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가 단체협약으로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정기상여금을 다시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밀린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더라도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른 기업들도 줄줄이 통상임금 소급 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당장 아시아나항공과 현대중공업, 기아자동차 등이 비슷한 건으로 고등법원 및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강성 노동조합이 있는 다른 회사들도 줄소송에 휩싸일 것이란 관측이다. 최저임금 인상 및 시행령 개정(쉬는 주말도 근로시간 인정), 근로시간 단축 등과 맞물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송두리째 흔드는 대형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 "통상임금 소급 청구, 신의칙 위배 아니다"
법원 “경영난 인정 안돼”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27일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근로자 곽모씨 등 3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다스는 원고들에게 미지급한 법정수당 및 중간정산 퇴직금 차액 700여만~3500여만원씩 총 6억5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의 쟁점은 근로자들이 사측과 맺은 단체협약에 반해 추가로 임금을 청구하는 게 신의칙에 위반되는지 여부였다. 신의칙은 계약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이 상대방을 배려해 권리를 남용해선 안 된다는 민법상의 원칙이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최초로 등장했다. 당시 대법원은 자동차 부품회사인 갑을오토텍이 피고인 사건에서 정기상여금이 고정성·일률성·정기성 등의 조건을 갖출 경우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전까지는 기업들이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상여금과 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또 해당 기준에 따라 근로자가 통상임금을 소급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신의칙에 따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다스 소송과 관련해 1·2심 재판부는 모두 “원고들의 청구로 피고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고 볼 수 없다”며 신의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냈다. 다스 측은 “해당 소송 진행 과정에서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이로 인해 자금 차입, 경쟁입찰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등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소송 결과에 따라 피고가 근로자들에게 추가로 지급해야 할 차액은 177억300만원가량으로 추산되고, 이에 수반되는 사회보험료 분담금 등을 고려하더라도 추가 부담 금액이 최대 약 200억원 정도”라며 “피고의 2009~2013년 당기순이익의 합계 1500억여원의 13%가량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산업계 “줄소송 우려”

경제계는 다스 노사가 2010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는데, 대법원이 이를 외면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신의칙은 노사가 당초 약속한 내용을 존중하라는 건데, 법원은 기업의 경영실적이라는 엉뚱한 기준만 들이대고 있다”며 “회사가 재무상 여력이 있다는 이유로 노사합의 내용에 없던 임금을 소급해 지급하라는 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까지 나쁘지 않은 실적을 거뒀더라도 내년 이후 갑자기 위기를 겪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극심한 판매부진 탓에 다스 같은 자동차 부품업계는 내년 상반기 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많다. 기아차는 지난해 8월 통상임금 소송(1심)에서 패소한 뒤 충당금을 쌓는 바람에 같은해 3분기 427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내기도 했다. 2007년 3분기 이후 10년 만의 적자였다.

이날 판결을 계기로 재판부가 줄줄이 원고(근로자)의 손을 들어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현대중공업, 만도, 현대미포조선, 한진중공업, 금호타이어 등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기아차와 현대제철,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위아, 현대로템 등과 관련된 소송은 고등법원에 계류돼 있다.

도병욱/신연수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