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이 고령자를 위한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 ‘현금 뿌리기식’ 정책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가 재정에 부담이 되는 복지를 늘리려면 중앙 정부와 협의를 거쳐야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지자체장이 먼저 발표해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늘어난 노인 복지 예산을 감당하지 못해 정부에 손을 벌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TV 유선방송비까지…지자체, 현금부터 뿌린다
서울 중구는 내년 1월부터 만 65세 이상 구민에게 월 10만원어치 지역화폐를 주는 ‘어르신 공로수당’을 신설한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지급 대상은 65세 이상 노인 중 기초연금수급자(소득 하위 70%) 또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중구는 어르신 공로수당 예산으로 156억원을 책정했다.

중구는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해당 정책을 발표했다. 난감해진 복지부는 “정부가 이미 지급하고 있는 기초연금과 성격이 비슷하다”며 어르신 공로수당을 지급하면 중구에 배정된 기초연금수급비 250억원 가운데 10%인 25억원을 삭감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복지부의 기초연금수급비 삭감에 반대하면서 어르신 공로수당을 지급하겠다는 뜻을 복지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중구의 노인 인구비율이 서울에서 가장 높은 17%기 때문에 서 구청장이 노인표를 의식해 무리한 정책을 편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북 임실군은 노인이 있는 가구에 TV 유선방송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심민 임실군수가 지난 7월 취임 후 내놓은 ‘효심공약’ 중 하나지만 지상파가 아닌 유선방송을 시청하는 비용까지 지자체가 지원하는 게 맞냐는 논란이 일었다.

지자체 간 복지 경쟁으로 나빠진 재정은 고스란히 중앙정부 부담으로 돌아간다. 찬반 여론이 있는 노인 지하철 무료승차가 그런 사례다. 서울시 지하철에서 시작된 노인 무료승차는 인천 부산 등 다섯 곳 지자체로 확산됐다. 서울의 경우 지하철 1~8호선의 노인·장애인과 유공자 무임승차에 든 비용은 지난해 3679억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서울교통공사 당기순손실의 68.6%를 차지한다.

일각에선 노인 복지를 위해 이 정도의 경제적 비용은 치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지자체뿐 아니라 중앙정부 재정에 펑크가 나면 결국 요금 및 세금 인상으로 일반 국민이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복지 확대는 국민 의견수렴 절차 등을 거쳐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