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회원국의 온실가스 저감 의무를 강화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하고 이를 위해선 원자력 발전을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탈(脫)원전 정책을 펴고 있는 한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0(제로)’에 가까운 원전을 없애면서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탈원전 정책과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脫원전하며 온실가스 감축?…딜레마 빠진 정부
8일 IPCC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195개 회원국은 이달 1~5일 제48차 IPCC 총회를 열고 2100년까지 지구의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 합의했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정한 목표치(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제한)보다 강화된 1.5도 이내 권장치를 달성하려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IPCC는 1988년 설립된 국제기구로, 지금까지 다섯 번의 종합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들에 근거해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협약이 채택됐다. 이번 특별 보고서는 오는 12월 폴란드에서 열리는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4)에서 파리협약 이행지침 마련을 위한 기초자료로 쓰인다. 종합보고서는 아니지만 국제사회가 온실가스 배출을 더 엄격히 규제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원전 활용도를 높여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산화탄소 배출 시나리오를 분석한 결과,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려면 원전 발전량을 2010년 대비 59~106%가량 늘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PCC 소속 기후·에너지 전문가들은 일관되게 원전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핵심 요소라고 분류했다. 2014년 발간된 ‘5차 종합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선 원전 기술이 다른 기술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며 “원자력 사용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차세대 원자력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 혁신으로 안전성, 환경성 등 원전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봤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에너지 부문은 산업 부문과 더불어 온실가스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원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h당 10g에 불과하다. 석탄(991g), 석유(782g)뿐 아니라 태양광 발전(57g)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 정부가 원전 조기 폐쇄, 건설 중단 등을 통해 원전을 에너지 시장에서 몰아내면 온실가스 배출량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IPCC가 이번에 제안한 ‘2010년 대비 45% 감축’ 목표는커녕 파리협약 목표치인 ‘2030년까지 국가전망치(BAU)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37% 감소’도 지키기 어렵다고 내다보는 이유다.

심은지/박진우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