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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수영 문화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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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스 임대료 안 받겠다"…파격의 아트페어

    우리가 아는 아트페어의 모습은 대개 이렇다. 전시장에 빼곡하게 사각형 부스를 채워놓고 그 사이로 관객이 줄을 맞춰 이동한다. 조금만 둘러보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반복해서 튀어나온다. 부스 임차료 부담이 크기 때문에 비싼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오는 21일부터 나흘간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에서 열리는 ‘하이브 아트페어’는 색다른 전략을 들고나왔다. 부스 모양을 사각형 대신 육각형으로 바꿔 보다 자유로운 동선을 유도했다. 심사를 통해 참가 자격을 부여하면 부스 임대료도 받지 않는다. 파격적 운영 방법을 내세운 신설 아트페어가 한국 미술시장에 어떤 충격을 줄지가 요즘 미술계의 화제다. ◇부스 위치 선택권 최대 200만원기존 아트페어는 대형 컨벤션센터를 빌린 뒤 수십, 수백 개의 사각형 공간을 만들고 화랑들에 이를 임대한다. 화랑들은 면적에 따라 부스비를 내는데 부스 위치는 무작위로 결정된다. 가장 넓은 부스를 기준으로 지난해 열린 프리즈 서울은 1억5000만원대,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는 8000만원대를 받았다.이렇게 큰돈을 지급하니 화랑 입장에서는 부스비를 회수하기 위해 작품 판매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임시 벽을 세우고 ‘팔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최대한 모아 마구잡이로 걸어야 한다. 전시가 재미없어지는 이유다.반면 하이브는 부스비를 받지 않는다. 심사를 통해 무료로 참가 가격을 준다. 벌집처럼 생긴 부스는 모두 같은 크기로 만들어져 있다. 대신 화랑은 부스 위치, 입장권, 강연 프로그램 운영권 등을 필요에 따라 옵션처럼 골라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관람객이 더 많이 지나다니는 위치에 있는 부스를 고르고 싶으면 최대 200

    2026.05.17 17:35
  • 피카소가 '환승연애'할 때 그렸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그림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작품을 그렸을 때 누구와 사랑에 빠져 있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발레 무용수 출신인 첫 번째 아내 올가 코클로바와 함께한 시기에는 우아한 신고전주의를, 관능적인 젊은 연인 마리테레즈 발테르를 만난 뒤에는 부드러운 곡선과 밝고 따뜻한 색채의 화풍을 택했다. 도발적인 성격의 사진작가 도라 마르와의 시간에는 선이 날카로워지고 색이 어두워졌다.마르와 만나고 있었지만 발테르와의 관계도 지속하던 1938년, 두 여인 사이에서 피카소가 그린 작품이 ‘책 읽는 소녀’다. 얼굴의 윤곽과 주변 공간의 양감은 아직 발테르 시기의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에 비해 날카로운 색조 대비는 마르 시기에 가깝다. 그림의 모델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이 그림은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무엇인지를 가장 알기 쉽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면과 측면이 동시에 보이는 얼굴, 평면으로 압축된 공간은 입체주의 화풍 그대로다. 책을 읽는 소녀라는 일상적인 장면을 왜 이렇게 왜곡해서 그렸을까. 피카소는 말했다. “얼굴이란 무엇인가. 앞에서 본 것인가, 안에서 본 것인가, 뒤에서 본 것인가.” 앞모습과 옆모습을 비롯해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여러 사실을 한 화면에 동시에 담으려 한 시도가 입체주의라는 뜻이다.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그린 걸작 ‘게르니카’를 그린 바로 다음 해에 이 그림을 그렸다. 작품을 소장 중인 미국 디트로이트미술관은 “소녀가 들고 있는 책은 지식, 침묵, 사색의 상징”이라며 “폭력과 혼란의 시대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이 작품은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2026.05.17 17:34
  • 피카소가 두 여인을 만나고 있을 때 그린 '책 읽는 소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그림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있다. 작품을 그렸을 때 누구와 사랑에 빠져 있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연인이 바뀔 때마다 그의 화풍은 바뀌었다. 발레 무용수 출신의 첫 아내 올가 코클로바와 함께한 시기에는 우아한 신고전주의를, 관능적인 젊은 연인 마리테레즈 발테르를 만난 뒤에는 부드러운 곡선과 밝고 따뜻한 색채의 화풍을 택했다. 도발적인 성격의 사진작가 도라 마르와 함께한 시기에는 선이 날카로워지고 색이 어두워졌다. 피카소에게 새로운 사랑은 곧 새로운 양식의 시작이었다.'책 읽는 소녀'(1938)는 발테르와 마르 사이에 걸쳐 있는 그림이다. 1927년 파리 길거리에서 열일곱 살의 발테르를 만난 유부남 피카소는 그녀를 유혹했다. 이후 발테르는 약 10년간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가 됐고, 1935년에는 딸 마야를 낳았다. 그런데 1936년 마르와 새로운 관계가 시작됐다. 마르는 지적이고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마르와 만나고 있었지만 발테르와의 관계도 지속하던 1938년, 두 여인 사이에서 피카소가 그린 작품이 '책 읽는 소녀'다. 얼굴의 윤곽과 주변 공간의 양감은 아

    2026.05.17 15:53
  • "부스 임대료에 안달하지 않는다" … 하이브 아트페어의 역발상

    우리가 아는 아트페어의 모습은 대개 이렇다. 광활한 전시장에 빼곡하게 들어찬 부스들. 그 사이로 관객들이 정처없이 헤맨다. 몇몇 유명 작가의 작품이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반복해서 튀어나온다. 내게 맞는 작품을 찾는 재미는 있어도, 아트페어라는 하나의 전시를 보는 재미는 없다. 아트페어에 참여하기 위해 거액을 지불한 화랑들이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팔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최대한 모아 마구잡이로 걸어놨기 때문이다.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에서 열리는 ‘하이브 아트페어’(하이브)는 다르다. 이번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화랑들은 부스비를 내지 않는다. 대신 부스 위치, 입장권, 강연 프로그램 운영권 등을 필요한 것만 골라 산다. 부스는 모두 같은 크기의 육각형 모양이다. 그러자 아트페어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획전처럼 변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화랑 48곳은 총 158명 작가의 작품을 내세웠다. 서로 겹치는 작가가 한 명도 없다.'부동산 임대' 대신 화랑과 공생기존 아트페어 주최측의 주수입은 부스 임대료였다. 행사 실적이 저조해도 주최측에는 임대료가 남는다. 반면 화랑 입장에서는 부스비를 회수하기 위해

    2026.05.17 10:37
  • 자식 빼앗겨 '강제 이별'…마흔에 모든 걸 잃은 그녀의 정체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엄마, 다녀올게요. 얘들아, 금방 올 테니까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라.”1924년 8월 어느 아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차역. 해외 출장을 떠나는 마흔 살의 여성은 배웅을 나온 어머니와 네 명의 아이에게 인사했습니다. 두세 달 정도의 출장 일정이었습니다.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와야지.’ 그녀는 다짐했습니다.하지만 그녀는 몰랐습니다. 이 이별이 터무니없이 길어질 거라는 사실을. 큰아들, 큰딸과는 30여년 뒤에야 만나게 되고, 어머니와는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1884~1967). 러시아 문화계 최고 명문가에서 태어난 외동딸이었고, 스물다섯에 그림 하나로 러시아 미술계의 별이 된 행복한 여성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녀를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마흔 살의 그녀는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세레브랴코바의 삶과 이별, 그리고 작품에 관한 이야기. 그림에 담은 싱그러운 젊음세레브랴코바는 러시아에서 제일가는 '문화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대대로 러시아 미술·건축 대가들을 배출한 귀족 집안이었지요. 세레브랴코바는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 최고 발레 무대인 마린스키 극장을 다니며 발레, 음악, 무대미술에 익숙해졌습니다.집안 덕분에 그녀는 화가가 되기 위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열일곱 살이던 1901년 사립 미술학교에 들어가 거장 일리야 레핀에게 그림을 배우기도 했고, 2년간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지요. 스물한 살이던 1905년 결혼한 뒤에는 프랑스 파리로 신혼여행을 가 모네, 마네, 시슬레, 드가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았습니다.결혼 이후 12년 동안 세레브랴

    2026.05.16 21:34
  • [책마을] 맛있는 반찬은 본인부터 먹고보는 할머니

    할머니 임봉근씨(95)와 손녀 임다운씨(35)는 성(姓)이 같다. 할머니가 외도를 일삼던 남편을 떠난 뒤, 자녀들의 성을 자기 것으로 과감히 바꾼 결과다. 수십년 뒤 손녀는 이런 아픈 가족사를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올렸다. 마침 공연을 보러 온 출판사 편집자가 “책을 써 보자”고 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손녀의 편지 및 에세이를 묶은 <오늘내일하는 사이>가 탄생했다.임봉근씨는 손녀를 끔찍이 사랑하지만, 손주를 위해 헌신만 하는 뻔한 할머니는 아니다. 좋은 반찬은 본인이 먼저 집고, 영양제 박스를 받으면 글루코사민까지 챙겨달라 요구한다. 영화 ‘집으로…’에 나오는 것처럼 어수룩하지도 않다. 트로트 가수 장민호와 데이트하는 꿈을 꾸고, 노인복지관에 매일 나가 한시(漢詩)를 풀이한다. 손녀 결혼식의 축가도 직접 불렀다. 임봉근씨의 에세이에는 한 인간의 이런 입체적인 면모가 녹아 있다.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손녀의 글에도 유머 감각이 가득하다. 임다운은 “가족사의 상처조차 재미있는 얘깃거리로 풀어낼 수 있는 성격은 분명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핵가족 시대에 흔치 않은, 할머니와 손녀의 달콤쌉싸름한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유려하게 풀어낸 책이다.성수영 기자

    2026.05.15 17:17
  • 바다와 땅 사이 방파제로 우리의 경계를 묻다

    서울 광화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해머링 맨’은 흥국생명빌딩 앞에서 높이 22m, 무게 50t의 거인이 천천히 망치질을 하는 설치 작품이다. 조너선 보롭스키가 2002년 설치한 이후 지난 24년 동안 구부정한 자세로 묵묵히 망치질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은 매일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직장인들을 위로하는 듯하다.그런 위로의 공간이 흥국생명빌딩 건물 안에도 있다. 2~3층에서 도심 속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세화미술관이다. 사립미술관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컬렉션과 전시 기획을 자랑하는 이 미술관이 최근 전시장을 새로 단장하고 기획전 두 건을 동시에 열었다. ◇먹고 만지고 듣는…오감 전시2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은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전시다. 이원우의 ‘상냥한 왕자’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남을 돕는 왕자의 이야기를 담은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를 소재로 삼은 작품. 화요일, 일요일 오후 3시마다 작품 앞에서는 직원이 솜사탕 기계로 솜사탕을 만든 뒤 관람객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퍼포먼스가 진행된다.퍼포먼스를 할 때마다 달콤한 솜사탕 향이 전시장을 채운다. 선우지은 세화미술관 큐레이터는 “뜬구름처럼 잡기 어려운 행복을 솜사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예솔의 작품 ‘동그라미를 잘 굴리는 방법’은 관객이 쇠구슬과 나무 바퀴를 직접 굴려 흔적을 남기는 체험형 작품이다. 이를 통해 관객의 행동과 대화를 이끌어내고, 엄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관 공간을 생동감 있게 만든다. 정만영의 ‘순환하는 소리’는 눈이 아닌 청각을 자극하는 설치 작품이다. 은빛

    2026.05.12 18:27
  • 비엔날레 기간에 작품 거래…'130년 불문율' 깨진 베네치아

    지난 10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옆 골목길. 간판도 없는 평범한 문 하나가 살짝 열려 있었다. 이 문 너머에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흉가 ‘팔라초 카 다리오’가 있다. 15세기 베네치아 공화국 관료가 지은 이 건물은 연약한 지반 때문에 한쪽으로 눈에 띄게 기울어 있고, 내·외장에 고딕 양식이 가미돼 다소 음산한 느낌을 준다.흉가처럼 변해버린 이 집에 세계 미술시장의 ‘큰손’ 들이 차례로 들락거렸다. 글로벌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을 틈타 마련한 비공개 판매 전시 ‘고스트 파빌리온’에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이 집의 벽에는 앤디 워홀, 루이스 부르주아 등 현대미술 대가부터 에두아르 마네, 티치아노, 윌리엄 터너 등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이 걸렸다. 최소 7억원에서 최대 700억원짜리 작품들이다.130년 역사의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행사 기간에 경매회사가 판매전을 연 건 처음이다. 비상업성을 표방하는 행사이니 만큼 작품 거래를 하지 않는 건 미술계의 불문율이었다. “베네치아에서 보고 아트바젤이 열리는 스위스 바젤에서 사라”는 말이 있었던 이유다.비엔날레 기간 작품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 크리스티는 판매전을 열었고, 소더비는 올해 VVIP 회원을 대상으로 비공개 관람 및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등 주요 미술관에서 조찬·만찬 서비스를 제공했다.팔라초 브라가딘 카라바에서 열리는 미국 출신의 화가 멜 라모스의 회고전은 약 100점 중 대부분이 구매 가능하다. 작품당 가격은 최대 26억원에 이른다. 전시장 안에서는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수백만원 상당의 석판화도 팔

    2026.05.12 18:25
  • "700억 그림 팝니다"…130년 금기 깬 베네치아 발칵 [여기는 베네치아]

    지난 10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옆 골목길. 간판도 없는 평범한 문 하나가 살짝 열려 있었다. 이 문 너머에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흉가 '팔라초 카 다리오'가 있다. 15세기 베네치아 공화국 관료가 지은 이 건물은 연약한 지반 때문에 한쪽으로 눈에 띄게 기울어 있고, 내·외장에 고딕 양식이 가미돼 다소 음산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이곳을 거쳐간 집주인들이 잇따라 파산하거나 의문사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흉가라는 별명이 붙었다.그런데 이날 이 집에는 세계 미술시장의 '큰손' VVIP들이 차례로 들락거렸다. 경매사 크리스티가 베네치아비엔날레 기간을 틈타 연 비공개 판매 전시 '고스트 파빌리온'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이 집 벽에는 앤디 워홀, 루이스 부르주아 등 현대미술 대가부터 에두아르 마네, 티치아노, 윌리엄 터너 등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이 걸렸다. 가격대가 최소 7억원에서 최대 700억원에 이르는 작품들이다.130년에 달하는 베네치아비엔날레 역사를 통틀어 행사 기간 중 경매사가 판매전을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상업성을 표방하는 이 행사에서 작품을 거래하지 않는 건 그간 미술계의 불문율이었다. “베네치아에서 보고 아트바젤이 열리는 스위스 바젤에서 사라”는 말이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 들어 비엔날레 기간 동안 대놓고 작품을 거래하는 사례가 급증했다는 게 미술계 얘기다.불문율이 깨진 데는 최근 전시 비용이 오른 영향이 컸다. 비엔날레의 한정된 예산으로는 전시에 나오는 작품들의 제작·운송·설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 비엔날레 전시 비용은 대개 갤러리

    2026.05.12 10:35
  • 침략국 러시아는 파티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기는 베네치아]

    “예술은 쇼고, 그 아래에는 무덤이 있다!” “러시아는 사람을 죽이고, 비엔날레는 그걸 전시한다!”지난 6일 베네치아비엔날레 국가관 전시가 열린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 러시아관 앞. 분홍색 복면을 쓴 시위대 수십 명이 시끄러운 록 음악에 맞춰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인 푸른색·노란색 연막을 피워 올렸다. 이들은 약 30분간 러시아관 입구를 봉쇄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다. 정치·외교 논쟁이 두드러진 이번 비엔날레의 분위기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었다.새로운 예술은 늘 세상의 질서가 흔들릴 때 탄생했다. 1800년대 후반 서구의 번영과 사진술의 발달은 인상주의를 꽃피웠다. 휘청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불안한 번영 속에서 빈 분리파를 낳았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냉전의 시작에서 잭슨 폴록을 위시한 현대미술이 태어났다.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이 계속되며 냉전 이후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그 변화의 조짐은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제인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가장 먼저 감지되고 있다.올해 61회째를 맞은 비엔날레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정치 논쟁의 무대가 됐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 시상을 결정하는 심사위원단이 개막 직전 전원 사퇴한 것이다. 전쟁 범죄를 저지른 러시아·이스라엘에 상을 줄 수 없다는 게 이유다.결국 비엔날레 측은 황금사자상 시상 자체를 폐지하고, 폐막일인 11월 22일 일반 관객 투표로 최우수 작가와 최우수 국가관을 뽑는 ‘관객상’을 신설해야 했다. 131년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국가관 전시에서

    2026.05.08 09:55
  • 베네치아 수로에 떠오른 붉은 머리 수십 개…무슨 일? [여기는 베네치아]

    베네치아비엔날레는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두 곳에서 열린다. 바닷가 옆 평화로운 공원에 국가관들을 감상하는 게 자르디니라면, 수상 도시 베네치아의 심장과 같은 옛 조선소 건물을 활용한 아르세날레는 이 도시만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6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 전시장의 끝자락. 아르세날레 옆 거대한 수로 위에 여성의 붉은 두상 수십 개가 떠 있었다. 아일랜드 작가 앨리스 마허의 설치작품 ‘우라노스의 딸들’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자신의 딸들을 어둠 속에 가둬버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딸들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가부장제라는 신화 속에 갇힌 여성들이 해방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올해 비엔날레 본전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올해 본전시 주제는 ‘단조로(In Minor Keys)’다. 음악의 단조를 뜻하는 동시에 ‘주류가 아닌 소수의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세계 미술계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지역과 정체성을 중점적으로 조명하겠다는 의미다.흑인 작가 집중 조명올해 총감독은 카메룬 출신의 코요 쿠오다. 비엔날레 131년 역사상 아프리카계 총감독은 쿠오가 처음이다. 지난해 암으로 별세하기 전 그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였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전시 주제인 소수자 중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건 흑인이었다. 본전시 참여 111팀 중 아프리카 출신 비중이 20%에 이른다. 전시장은 아프리카의 전통과 역사, 종교 등 정신문화와 관련된 작품들로 채워졌다.전시 초반 관람객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빅 치프 데몬드 멜랑콘의 거대한 붉은 깃털 조각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

    2026.05.07 17:44
  • 거대한 수로에 뜬 붉은 머리…'소수의 목소리'를 담아내다

    베네치아비엔날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두 곳에서 열린다. 자르디니가 바닷가 옆 평화로운 공원에서 국가관들을 감상할 수 있다면, 수상 도시 베네치아의 심장과 같은 옛 조선소 건물을 활용한 아르세날레는 이 도시만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지난 6일 베네치아 아르세날레 전시장. 아르세날레 옆 거대한 수로 위에 여성의 붉은 두상 수십 개가 떠 있었다. 아일랜드 작가 앨리스 마허의 설치작품 ‘우라노스의 딸들’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자신의 딸들을 어둠 속에 가둬버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딸들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가부장제라는 신화 속에 갇힌 여성들이 해방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올해 비엔날레 본전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올해 본전시 주제는 ‘단조로(In Minor Keys)’다. 음악의 단조를 뜻하는 동시에 ‘주류가 아닌 소수의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세계 미술계가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지역과 정체성을 중점적으로 조명하겠다는 의미다. 흑인 작가 집중 조명올해 총감독은 카메룬 출신인 코요 쿠오다. 비엔날레 131년 역사상 아프리카계 총감독은 쿠오가 처음이다. 지난해 암으로 별세하기 전 그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였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전시 주제인 소수자 중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건 흑인이었다. 본전시 참여 111개 팀 중 아프리카 출신 비중이 20%에 이른다. 전시장은 아프리카의 전통, 역사, 종교 등 정신문화와 관련된 작품으로 채워졌다.다음으로 집중 조명을 받은 곳은 라틴아메리카·카리브다. 이곳 출신 작가 비중은 15%. 최근 10년간

    2026.05.07 17:25
  • 혼란과 격동의 시대…미술은 세상을 비춘다

    “예술은 쇼고, 그 아래에는 무덤이 있다!” “러시아는 사람을 죽이고, 비엔날레는 그걸 전시한다!”지난 6일 베네치아비엔날레 국가관 전시가 열린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공원 러시아관 앞. 분홍 복면을 쓴 시위대 수십 명이 록 음악에 맞춰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인 파랑·노랑 연막을 피워 올렸다. 이들은 약 30분간 러시아관 입구를 봉쇄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다. 정치·외교 논쟁이 두드러진 이번 비엔날레의 분위기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었다.새로운 예술은 늘 세상의 질서가 흔들릴 때 탄생했다. 1800년대 후반 서구의 번영과 사진술 발달은 인상주의를 꽃피웠다. 휘청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불안한 번영 속에서 빈 분리파를 낳았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냉전의 시작에서 잭슨 폴록을 위시한 현대미술이 태어났다. 우크라이나전쟁과 이란전쟁이 계속되며 냉전 이후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그 변화의 조짐은 세계 최고 권위 국제미술제인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가장 먼저 감지되고 있다.올해 61회째를 맞은 비엔날레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정치 논쟁의 무대가 됐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결정하는 심사위원단이 개막 직전 전원 사퇴한 것이다. 전쟁 범죄를 저지른 러시아와 이스라엘에 상을 줄 수 없다는 게 이유다. 베네치아비엔날레는 황금사자상 자체를 폐지하고, 폐막일인 11월 22일 일반 관객 투표로 최우수 작가와 최우수 국가관을 뽑는 ‘관객상’을 신설해야 했다. 131년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국가관 전시에서는 비상계엄 사태를 주제로 한

    2026.05.07 17:24
  • 프랑스가 추앙한 '한국의 빛', 60년 만에 고국 돌아온 '우주의 노래'

    2024년 여름의 일이다.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 중 하나인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5층.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와 같은 거장의 전시실 바로 옆, 39번 방에서 한 한국 작가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빛의 화가 방혜자(1937~2022). 프랑스에선 그가 타계한 후 크고 작은 추모 전시와 행사가 곳곳에서 열렸지만, 정작 국내에선 그를 잘 몰랐다. 그의 국공립미술관 회고전이 열린 적조차 한 번도 없었다.청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는 작가 타계 4년 만에 뒤늦게 열린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 전시에는 작품 67점과 아카이브 200여 점이 나왔다. 퐁피두센터 소장품 8점, 파리 시립 세르누치박물관 소장품 9점 등 절반 이상이 국내에 처음 공개된다. ◇문학소녀, 빛을 좇는 화가로방혜자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경기도 고양군 능동(현재 서울) 아차산 아랫마을에서 7남매 중 가장 허약한 아이로 태어났다. 집 근처 개울가에서 햇빛이 물결 속 조약돌 위로 반짝이는 광경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저 빛을 내 손으로 표현하고 싶다.’6·25 전쟁 때 얻은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요양차 찾아간 수덕사에서 노스님에게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과 병고를 거치면서 어둠을 밝히는 빛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졌다.처음 관심을 가진 건 문학이었다. 학창 시절 그는 랭보와 보들레르에 빠진 문학소녀였다. 경기여고 재학 시절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반에 들어간 것이 방혜자를 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유영국과 김병기의 현대미술연구소에서 추상미술에

    2026.05.05 17:09
  • 예술과 정치의 기로에 선 베네치아 비엔날레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6일 사전 공개를 시작으로 11월 22일까지 이어진다. 올해 제61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총감독의 별세, 참여 작가 수 급감, 심사위원 전원 사퇴로 인한 황금사자상 폐지 등 예년과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개막을 알렸다. ◇젊은 작가, 중동·아프리카·남미 약진올해 제61회 비엔날레의 총감독인 카메룬 태생의 큐레이터 코요 쿠오는 개막식을 볼 수 없다.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전시 준비 중 감독이 사망한 것은 비엔날레 131년 역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유족과 비엔날레 측은 쿠오의 유지를 이어받아 그가 남긴 원안 그대로 전시를 실행하기로 했다. 그녀가 정한 비엔날레 주제는 ‘In Minor Keys’. 음악의 단조(短調)를 뜻하지만, 동시에 ‘주류가 아닌 것’, ‘소수의 것’을 암시하는 제목이다.본전시의 가장 큰 변화는 참여 작가가 111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2024년 331팀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양 대신 깊이를 택했다는 게 미술계의 해석이다. 참여 작가의 특성도 확 달라졌다. 직전 두 회 비엔날레가 과거의 작가를 재조명하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는 90% 이상이 생존작가다. 그중 절반 이상이 1950~1980년생 중견 세대다.비엔날레의 지도도 달라지고 있다. 올해 행사에서는 중동·아프리카·중남미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본전시 작가 중 아프리카 출신 비중이 20%,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는 15%에 달한다. 근 10년간 열린 전시에 비하면 비율이 2배 가까이 늘었다. 카타르는 국가관이 밀집한 자르디니 공원에 신축 파빌리온을 열었다. 자르디니 공원에 신축 국가관이 들어서는 건 1995년 한국관 이후 30

    2026.05.05 17:07
  • 초유의 '심사위원 전원 사퇴'…격동의 베네치아비엔날레 6일 개막

    세계 최대·최고의 현대미술 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6일 평론가와 큐레이터, 기자와 VIP 관람객을 대상으로 미리 문을 연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오는 9일 공식 개막해 11월 22일까지 이어지는  제 61회 행사는 총감독의 갑작스러운 별세, 대폭 줄어든 작가 수, 심사위원 전원 사퇴로 인한 황금사자상 폐지 등 이전과 확연히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젊은 작가, 중동·아프리카·남미 약진올해 제61회 비엔날레의 총감독인 카메룬 태생의 큐레이터 코요 쿠오는 개막식을 볼 수 없다.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전시 준비 중 감독이 사망한 것은 비엔날레 131년 역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유족과 비엔날레 측은 쿠오의 유지를 이어받아 그가 남긴 원안 그대로 전시를 실행하기로 했다. 그녀가 정한 비엔날레 주제는 ‘In Minor Keys’. 음악의 단조(短調)를 뜻하지만, 동시에 ‘주류가 아닌 것’, ‘소수의 것’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그 말대로 올해 비엔날레는 거대한 스펙터클 대신 조용하고 잔잔하면서도 위안을 주는 전시를 지향한다.올해 본전시의 가장 큰 변화는 본전시 참여 작가가 111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2024년 331팀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양 대신 깊이를&nb

    2026.05.05 12:52
  • 150년째 베일에 싸여있는 여인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첫 직업은 화가가 아니었다. 가난한 재봉사의 아들이었던 그는 열세 살 때 도자기 공장에서 접시 위에 꽃무늬를 그렸다.손재주를 타고나 결국 그의 손끝은 캔버스 위로 옮겨갔다. 미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클로드 모네를 비롯한 동료 화가들을 만났고, 함께 야외로 나가 빛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안락의자에 앉은 여인’은 1874년 인상주의의 태동기에 그린 작품이다. 그림에는 초기 인상주의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인상주의 이전 미술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전통적인 회화와 인상주의 그림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빛의 처리다. 아카데미에서는 명암을 정교하게 단계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르누아르는 빠른 붓질로 여인의 얼굴과 팔 위로 쏟아지는 빛의 느낌을 표현했다.또다른 차이점은 초점이다. 여인의 모습은 선명하지만 안락의자와 배경은 비교적 흐릿하다. 마치 카메라 렌즈로 여인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아카데미 회화에서는 화면 전체를 균일하게 마감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르누아르는 시선이 가는 곳만 선명하고 나머지는 흐리게 뒀다. 이는 우리 눈이 실제로 세상을 보는 방식에 가깝다.하지만 르누아르에게는 이런 ‘덜 그린’ 상태야말로 눈앞의 순간, 그리고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가장 정직하게 담는 방법이었다. 모델의 정확한 정체는 그림이 완성된 후 150년이 넘도록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지금까지도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은 즐겁고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에는 이미 불쾌한 것이 넘치니까.&r

    2026.05.04 17:17
  • 세계 최고 권력자도 허리 굽혔다…'산골 출신 영감' 정체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물의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찾습니다. 도시의 혈관처럼 뻗은 물길을 따라 곤돌라를 타고, 산마르코 광장에서 커피를 마시고, 좁은 골목길을 헤매다 길을 잃지요.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전인 베네치아비엔날레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네치아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예술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곳을 떠나며 관광객들은 말합니다. "참 낭만적인 곳이야."하지만 500년 전 이 도시의 이미지는 정반대였습니다. 지중해 무역을 휘어잡고 막대한 돈을 빨아들이던 부자 나라. 도심 한복판에서 매일 군함이 한 척씩 생산되던 군사 강국. 1100년 동안 단 한 번도 본섬이 외국군에 함락된 적 없는, 주변 나라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가 바로 베네치아 공화국이었지요.그때와 지금 변하지 않은 것은 딱 두 가지뿐입니다. 도시의 풍경, 그리고 이곳이 '예술의 도시'라는 사실. 이 도시에서 나온 그림들은 비슷한 시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못지않게 서양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벨라스케스도, 렘브란트도, 인상주의 화가들도 사실은 모두 베네치아 화파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베네치아 화파의 최고 거장 티치아노 베첼리오(1488~1576)가 있었습니다. 오는 9일 베네치아에서 개막하는 베네치아비엔날레를 앞두고, 이번 주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베네치아와 티치아노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물 위에 세운 도시베네치아의 시작은 초라했습니다. 5세기 이민족들이 이탈리아 북부에 쳐들어왔을 때, 본토에 살던 사람들이 북쪽 바닷가의 얕은 늪지대

    2026.05.02 04:00
  • '거꾸로 그리는 화가'…현대미술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별세

    전후(戰後)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향년 88세.국내 미술 애호가들에게 ‘뒤집어진 그림’으로 잘 알려진 그는 1938년 나치 치하의 독일 작센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이던 1945년 그는 드레스덴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불타는 광경을 목격했다. 훗날 바젤리츠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무너진 질서, 무너진 풍경, 무너진 민족, 무너진 사회 속에서 태어났다.” 이때의 기억이 그를 평생 일그러진 몸과 폐허의 풍경을 그리도록 만들었다.1963년 베를린에서 연 첫 개인전은 전설이 됐다. 당시 세계 미술의 주류는 추상이었다. 폴록의 흩뿌린 물감, 마크 로스코의 색면, 빌렘 데 쿠닝의 격렬한 붓질이 ‘진보적 미술’로 통했다. 하지만 바젤리츠는 반대로 뒤틀린 형상의 구상화를 그렸다. 독일 당국은 개인전에 나온 작품 중 ‘배수구로 빠진 위대한 밤’과 ‘벌거벗은 남자’를 외설 혐의로 압수했다. 관람객들은 충격받았지만, 미술계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정확히 그리는 대신 화가의 감정과 내면을 거친 색과 일그러진 형태로 쏟아내는, 독일의 표현주의 전통을 바젤리츠가 다시 무대 위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그의 1965~66년 ‘영웅(Heroes)’ 연작이 대표적인 사례다. 폐허 위에 어정쩡하게 선 거인의 군복은 너덜거리고, 표정은 멍하다. 발치에는 깃발이 쓰러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업보를 잊고 싶어 하던 독일 사회를 향해 “당신들이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저질렀는지 보라”고 말하는 듯했다.1969년 그는 캔버

    2026.05.01 18:41
  • 세종문화회관 '인상주의를 넘어'展…대구선 추사 김정희 '세한도' 첫 선

    볕 좋은 5월에는 적어도 하루쯤 미술관 나들이를 해보면 어떨까. 마침 전국 각지 미술관에서 수준 높은 전시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서울에서는 가족 단위로 다녀올 수 있는 전시가 많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28일부터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이 열린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함께 에드가르 드가,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앙리 마티스, 바실리 칸딘스키, 파블로 피카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의 작품이 걸린다.흥국생명빌딩 세화미술관에서는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 전시가 진행 중이다. 쇠구슬과 나무 바퀴를 직접 굴려 흔적을 남기는 김예솔의 체험형 작품 등을 통해 온몸으로 미술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왔다.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는 ‘문화보국: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이 열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 최대의 미술품 거래소’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간송이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지켜낸 현장을 되짚는다. 국보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인근 성북구립미술관 ‘1946, 성북회화연구소’는 국내 미술 관계자 사이에서 올 상반기 최고의 전시 중 하나로 꼽힌다.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티노 세갈의 국내 첫 개인전은 현대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즐겁게 체험할 수 있는 전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1층에서 진행 중인 백남준 타계 20주기 전시도 흥미롭다.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서는 ‘숯의 작가’ 이배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 안팎에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39점이 걸렸다.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는 방혜자

    2026.05.01 18:00
  • 150년째 이름 모르는 여인…르누아르의 빛 속에 앉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첫 직업은 화가가 아니었다. 가난한 재봉사의 아들이었던 그는 열세 살 때 도자기 공장에 들어가 접시 위에 꽃무늬를 그리는 일을 했다.손재주를 타고나 손이 빨랐고 솜씨가 좋았다. 결국 그의 손끝은 캔버스 위로 옮겨갔다. 미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클로드 모네를 비롯한 동료 화가들을 만났고, 함께 야외로 나가 빛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상주의가 탄생했다.‘안락의자에 앉은 여인’은 1874년 인상주의의 태동기에 그린 작품이다. 그림에는 초기 인상주의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인상주의 이전 미술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전통적인 회화와 인상주의 그림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빛의 처리다. 아카데미에서는 명암을 정교하게 단계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르누아르는 빠른 붓질로 여인의 얼굴과 팔 위로 쏟아지는 빛의 느낌을 표현했다.또다른 차이점은 초점이다. 여인의 모습은 선명하지만 안락의자와 배경은 비교적 흐릿하다. 마치 카메라 렌즈로 여인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아카데미 회화에서는 화면 전체를 균일하게 마감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르누아르는 시선이 가는 곳만 선명하고 나머지는 흐리게 뒀다. 이는 우리 눈이 실제로 세상을 보는 방식에 가깝다.마지막으로 마감이다. 이 그림에는 붓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피부는 매끄럽지 않고, 배경은 대충 처리한 것처럼 보인다. 당시 아카데미 기준으로 이 작품은 ‘그리다 만 그림’이었다. 인상주의가 당대 비평가들에게 욕을 먹은 주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르누아르에

    2026.04.29 15:51
  • 프랑스가 알아본 ‘피카소 옆방 한국 화가’… 故 방혜자 회고전

    2024년 여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 중 하나인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5층.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와 같은 거장들의 방을 지나면 39번 방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방혜자(1937~2022)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국 출신인 그의 작품들을 최고 거장들의 옆에 나란히 놓은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그를 잘 몰랐다. 방혜자 작가의 국공립미술관 회고전이 열린 적조차 한번도 없었다.청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는 작가 타계 4년만에 뒤늦게 열린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이 전시에는 작품 67점과 아카이브 200여점이 나왔다. 퐁피두센터 소장품 8점, 파리 시립 세르누치박물관 소장품 9점 등 절반 이상이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문학 소녀, 빛을 좇는 화가로방혜자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경기도 고양군 능동(현재  서울) 아차산 아랫마을에서 7남매 중 가장 허약한 아이로 태어났다. 집 근처 개울가에서 햇빛이 물결 속 조약돌 위로 반짝이는 광경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그는 생각했다. ‘저 빛을 내 손으로 표현하고 싶다.’6·25 전쟁 때 얻은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요양차 찾아간 수덕사에서 노스님에게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과 병고를 거치면서 어둠을 밝히는 빛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처음 관심을 가진 건 문학이었다. 학창시절 그는 랭보와 보들레르에 빠진 문학소녀였다. 경기여고 시절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반에 들어간 것이 방혜자를 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유영국과 김병기의 현대미술연구소에서 추상미술에

    2026.04.29 15:49
  • 광화문 도심서 망치질하는 남자… 그 뒷편에 놓인 '현대미술 쉼터'

    서울 광화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해머링 맨’은 흥국생명빌딩 앞에서 높이 22m, 무게 50t의 거인이 천천히 망치질을 하는 설치 작품이다. 조너선 보롭스키가 2002년 설치한 이후 지난 24년 동안 구부정한 자세로 묵묵히 망치질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은 매일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직장인들을 위로하는 듯하다.그런 위로의 공간이 흥국생명빌딩 건물 안에도 있다. 2~3층에서 도심 속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세화미술관이다. 사립미술관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컬렉션과 전시 기획을 자랑하는 이 미술관이 최근 전시장을 새로 단장하고 기획전 두 건을 동시에 열었다. 먹고 만지고 듣는…오감 전시2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은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전시다. 이원우의 ‘상냥한 왕자’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남을 돕는 왕자의 이야기를 담은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를 소재로 삼은 작품. 화요일, 일요일 오후 3시마다 작품 앞에서는 직원이 솜사탕 기계로 솜사탕을 만든 뒤 관람객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퍼포먼스가 진행된다.퍼포먼스를 할 때마다 달콤한 솜사탕 향이 전시장을 채운다. 선우지은 세화미술관 큐레이터는 “뜬구름처럼 잡기 어려운 행복을 솜사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예솔의 작품 ‘동그라미를 잘 굴리는 방법’은 관객이 쇠구슬과 나무 바퀴를 직접 굴려 흔적을 남기는 체험형 작품이다. 이를 통해 관객의 행동과 대화를 이끌어내고, 엄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관 공간을 생동감 있게 만든다. 정만영의 ‘순환하는 소리’는 눈이 아닌 청각을 자극하

    2026.04.29 10:04
  • 모린 갈라스 "저의 그림은 작을수록 더 아름다워요"

    “엽서 아니야?”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 걸린 모린 갈라스(66·사진)의 그림을 처음 마주한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 손바닥 두 개 정도에 불과한 그림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감상이 달라진다. 화면을 거의 덮을 만큼 큰 붓자국 덕분에 한 번의 붓질이 하늘과 바다, 집이 된다. 그 사실을 눈앞에서 느끼는 순간, 엽서 같던 그림은 갑자기 넓어 보이기 시작한다.지금 글래드스톤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갈라스는 미국 뉴욕대(NYU)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30년 넘게 풍경화를 그려온 화가다. 201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시카고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풍경화가다.갈라스의 그림들은 주제가 비슷하다.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의 집, 해안, 꽃 등이 반복된다. 구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갈라스를 평생 비슷한 주제를 그렸던 폴 세잔(1839~1906), 조르조 모란디(1890~1964) 같은 화가들과 비교하곤 한다.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갈라스는 “같은 주제라도 새롭게 그릴 것들은 늘 남아있다”며 “대상에 생명을 불어넣을때까지, 끝장을 낼 때까지 그리려고 한다”고 말했다.갈라스는 사진을 토대로 작품을 구상한다. 실제 사진과 똑같이 그리는 건 아니다. 그는 “에드워드 호퍼가 뉴욕 풍경을 그릴 때 실제 모습과 다르게 그렸던 것처럼, 마음에 드는 비례와 느낌으로 고쳐 그린다”고 말했다.그래서 그가 그리는 집은 현실과 미묘하게 다르다. 갈라스의 집 그림에는 사람이나 가구가 없고, 문이나 창문조차 없을 때도 있다. 비평가들은 이 빈 집에서 미국 사회의 불안,

    2026.04.28 18:11
  • 15주년 맞은 '아트부산'…론디노네·오피·구마 겐고 작품 출동

    올해로 15주년을 맞은 비(非)서울권 최대 아트페어 아트부산이 다음달 21~2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아트부산은 올해 행사에 참가하는 갤러리와 주요 프로그램을 28일 공개했다. 가나아트, 국제갤러리, 조현화랑, 리안갤러리 등 국내 주요 갤러리들과 함께 글래드스톤 갤러리, 탕 컨템포러리 아트, 화이트스톤 등 18개국 총 110여개 갤러리가 참가한다.부산 최대 아트페어답게 출품작도 화려하다. 글래드스톤은 우고 론디노네 신작 회화 3점과 알렉스 카츠 대형 회화를 내건다. 국제갤러리는 줄리안 오피의 작품으로 솔로 부스를 구성했고, 조현화랑은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구마 겐고의 작품을 선보인다. 리안 갤러리는 이강소와 에디 마르티네즈를 함께 걸고, 우손갤러리는 하반기 예정인 유키마사 이다 개인전을 프리뷰 형식으로 공개한다.올해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섹션 구성이다. 설립 5년 이하 신진 갤러리 23곳이 참여하는 '퓨처' 섹션에서는 하나금융그룹이 '하나퓨처아트어워드'를 통해 신진 작가 3인을 선정해 부스를 지원한다. '라이트하우슨' 섹션은 갤러리 부스 자체를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프로그램이다. 4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홍정욱 작가의 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부스를 꾸민다. '커넥트' 섹션에서는 기관과 갤러리가 협업해 5개 전시를 선보인다. 호주 시드니의 갤러리 엘엔엘이 서용선의 작품을 준비했다.이 밖에 김은주·이인미 작가의 스튜디오 투어, 홍승혜 작가의 토크 프로그램, 부산시립미술관·부산현대미술관 연계 프로그램 등도 마련된다. 올해부터 총괄 기획을 맡은 정선주 이사는

    2026.04.28 17:48
  • [이 아침의 화가] 외설악·치악산·백학봉…우직하게 그린 '산의 화가'

    산에서 막 내려온 화가 박고석(1917~2002)은 작업실로 직행해 흙과 돌가루가 엉겨 붙은 등산화를 신은 채 캔버스 앞에 섰다. 산에서 얻은 영감이 생생할 때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도봉산, 내설악, 외설악, 치악산, 백학봉…. 50대에 시작한 산행은 그를 ‘산의 화가’로 만들었다.평양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박요섭이다. 1935년 일본 유학을 떠나며 ‘오래된 돌’이라는 뜻의 ‘고석’이란 호를 스스로 붙였다. 니혼대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10년을 일본에서 보냈지만 도쿄 대공습으로 초기작은 모두 잿더미가 됐다. 광복 후 서울에 정착해 배화여고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1·4후퇴 때 부산 범일동 공동묘지 근처에 판자 작업실을 지었다. 이 시절 그는 이중섭과 한집에 살 만큼 절친했다. 1956년 이중섭이 40세로 요절했을 때 유해 일부를 건네받아 1년간 집에 모신 게 그였다.한때 추상화 실험에 매진하던 박고석은 50대에 접어들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자신의 호처럼 우직하게 산을 그렸다. 지금 서울 대치동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전시에서 그의 작품 ‘외설악’을 만날 수 있다.성수영 기자

    2026.04.28 17:32
  • 손바닥만 한 그림에 담긴 30년…모린 갈라스 한국 첫 개인전

    “엽서 아니야?”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 걸린 모린 갈라스(66)의 그림을 처음 마주한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 가로 30cm를 넘지 않는, 손바닥 두 개 정도에 불과한 그림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감상이 달라진다. 화면을 거의 덮을 만큼 큰 붓자국 덕분에 한 번의 붓질이 하늘과 바다, 집이 된다. 그 사실을 눈앞에서 느끼는 순간, 엽서 같던 그림은 갑자기 넓어 보이기 시작한다.지금 글래드스톤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갈라스는 미국 뉴욕대(NYU)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30년 넘게 풍경화를 그려온 화가다. 201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시카고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풍경화가다.갈라스의 그림들은 모두 주제가 비슷비슷하다.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의 집, 해안, 꽃 등이 반복된다. 구도도 대부분 엇비슷하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갈라스를 평생 비슷한 주제를 그렸던 폴 세잔(1839~1906), 조르조 모란디(1890~1964) 같은 화가들과 비교하곤 한다.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갈라스는 “같은 주제라도 새롭게 그릴 것들은 늘 남아있다”며 “대상에 생명을 불어넣을때까지, 끝장을 낼 때까지 그리려고 한다”고 말했다.갈라스는 사진을 토대로 작품을 구상한다. 실제 사진과 똑같이 그리는 건 아니다. 그는 “에드워드 호퍼가 뉴욕 풍경을 그릴 때 실제 모습과 다르게 그렸던 것처럼, 마음에 드는 비례와 느낌으로 고쳐 그린다”고 말했다.그래서 그가 그리는 집은 현실과 미묘하게 다르다. 갈라스의 집 그림에는 사람이나 가구가 없고, 문이나 창문조차 없을 때도 있

    2026.04.28 09:23
  • 40년 전부터 '왕을 그린 남자'가 있었다

    지금 한국에서 역사적 인물 가운데 최고의 화제는 단연 단종(1441~1457)이다. 숙부에게 왕위를 억울하게 빼앗기고 쫓겨나 열여섯 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소년왕. 그 이야기를 다룬 ‘왕과 사는 남자’는 최근 1600만 관객을 넘기는 대흥행을 기록했다. 그런데 지난 40년 가까이 단종 이야기를 묵묵히 그려온 화가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역 화가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용선(75)이다.서 작가가 단종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서른다섯 살이던 1986년이다. 단종이 마지막 나날을 보낸 강원 영월군에서 친구와 단종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단종을 소재로 인간의 비극을 그려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구 미술에 비해 한국 미술에서는 역사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 충분치 않다는 문제 의식도 있었다. 그 길로 붓을 든 그는 이때까지 유화 150여 점, 드로잉 350여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남겼다.서용선의 그림은 예쁘지 않다. 얼굴은 뒤틀려 있고, 선과 색은 거칠다. ‘잘 그렸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이는 의도된 것이다. 역사화를 기록화처럼 정밀하게 재현하는 대신, 단종이라는 인간이 처한 상황의 긴장과 불안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다.붉은색도 마찬가지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선택한 장치다. 단종이 영월에서 썼던 시 자규사(子規詞)의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붉은 꽃이 진다’는 구절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서울 4개 갤러리(갤러리밈·디스코스온아트·아트스페이스3·갤러리JJ)와 강원 영월관광센터 등 5곳에서 서용선의 단종 그림 40주년을 기념하는 합동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단종 역사화의 궤적을 정리한 단

    2026.04.27 17:29
  • 40년 전부터 '왕을 그린 남자'… '단종의 화가' 서용선 연합 전시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역사적 인물은 단연 단종(1441~1457)이다. 숙부에게 왕위를 억울하게 빼앗기고 쫓겨나 열여섯 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소년왕. 그 이야기를 다룬 '왕과 사는 남자'는 최근 1600만 관객을 넘기는 대흥행을 기록했다. 그런데 지난 40년 가까이 단종 이야기를 묵묵히 그려온 화가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역 화가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용선(75)이다.서 작가가 단종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서른다섯 살이던 1986년이다. 단종이 마지막 나날을 보낸 강원도 영월에서 친구와 단종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단종을 소재로 인간의 비극을 그려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구 미술에 비해 한국 미술에서는 역사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 충분치 않다는 문제 의식도 있었다. 그 길로 붓을 든 그는 이때까지 유화 150여 점, 드로잉 350여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남겼다.서용선의 그림은 예쁘지 않다. 얼굴은 뒤틀려 있고, 선과 색은 거칠다. ‘잘 그렸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이는 의도된 것이다. 역사화를 기록화처럼 정밀하게 재현하는 대신, 단종이라는 인간이 처한 상황의 긴장과 불안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다.붉은색도 마찬가지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선택한 장치다. 단종이 영월에서 썼던 시 자규사(子規詞)의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붉은 꽃이 진다’는 구절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서울 4개 갤러리(갤러리밈·디스코스온아트·아트스페이스3·갤러리JJ)와 강원도 영월관광센터 등 5곳에서 서용선의 단종 그림 40주년을 기념하는 합동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단

    2026.04.27 11:32
  • 고흐에게 잠시 찾아온 평온의 순간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미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하나다. 전세계 어디에서든 그의 작품이 전시되는 장소엔 관객이 구름처럼 몰린다.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잡아끄는 건 붓질이다.내면의 격정과 고통을 담아 두껍게 쌓아올린 물감, 화면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거친 붓자국은 스크린이나 인쇄된 그림으로는 느낄 수 없다. 직접 원화 앞에 서서 캔버스 위에 남은 물감의 두께와 결, 붓이 지나간 방향과 속도를 눈으로 따라간 관객만이 130여 년 전 고흐가 붓을 휘두르던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다음달 28일부터 8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에는 고흐의 작품 두 점이 포함돼 있다. 1886년 고흐가 프랑스 파리에 체류할 때 그린 ‘카네이션이 있는 꽃병’, 1890년 오베르에 체류할 때 그린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다.‘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는 고흐가 남긴 작품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림이다. 고흐는 37년 인생의 대부분을 방황하며 보냈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판매원, 책방 점원, 탄광촌의 전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27세에 화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불과 10년 남짓의 시간 동안 고흐는 유화 약 860점, 소묘 약 1200점을 남겼다.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는 1890년 7월,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한 달 전에 그린 작품이다.그림의 분위기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고흐 작품의 분위기와 다소 차이가 있다. 수평적인 안정감과 청량한 색채 덕분에 그림은 평온하면서도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우아즈 강변이 고흐에게 마음의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2017년 개봉해 전세

    2026.04.2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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