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기획재정부에 KT&G 사장 교체와 적자국채 추가 발행을 강요했다’는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폭로로 공직사회가 새해 벽두부터 크게 술렁이고 있다.

기재부가 2일 신 전 사무관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태는 더 확대되는 모습이다. 정권의 ‘코드 인사’, 정부와 청와대의 합리적 정책 결정 시스템 부재 등에 근본적인 개혁이 없다면 언제든 ‘제2의 신재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기재부는 이날 “신 전 사무관이 공무상 비밀누설을 금지한 형법과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KT&G 관련 동향보고 문건을 출력해 외부에 유출하고, 적자국채 발행 관련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외부에 공개한 것을 문제 삼았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검찰 고발 결정 배경에 대해 “이런 행위에 대한 처벌이 없다면 제2의 신재민이 나올 수 있다”며 “이는 정상적인 국정 수행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무관 등 젊은 공무원들은 기재부의 검찰 고발에 동요하는 모습이다. 신 전 사무관과 같이 일했다는 A사무관은 “신 전 사무관은 공직관이 정말 투철했다”며 “이번 폭로는 공익 제보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B사무관은 “KT&G 문건은 공식적으로 생산된 대외비 문건이 아닌데 고발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젊은 사무관들 입에 재갈 물리기 아니냐”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공무원들이 언제까지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야 하느냐”며 격앙된 반응도 보였다.

청와대의 강압적 지시 의혹에 대해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많다. C사무관은 “정권 초 ‘김동연 전 부총리 패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와대가 모든 정책을 좌지우지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선배 공무원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신 전 사무관이 용기 있게 했다”고 말했다. D사무관은 “정권 교체 전후 단골로 나오는 ‘영혼 없는 공무원’ 문제의 본질을 국민이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신 전 사무관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글도 올라오고 있다.

반면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기재부 한 과장은 “사무관 위치에서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며 “본인 생각만 정의라고 여기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다른 경제부처 간부회의에선 “처자식 없는 사무관들을 조심하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이번 사태를 젊은 사무관의 치기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KT&G 건의 경우 다른 공무원이 작성한 문건을 외부에 유출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폭로로 남은 동료들만 더 힘들어졌다는 불만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기재부를 이탈하는 공무원은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국장급 엘리트 공무원이 민간 기업으로 이직한 데 이어 최근엔 한 사무관이 로스쿨에 합격해 그만두기로 했다. 또 다른 기재부 과장은 “정권이 아직도 적폐 청산에 몰두하고 있는 데다 청와대와 국회의 일방적 정책 지시에 치이는 것도 사실”이라며 “재취업 길도 좁아져 앞이 막막하다 보니 다른 길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와대의 권력이 너무 비대해진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청와대 권력이 내각 위에 군림하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며 “부처에 정책 자율권을 주고,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같은 시스템이라면 언제든 ‘제2의 신재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김일규/임도원/성수영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