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결에서 대법원이 공정위 측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자사 부품을 일정 수량 구입하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영업 방식인 ‘조건부 리베이트’에 제동을 건 국내 첫 판례라는 점에서 국내외 경제계와 경쟁당국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법 "퀄컴 조건부 리베이트는 위법…공정위 2000억대 과징금 정당"
과징금은 20% 정도 줄어들 수도

퀄컴은 휴대폰 단말기 부품과 이동통신기술의 일종인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특허기술을 보유한 다국적 기업이다. 퀄컴은 2004년 4월부터 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에 CDMA 기술을 사용하도록 하면서 경쟁사 모뎀칩을 쓸 경우 로열티를 더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에는 2000년 7월부터 모뎀칩 수요 가운데 일정량 이상을 자사 제품으로 구매하는 조건으로 분기당 수백만달러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이른바 ‘조건부 리베이트’다.

공정위는 퀄컴이 이런 방법을 통해 경쟁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봉쇄하는 불공정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국내 모뎀칩·무선주파수(RF)칩 시장 점유율을 100% 가까이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조건부 리베이트 영업 방식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2009년 7월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2732억원의 과징금 납부를 명령했다. 퀄컴은 2010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은 10년째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퀄컴은 조건부 리베이트 행위에 “고객인 휴대폰 제조업체에 혜택을 제공한 것일 뿐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경쟁사업자의 납품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으로 단순한 가격 할인과 구분된다”고 반박했다. 2013년 6월 서울고법은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퀄컴의 불공정 행위를 인정했다. 조건부 리베이트 행위에 대해 재판부는 “경쟁사업자와 거래하지 말라는 조건을 내걸고, 이를 지켜야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휴대폰 제조사에) 사실상의 강제력이나 구속력을 행사했다”며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로 경쟁제한 효과를 발생시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단순히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 자체만으로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원심은 퀄컴이 LG에 RF칩 리베이트를 제공해 공급을 독점하는 것만으로 최소 40% 이상 시장 봉쇄 효과가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6~2008년 LG의 국내 CDMA2000 방식 점유율은 21~25%가량에 불과했고, 퀄컴의 RF칩 국내 시장점유율은 2002년부터 상당폭 하락 추세였다”며 “당시 리베이트 제공으로 국내 RF칩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하는 효과가 생길 만한 우려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해당 부분에 대해선 과징금 산정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법조계에선 전체 과징금의 20% 안팎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공정위 vs 퀄컴 ‘2라운드’ 결과

이번 사건은 조건부 리베이트 제공행위가 위법하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다. 공정위 측을 대리한 김지홍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조건부 리베이트가 일반 가격할인과 달리 경쟁제한적 성격을 띨 수 있고, 시장 봉쇄 정도 및 경제분석 결과에 따라 위법성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조건부 리베이트는 기업이 영업 수단으로 자주 활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번 판례가 ‘영업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공정위의 승소가 해외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조건부 리베이트에 대해선 유럽연합(EU) ‘위법’, 미국 ‘적법’ 등으로 각국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대형 로펌의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국내에선 소멸시효 등의 문제 때문에 어렵겠지만 삼성전자 LG전자가 수출한 휴대폰 단말기와 관련해 외국 소비자의 집단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법에선 공정위와 퀄컴의 ‘2라운드’가 진행 중이다. 퀄컴은 2009년부터 7년간 표준필수특허를 독점하고 휴대폰 제조업체에 불공정한 라이선스 계약을 강요한 것으로 조사돼 2016년 12월 공정위로부터 1조3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또다시 부과받았다. 법조계는 오는 5월께 증인신문을 마친 뒤 늦어도 올해 안에는 선고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신연수/임도원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