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모찌롤’은 1만4000여 개 점포를 운영하는 국내 1위 편의점 CU의 인기 디저트다. 일본에서 냉동 상태로 수입해 판매해왔다. 지난해 출시 3개월 만에 150만여 개가 팔리면서 최단기간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웠다. 점주들이 “없어서 못 판다”고 아우성이던 제품이다. CU가 ‘대박’ 상품인 리얼모찌롤의 추가 수입을 최근 중단하기로 했다. 물류창고에 남아 있는 재고를 판매한 뒤엔 모찌라는 제품명 대신 ‘수박롤케익’ ‘쫀득멜론롤케익’ 등을 사용할 계획이다. 새로 판매하는 제품은 일본이 아니라 국내 제조업체에서 공급받을 예정이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 선제적으로 수입을 중단한 것이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한 점포 출입문에 “코리아세븐은 대한민국 기업입니다”라는 호소문이 붙어 있다.  /세븐일레븐 제공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한 점포 출입문에 “코리아세븐은 대한민국 기업입니다”라는 호소문이 붙어 있다. /세븐일레븐 제공
일본색 빼기 안간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면서 유통업계와 식품·외식업계가 ‘일본 색깔 빼기’에 나서고 있다. 식품에 소량 포함됐던 일본산 원료를 국산 등으로 대체하는가 하면 일본산 제품 수입을 아예 중단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브랜드나 제품명을 한글로 바꾸는 사례도 빈번하다. ‘일본 자본이 소유한 기업’이라는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지분구조 등을 낱낱이 공개하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하자”는 분위기다.

기업들이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의 양상이 과거와 다르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노재팬’ 등의 사이트를 통해 제품과 기업, 브랜드의 실시간 검색과 공유가 이뤄진다.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제품 바코드만 찍어도 성분과 원산지 등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파급력이 크다. 대충 숨기거나 알리지 않은 채 슬쩍 넘어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불매운동 정보를 가장 빠르게 접하고 움직이는 층은 20~30대다. 대체재가 많은 일본 맥주 불매도 젊은 층 소비자가 주도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일본이 수출하는 맥주의 60% 이상을 소비해왔다. 최대 성수기인 7월 들어 편의점에서 맥주 판매량은 일제히 증가했지만, 일본 브랜드는 유일하게 판매량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일본산 맥주 판매량이 70% 이상 줄어 더 이상 추가 발주를 하지 않고 있다”며 “매대에 있는 것조차 불쾌해하는 소비자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식 주점과 일본 음식을 파는 식당들은 불매운동에 선제 대응하기도 한다. 서울 서촌, 홍대입구 등에서 일본식 비빔라면 마제소바를 판매하는 칸다소바는 가게 입구에 ‘한국인이 100% 지분을 소유한 한국 회사’라고 써붙이고 일본산 수입 음료 구슬사이다 판매를 중단했다.

불매운동 불똥 튈라…기업들 "일본색 지우기,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오해 말라” 이름 바꾸고 지분 공개도

기업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일본과 엮여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CU는 모찌롤 외에도 일본에서 수입하던 나가사키짬뽕, 돈코츠라멘, 소유라멘 등 라면 3종에 대해서도 수입을 중단키로 했다. 세븐일레븐은 최근 전국 9700여 개 점포에 긴급 안내문을 보냈다. “한국 세븐일레븐은 미국 세븐일레븐과 계약하고 있으며, 코리아세븐은 대한민국 기업”이라는 게 안내문의 요지다. 일부 소비자 사이에서 세븐일레븐이 일본 브랜드라는 루머가 퍼져 가맹점주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이다.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의 대주주가 79.66%의 지분을 보유한 롯데지주라는 점도 강조했다. 다른 편의점 GS25는 식품과 생활용품 등 20여 개 일본 상품을 프로모션 행사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비자 불매운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식품회사에도 비상이 걸렸다.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은 커피맛우유에 소량 들어가는 일본산 향료를 국산으로 대체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일본산 원료를 썼다는 게 알려지면 불매운동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가급적 국내산이나 다른 지역 원료로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서울우유는 일본 유명 치즈 브랜드 QBB와의 계약을 조기에 해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3년 계약을 맺고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채 1년도 안 돼 더 이상 수입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일본산 원료 쓰는 화장품업계도 ‘비상’

화장품업계도 비상 점검에 들어갔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일본산 원재료를 두루 사용하고 있어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관련 품목에 해당하는 원료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거래처를 다변화하는 등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선블록크림에 사용하는 일본산 원료가 수출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당장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수출규제 대상이 확대될 경우에 대비해 비상 대응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라/안재광/민지혜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