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정보법 처리 또 불발…스타트업 '부글부글'

여야 "이견 해소됐지만 미세조정 필요"…다음달 재논의
인터넷은행법도 표류…케이뱅크 자본 확충길 다시 막혀
연내 법안 처리 못하면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
'데이터 3법'엔 이견 없다면서…국회, 1년간 스타트업 '희망고문'

“참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같은 작은 회사는 시간이 곧 돈이고 생존입니다.”

보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A사 관계자는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신용정보법 개정안 처리가 보류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하소연했다.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보였고 여야 간에 큰 이견도 없다는 법안이 기껏 ‘심의’ 단계 하나를 통과하는 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이 회사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이 올초 처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지난해부터 갖가지 신사업을 구상했다. 단순한 보험상품 추천을 넘어 빅데이터를 융합한 자산관리,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활용한 건강관리 서비스 등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발의된 데이터 3법은 기약 없이 잠만 자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연신 허리를 숙이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런 진척 없는 데이터 3법

1년 가까이 법안 처리의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하고 있는 데이터 3법의 사례는 ‘정치가 신산업의 발목을 잡는’ 대한민국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이터 3법은 올해 안에 처리되지 않으면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정보통신망법과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도 법안소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정무위 법안소위 하루 전인 23일 은행연합회·금융투자협회·여신금융협회·생명보험협회 등 8개 금융단체는 신용정보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통과가 미뤄져 하루하루 애가 타는 마음”이라며 “그동안 준비해온 다양한 데이터 기반 혁신 서비스가 빛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제한된 인력과 자본으로 최대한 속도를 높여야만 살아남는 스타트업들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깝다. 토스 창업자인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지난 7월 국회 간담회에서 “정치적 이슈 때문에 산업 혁신이 볼모로 잡혀 법 개정이 미뤄지는 건 정말 옳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산업에 강한 의욕을 보여온 금융위원회 관계자들도 “너무 지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신용정보법, 어떤 내용 담았나

데이터 3법이 화두로 떠오른 계기는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의 ‘데이터 경제’ 선언이다. 문 대통령은 “데이터는 미래의 석유”라고 강조하고 기업이 개인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석 달 뒤 여당 주도로 발의된 것이 데이터 3법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하는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여야는 ‘데이터산업 육성’이라는 큰 틀에서 공감대가 있었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다른 정보와 결합하지 않으면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가명정보’ 개념을 도입해 시장조사나 연구 목적에는 당사자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여러 금융회사에 흩어진 금융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마이데이터 업종을 도입하는 법적 근거를 담았다.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보호법(GDPR) 등을 반영해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선진국 수준으로 재정비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사업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다.

대형 금융회사들은 빅데이터 분석 마케팅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강하지만, 현행법 위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기획 단계에서 전부 걸러내고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데이터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고, 어디까진 안 되는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려면 법안 통과가 시급하다”고 했다.

“정치가 신산업의 발목 잡는 꼴”

이날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도 정무위 법안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인터넷은행 대주주의 한도초과 지분보유 승인 요건에서 금융 관련 법령 외 다른 법 위반 요건은 제외한다는 내용이다.

금융업계에서 이번 개정안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곳은 케이뱅크다. 기존 인터넷은행법에선 정보통신기술(ICT) 주력인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가 인터넷은행의 지분을 보유 한도(4%)를 넘어 34%까지 늘릴 수 있게 했다. 한도 초과 지분을 보유하려면 금융당국의 승인이 필요한데 해당 대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 관련 법령과 공정거래법, 조세범 처벌법 등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어야 한다.

케이뱅크의 사실상 대주주인 KT는 인터넷은행법 시행을 계기로 지분을 34%로 확대하려다가 이 조항에 발목이 잡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4월에 KT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검찰 수사와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승인 심사를 잠정 중단했다.

금융당국의 심사 중단은 케이뱅크의 대출영업에 타격을 입혔다. 케이뱅크는 자기자본 부족으로 대출상품 판매를 중단한 상황이다. 유일한 돌파구가 KT의 지분 확대를 통한 유상증자였다. KT 외 다른 주주들은 증자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임현우/박신영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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