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26일 4300억원에 이르는 즉시연금 미지급금의 일괄 지급을 사실상 거부한 것을 두고 감독당국은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진 않았다. 법적 소송으로 가게 된다면 금융감독원 또한 대법원 결론이 날 때까지 보험사를 제재할 근거가 없어서다.

하지만 내부 분위기는 다소 격앙돼 있다. 삼성생명이 일부 지급을 결정한 것은 일괄 지급하라는 금감원의 권고를 무시했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윤석헌 금감원장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가장 중요한 감독과제로 꼽은 상황에서 삼성생명이 일부 지급만 결정한 것은 감독당국의 권위에 맞서겠다는 의미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대신 비슷한 즉시연금 상품에 가입한 이들에게 금감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할 것을 홍보할 계획이다. 보험사 약관에는 보통 보험금 청구기한을 3년으로 두고 있다. 단 금감원에 분쟁 조정 신청을 할 경우 이 같은 시효가 멈춘다. 금감원이 이 같은 홍보를 할 경우 보험사들의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즉시연금 가입자들의 민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어서다.

보험업계는 삼성생명의 결정 소식에 안도하고 있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이 미지급금 중 일부만 주겠다고 결정한 만큼 다른 보험사도 일괄 지급할 명분이 약해져서다. 게다가 삼성생명이 법원 판단에 맡기겠다는 결정을 내린 덕에 다른 보험사들도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다만 일부 보험사는 삼성생명의 이 같은 결정이 금감원의 보험감독 방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당장 걸려 있는 문제가 금융그룹통합감독안과 새 감독체계인 신지급여력제도(K-ICS)다. 금감원이 이 기준을 어떻게 확정하느냐에 따라 보험사들이 쌓아야 할 추가 자본의 규모가 달라진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금감원과 보험사 간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