·정책·산업·인구 등 모든 측면에서 일본이 ‘퍼펙트스톰(복합위기)’을 겪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현장 취재에 더해 일본 정부의 통계, 전문가 보고서 등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하라다 유타카 나고야상과대 비즈니스스쿨 교수(전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 등 일본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해 나온 결론이다.일본이 위기라는 것은 수십 년간 반복해 나왔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 책은 거의 없었다. 일본을 억지로 깎아내리고 ‘국뽕’을 유도해 돈을 벌려는 사람이 많았다.반면 이 책은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일본 사회가 직면한 여러 위기를 다각도로 조망한다. 2022년에도 팩스와 플로피 디스크로 업무를 보는 관공서, 1990년대까지 세계를 석권했던 일본 대기업들의 몰락, 저출산과 국부 유출 등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들은 현상들을 현장감 있게 풀어낸다.저자는 “이 책은 결코 일본을 깎아내리기 위한 게 아니다”고 강조한다. “한국

    2022.12.30 17:59
  • 찬 도자기의 따뜻한 매력…BTS RM도 빌 게이츠도 푹 빠졌다

    찬찬히 뜯어보면 달항아리는 정말 이상한 도자기다. 좁은 입구와 지나치게 넓은 몸통을 보고 있자면 대체 뭘 담으라고 만들었나 싶다. 간장이나 술 등 액체를 담는 용도라는 설도 있지만,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질 듯 좁은 바닥을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확하게 둥근 모양도 아니다. 몸통 형태가 비대칭이라 마치 굽는 과정에서 변형된 것처럼 기우뚱하다.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달항아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둥근 모양은 일상에서 볼 수 없는 푸근함을 선사하고, 쓸모가 없기에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 비뚤어진 덕분에 역동적이고 생동감으로 충만하다.화가들은 이런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일찌감치 푹 빠졌다.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1913~1974)가 대표적이다. 백자대호(白磁大壺), 즉 ‘큰 백자 항아리’라는 밋밋한 이름으로 불리던 도자기를 달항아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그다. 그는 “내 예술의 모든 것은 달항아리에서 나왔다”고 고백했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싸늘한 사기지만 살결에는 따사로운 온도가 있다.”1세대 서양화가 도상봉(1902~1977)도 호를 도천(陶泉), 즉 도자기의 샘이라고 지을 만큼 달항아리 마니아였다. 그는 자신이 소장한 달항아리들을 ‘친한 친구’라 불렀다. 도상봉의 정물화 속에 등장하는 달항아리는 직접 만져보고 싶어질 정도로 질감 표현이 사실적이다. 그가 얼마나 달항아리를 사랑했고 세심하게 관찰했는지를 잘 보여준다.눈 밝은 사람들만 알아보던 달항아리의 매력이 본격적으로 대중

    2022.12.29 17:55
  • '원조 화랑가' 인사동 미술 축제, 11년 만에 인사아트위크로 부활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미술’ 하면 떠오르는 장소는 서울 인사동이었다. 고미술상과 고풍스러운 표구사, 현대미술 갤러리와 역사 유적이 어우러진 인사동 거리는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예술의 향기’를 풍겼다. 이런 분위기를 상징하는 행사가 인사동 화랑들이 총출동하는 아트페어 ‘인사미술축제’였다.하지만 유명 갤러리가 하나둘씩 삼청동 한남동 평창동 청담동 등지로 이전하면서 인사동의 위상도 휘청이기 시작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고 월세가 오르자 쇠퇴는 더욱 빨라졌다. 컬렉터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인사미술축제도 2012년을 끝으로 잠정 중단됐다. 화랑들이 있던 자리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화장품 가게나 기념품점이 들어섰다.그래도 여전히 인사동을 지키는 화랑들이 있다. 묵묵히 화가들을 키우고 세상에 알리며 인사동의 중흥을 꿈꾸는 이들이다. 아직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최근 몇 년 새 인사동에 둥지를 틀고 신진 작가 발굴에 열심인 신생 화랑들도 나타났다. 다음달 4일부터 15일까지 인사동에서 열리는 ‘인사아트위크’는 이들이 힘을 합쳐 여는 일종의 아트페어이자 축제다. 인사미술축제의 후신 격으로 11년 만에 다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한국화랑협회의 인사동 지역 회원 화랑 18곳이 참여한다. 갤러리가이아 갤러리고도 갤러리밈 갤러리윤 동산방화랑 토포하우스 등 ‘한국 1세대 화랑’들과 중견·신진 화랑들이 손을 맞잡았다. 젊은 세대를 인사동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중점은 현대미술에 뒀다.행사에서는 각 화랑을 돌며 백남준, 이우환, 김명진, 모이스 키슬링 등 다양한 연령과 국적

    2022.12.27 18:25
  • "그림 가르쳐 달라며 대뜸 찾아온 전인지…앵무새와 덤보, 이제 한 캔버스에서 놀아요"

    박선미 작가(61)의 트레이드 마크는 화려한 색감과 경쾌한 필치, 그리고 앵무새다. 이걸 활용해 인문학적 사유와 깨달음이란 무거운 재료를 쉽고 밝게 표현해낸다. 이런 그의 그림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4승을 거둔 ‘스타 골퍼’ 전인지 선수(28)가 푹 빠졌고, 그 길로 두 사람은 사제의 연을 맺었다.서울 홍지동 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앵무새, 덤보를 만나다’는 이들의 협업 전시다. 앵무새는 박 작가, 아기 코끼리 캐릭터인 덤보는 전인지를 상징한다. 지난 5월부터 본격적으로 공동 작업한 11점을 포함해 모두 38점이 걸렸다.박 작가가 전인지와 인연을 맺은 건 1년 전 이맘때였다. 박 작가 개인전을 찾은 전인지가 대뜸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한 것. 박 작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전인지가 당시 전시장에 걸린 작품 ‘9번째 지능’을 한 시간 넘게 꼼꼼히 보는 데서 진지함을, 배움을 청하는 눈빛에서 간절함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4일 전시장에서 만난 전인지는 “작품 ‘9번째 지능’에 담긴 다채로운 색상,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앵무새의 눈을 보면서 저의 불안함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그림을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박 작가는 “제자가 너무 유명한 사람이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며 웃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치는 대신 함께 작품을 만들면서 공부시키기로 했죠. 여덟 색의 파스텔로 자유롭게 칠하고, 각자 생각하는 이미지를 그렸습니다. 그 작품이 전시의 대표작인 ‘앵무새, 덤보를 만나다’예요.”정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가면서 사제관계는 끈끈해졌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도 가

    2022.12.25 17:06
  • 남편 죽자 벌인 '미친 짓'…유럽 뒤흔든 '막장 드라마'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이 그림을 보시죠. 바람 부는 춥고 황량한 들판에 대규모 장례 행렬이 멈춰 서 있습니다. 검은 칠을 한 관에는 합스부르크 집안의 상징인 머리 두 개 달린 독수리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관 주인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높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옆에는 상복을 입은 여성이 관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딘가 기이한 느낌을 줍니다. 차렷 자세를 하듯 굳어 있는 몸도 그렇거니와, 표정이 사라진 얼굴 속에서는 커다란 눈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네요. 그만큼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크기 때문이겠지요.그런데 자세히 보면 사람들의 반응이 좀 이상합니다. 유족이 이렇게 비통해하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전혀 슬프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지겹다’는 표정을 한 사람들, ‘멍때리는’ 듯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예 눈을 감고 있거나, 등을 돌리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네요.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그런데 사실 너무한 건 검은 옷을 입은 여성, 카스티야(지금의 스페인 중부)의 여왕인 후아나였습니다. 관 속에 누워있는 건 죽은 남편 펠리페 1세. 그가 이 관에 들어간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후아나는 관을 매장하지 않고 정처 없이 몇 날 며칠동안 스페인의 들판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들판에서 미사를 드리고 관을 열어 남편의 얼굴을 확인했죠. 남편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아마도 후아나는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펠리페는 죽지 않았어. 잠든 것뿐이야. 혹시 죽었더라도 다시 살아날 거야. 관을 열면 그이가 많이 놀랐냐며,

    2022.12.24 11:30
  • '관람객 50만명' 제주도 인기 미술관, 안방서 둘러본다

    지난해 개관 이후 지금까지 약 50만명의 온·오프라인 관람객을 모은 제주 포도뮤지엄이 인기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의 가상현실(VR) 전시를 23일 시작했다.포도뮤지엄은 이날 홈페이지에 ‘가상현실 전시관’을 열었다. 모바일로는 전시를 볼 수 없고, PC로만 감상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가상현실 전시관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마치 전시장을 직접 방문한 것처럼 자유롭게 곳곳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뮤지엄 관계자는 “작품 하나하나가 전하는 감동을 현실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고해상도로 가상현실 전시관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포도뮤지엄이 가상현실 전시관을 만든 건 제주도라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 더욱 많은 사람들과 전시를 나누기 위해서다. 가상현실 전시관 개관으로 신체적·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문화 예술을 차별없이 누릴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포도뮤지엄이 선보이는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는 이주민과 소수자, 포용을 주제로 한 전시다. 우고 론디노네, 요코 오노, 리나 칼라트,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 등 해외 인기 작가들과 함께 이배경, 강동주, 정연두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나와 있다. 이 전시는 재단법인 티앤씨재단이 추진중인 ‘APoV(Another Point of View)’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하다. APoV 프로젝트는 티앤씨재단이 ‘공감 사회’ 구현을 목적으로 펼치는 문화 예술 활동이다. 김희영 포도뮤지엄 총괄 디렉터는 “공감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동참할 때 만들어 갈 수 있다”며 “포도뮤지엄은 앞으로도 다양성을 존중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열

    2022.12.23 21:28
  • [책마을] 서양 중세시대 '암흑기'에서 배우는 ESG 경영

    서양의 중세시대를 얘기할 때는 ‘암흑기’란 말이 자주 따라붙는다. 이 시기 대부분 사람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과학·예술 등 인류의 지성은 종교 권위에 눌려 퇴보했던 ‘흑역사’가 중세였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아네테 케넬 독일 만하임대 중세사 교수는 저서 <미래가 있던 자리>에서 이런 상식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중세는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지금보다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여러 사회 제도와 풍습 덕분에 이런 결핍을 상당 부분 메울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 보면 근현대보다 중세 사람들이 훨씬 뛰어났던 사례가 많다”고 주장한다.예컨대 중부 유럽의 보덴 호수에서는 어부조합이 물고기 남획을 막기 위해 자체적인 규정을 만들고 이를 엄격하게 지켰다. 이는 현대의 공유경제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프랑스의 론강을 가로지르는 아비뇽의 생베네제 다리는 시민들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지어졌고, 독일 은행가이자 인류 역사상 최대 거부 중 한 명인 야코프 푸거(1459~1525)는 사회공헌을 위한 재단을 설립해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주택단지를 건설했다.풍부한 통계 자료를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듯 쉽게 풀어가는 저자의 솜씨가 훌륭하다. 다만 “성장보다는 분배”라는 유럽 진보 진영 지식인의 전형적인 편견과 유럽 중심적인 사고가 서술 전반에 녹아 있는 점이 아쉽다.그때도 세계 최선진국이었던 독일 입장에서야 맞는 말이지만, 당시 한국을 비롯해 지금도 세계 일부 국가에선 밥을 굶는 사람이 도처에 널려 있다.성수영 기자

    2022.12.23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