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가 근로자 연봉 3500만원 수준의 완성차 공장을 짓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4일 잠정 합의했다. 한때 좌초 위기에 내몰렸던 ‘반값 연봉 공장’ 실험이 다시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다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았다. 광주시와 지역 노동계·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노사민정협의회가 5일 잠정 합의 내용을 공식 결의해야 하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노동계가 잠정 합의안을 거부하면 논의 자체가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현대차 노동조합이 ‘총파업 카드’를 들이밀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점도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광주형 일자리' 난파 직전 살려냈지만…현대차 노조는 파업 예고
투자 협상 타결 임박

광주시는 이날 현대차와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잠정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5일 광주시청에서 노사민정협의회를 열고 이를 공동 결의할 계획이다. 노사민정협의회에는 이용섭 광주시장을 비롯해 윤종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광주지역본부 의장, 최상준 광주경영자총협회장, 백석 광주경실련 대표 등이 참석한다. 협의회는 광주시와 현대차 간 투자 협상 결과를 보고받고, 공동 결의를 통해 최종 추인할 방침이다. 노사민정의 공동결의가 이뤄지면 이를 바탕으로 광주시와 현대차가 최종 투자 협상을 마무리하고, 6일께 투자협약 조인식을 열게 된다.

광주시는 최종 협상안의 주요 내용은 안정적인 노사관계 정착을 위한 상생발전협의회 구성 방안, 선진 임금체계 도입, 적정 노동시간 구현 및 인력 운영 방안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광주시가 쟁점 현안이었던 근로시간 및 임금 등과 관련해 현대차의 의견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6월 광주시에 제출한 투자의향서를 통해 임금은 연간 3500만원(주 44시간 근로 기준)이 적정하다고 했다. 소모적인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임금 및 단체 협약은 5년간 유예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또 시장 상황이 급변한 만큼 노동계가 요구하는 ‘최소 생산물량 보장’은 들어주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노조에 경영 정보 일부를 공개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시켜 달라는 지역 노동계의 요구도 수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런 조건이 대부분 충족되면 광주 완성차 공장에 530억원(지분율 19%)을 투자하겠다는 게 현대차의 방침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광주시가 인건비를 혁신적으로 줄여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기존 취지를 살리기 위해 현대차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하지 않았겠느냐”며 “다만 노동계 안팎에서 제기한 적정임금, 적정 근로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개선 등 4대 원칙이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 여부는 여전히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역노동계 수용 여부가 관건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고비용·저효율의 늪’에 빠진 한국 자동차산업이 다시 본궤도에 올라설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여겨져왔다.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 사업은 지난 3월 광주시의 ‘노사민정 대타협’으로 시작했다. 근로자 연봉 3500만원 수준의 완성차 공장을 세워 일자리를 창출해보자는 실험이다.

하지만 지역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복잡하게 꼬였다. 광주시가 지난달 노동계 요구를 받아들여 수정안을 내면서다. 광주시는 ‘주 44시간 근로·연 3500만원 지급’이라는 기존 계획을 ‘주 40시간 근로·추가근로 시 초과근로수당 지급’으로 바꿨다. 고비용의 대명사처럼 된 ‘울산형 일자리’만 하나 더 생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현대차는 노동계 요구가 반영된 수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고, 협상은 난항을 겪게 됐다. 좌초 위기까지 내몰렸던 협상은 광주 노동계가 ‘협상 전권’을 광주시에 위임하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었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이날 의견 접근을 이뤄낸 배경이다.

잠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는 아직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5일 노사민정협의회에서 지역 노동계가 예상을 뒤엎고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탓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결국 지역 노동계가 협상 결과를 받아들이냐 여부가 관건”이라며 “이를 지켜본 뒤 6일 최종 합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는 회사(현대차)가 광주형 일자리 협약에 동의하면, 이르면 6일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한국노총과 달리 광주형 일자리 사업 논의에 불참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와 금속노조 등도 광주형 일자리 협상을 중단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용섭 시장이 지난달 30일 현대차 울산공장을 찾아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창민/광주=임동률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