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으로 불린다. M&A를 주선하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자사의 ‘에이스’를 삼성 담당으로 임명하는 이유다. 올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글로벌 빅3’ IB 가운데 두 곳(모건스탠리, JP모간)의 삼성 담당 파트너들이 IB업계를 떠났다. 삼성의 M&A 시계가 1년 넘게 멈춘 탓이다.

외국계 IB 관계자는 “삼성 수뇌부가 지배구조 개편 등 ‘국내 리스크’에 신경 쓰느라 정작 본연의 업무인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뒷전으로 미뤄놓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국내 기업들이 과도한 규제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 압박, 일감몰아주기 규제,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등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족쇄는 한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다. 기업인들 사이에서 “미국과 중국 정부처럼 기업을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 제발 괴롭히지만 말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삼성그룹만의 고민이 아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최근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재추진하기로 하고 추가 자문사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두 그룹은 “연내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해달라”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내준 숙제를 풀기 위해 각 분야 핵심 인재를 관련 팀에 집중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과 LG그룹도 마찬가지다. SK는 최근 ‘지주회사 요건 강화’를 핵심으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으로 인해 지배구조 개편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할 처지다. LG는 서브원 등이 새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자 해법 찾기에 나섰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의 최대 강점인 ‘빠른 의사 결정’이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압박과 맞물리면서 퇴색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오상헌/장창민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