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빅브러더' 개혁委… 8개월 적폐몰이에 조직 '패닉'
“노동현안이요? 지금 일이 손에 잡히겠습니까?”

고용노동부 일선 공무원들이 집단 무기력증에 빠졌다. 과거 정부의 고용노동 행정 적폐를 바로잡겠다며 출범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개혁위)의 무리한 행보가 8개월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강도는 세지고 있다. 과거 법원에서 이미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들에 대한 자체 전면 재조사는 물론 ‘디지털 포렌식’(PC 등 저장매체나 인터넷상에 남아 있는 각종 개인정보를 분석하는 것) 같은 검찰 수사기법까지 고용부의 협조로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조사 대상에 오른 직원을 상대로 상관의 과거 잘못을 진술하면 본인 책임은 면제해주는 수법을 동원해 내부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직원들 사이에선 “‘빅브러더’(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절대 통치자)가 따로 없다. 개혁위 활동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확정판결 사건까지 재조사

고용부 빅브러더' 개혁委… 8개월 적폐몰이에 조직 '패닉'
지난해 11월 출범한 개혁위는 교수, 변호사, 노무사 등 민간위원 8명과 고용부 간부 2명으로 구성됐다. 당초 개혁위는 6개월간 활동한 뒤 해산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4월 “조사과제 15개 중 11개가 아직 진행 중”이라며 오는 7월 말까지 시한을 연장했다.

개혁위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에 대한 고용부의 법외노조 판단,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근로자들에 대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했던 근로감독 결과와 노조 와해 의혹, 현대자동차 협력사인 유성기업의 노조 탄압에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았던 이유 등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논란이 되는 것은 주요 조사 대상이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이거나 이미 법원 판결을 받은 사건이라는 점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의혹과 관련해선 검찰 조사가 한창이고, 노조 탄압 혐의를 받았던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1년2개월 실형을 선고받아 지난달 만기 출소했다. 조합원 중 해직자가 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 처분을 받았던 전공노는 관련 규약을 개정해 지난 3월 합법노조가 됐고, 전교조 문제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고용부의 처분이 틀리지 않았다고 판단한 사안이다.

◆디지털 포렌식까지 동원

조사 대상은 차치하고 개혁위의 무리한 조사 행태에도 고용부 직원들은 불만이 가득하다. 개혁위는 조사 대상 사건 당시 관련부서에 있었던 퇴직 간부와 현직 근로감독관, 직원들을 소환 조사하면서 부당한 업무지시를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지목하면 일정 부분 면책해주는 ‘리니언시’ 수사 방식까지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가 아니라 노동 특별검사가 떴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개혁위는 민간기업의 근로감독 전산시스템인 ‘노사누리’ 정보도 일부 보고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사누리는 수시·특별 근로감독 일지, 동향·개인정보 등 기업 전반의 노사관계 사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템이어서 근로감독관들만 접속할 수 있다. 개혁위의 민간위원들은 접근 권한이 없다는 얘기다.

◆일손 놓은 일선 공무원들

조직이 술렁이다보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 최근 고용부가 노동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개혁위의 과도한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장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지만 고용부는 아직까지 가이드라인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부터 산업현장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지만 고용부는 이달 중 실태조사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고용부 한 과장급 직원은 “지난 정부에서 열심히 일한 것을 문제 삼아 범죄자 취급을 하는 데 대해 자괴감을 느끼는 직원들이 일이 손에 잡히겠느냐”며 “자칫 이런 얘기가 기사화되면 또 제보자가 누구인지 색출에 나설 텐데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과도한 적폐청산에 따른 부작용을 경계하기까지 했는데, 고용부 개혁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각 부처는 적폐청산으로 공직사회가 과도하게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유의하기 바란다”며 “특히 중·하위직 공무원들에게 당시 정부 방침을 따랐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