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지 두 달여가 지난 가운데 국내 소재·부품·장비 생태계엔 전화위복이 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재정을 집중 투입하는 데다 기반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소들도 속속 성과를 내고 있어서다. 소재·부품 국산화의 최전선에 있는 기술연구소들의 성공 사례를 기획·연재한다.

한국광기술원의 한 연구원이 전자현미경으로 광섬유 소재를 관찰하고 있다.  /한국광기술원 제공
한국광기술원의 한 연구원이 전자현미경으로 광섬유 소재를 관찰하고 있다. /한국광기술원 제공
깜깜한 밤에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적외선 카메라. 국내 기업이 군사 및 민수용으로 생산해 왔지만 핵심 부품은 일본과 유럽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광학유리 소재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산화 길을 뚫어준 건 한국광기술원이었다. 약 6년간의 연구개발(R&D) 끝에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최근 국내 기업에 이전을 완료했다.

광기술원이 개발한 광학유리 소재 및 광학렌즈 기술은 대표적인 국산화 성공 사례다. 이 연구소가 관련 기술 개발에 착수한 건 2012년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주도의 ‘핵심 방산소재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적외선 카메라가 군사용뿐만 아니라 민간 화재감지, 보안감시 등 광범위하게 쓰이는데도 제조사들은 핵심 기술을 일본 이스즈 옵토크리스탈, 유럽 유미코어 등에 의존해 왔다. 특히 광학렌즈 및 모듈은 적외선 카메라의 ‘눈’에 해당하는 필수 부품이다.

日 그늘 벗어난 광학렌즈 '1000억 수출' 빛 본다
광기술원은 작년 8월 종료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칼코지나이드 적외선 광학유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고분해능 광학계용 렌즈 등 국내외 특허 25건, 국제 논문 게재 13건 등의 성과도 올렸다. 광기술원은 이 원천기술을 국내 중소기업에 이전했고, 모바일 및 차량용 광학모듈·카메라로 총 100억원의 수출을 달성하는 데 일조했다. 향후 연간 10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거리측정기나 드론 등에 들어가는 레이저 유리 소재도 마찬가지다. 광기술원은 올 7월 완료된 ‘민군 겸용기술개발’ 사업을 통해 일본 화이버랩스, 미국 키그리 등이 과점하고 있는 글로벌 레이저 유리 시장에 뛰어들 발판을 마련했다. 레이저 유리는 거리측정기와 3차원(3D) 지도(매핑), 드론, 로봇 등을 제조하는 데 활용된다.

광기술원은 정부 과제를 받아 2014년부터 약 5년간 레이저 유리를 개발했다. 최근 1550나노미터(㎚·1㎚는 10억 분의 1m) 파장 레이저 유리 소재 및 광섬유 광원 기술을 확보했다. 기존 레이저의 경우 20m에 달하는 광섬유를 필요로 했지만, 광기술원이 개발한 불소인산염 광섬유 레이저는 30㎝ 미만으로도 같은 성능을 낼 수 있다. 이 기술로 국내외 특허 10건 및 국제 논문 5건 게재 등 성과를 냈다.

국내 특수광섬유 전문기업은 이 기술을 이전받아 고부가가치 광원모듈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이 모듈로만 연간 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영선 광기술원 원장은 “소재, 설계, 공정기술, 측정평가 등 전(全) 주기적 기술 개발로 원천 소재를 산업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광학렌즈 모듈 등의 국산화로 일본 수출규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광기술원은 발광다이오드(LED), 레이저, 센서, 렌즈 등 빛을 원천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2000년 설립된 광융합 전문 생산기술연구소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