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부진 시달리는 한국 자동차, 25% 관세 땐 美 수출 절망적"
수입 자동차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상이 실현되면 한국 자동차업체가 막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외국산 철강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사실을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을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관세를 피하려면 현대·기아자동차 등이 한국 공장의 생산 물량 일부를 미국으로 이전해야 하는 만큼 국내 일자리도 줄어들게 된다.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가능할까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산 자동차와 트럭, 부품 등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조사할 것을 상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는 사실이 24일 전해지자 정부와 자동차업계는 긴급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내 완성차 및 부품업계 관계자들은 이날 서울 서초동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수입 제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추가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62년 제정된 이후 사문화됐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부활시켰다. 지난 4월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할 때도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들었다. 당시 한국은 미국 정부와 개별 협상을 통해 ‘쿼터제(수출할당제)’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고율 관세를 적용받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외국산 자동차가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격을 감안하면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무역확장법 232조가 적용되면 양국 간 자동차 관세를 없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무용지물이 된다. FTA를 체결했더라도 국가 안보와 관련한 사항은 예외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외국산 자동차 전체에 25%의 관세를 물리기보다 각국에 수출할당제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엎친 데 덮친’ 한국차

한국 자동차업계는 초비상이 걸렸다. 미국은 한국 자동차업계의 가장 큰 해외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이 수출한 자동차 253만194대 가운데 약 33%인 84만5319대가 미국에 팔렸다. 업체별로는 현대차 30만6935대, 기아차 28만4070대, 한국GM 13만1112대, 르노삼성 12만3202대다.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 판매가 부진한데 고율의 관세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미국 수출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세 폭탄’을 피하려면 미국 공장 생산량을 늘려야 하지만 국내 고용 문제와 강성 노조 등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대·기아차가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한 127만5000대 가운데 59만 대는 한국 공장에서 생산됐다.

한국GM도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대미 수출이 막히면 인천 부평공장의 생산량(지난해 약 33만 대)이 급감해 ‘제2의 군산공장(폐쇄 예정)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미국 공장 생산량을 늘리기로 결정하면 국내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해진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완성차 업체가 미국 공장 생산량을 늘리면 부품업체도 미국으로 옮겨가야 한다”며 “한국 자동차산업이 약 150만 개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동차산업 위기는 한국 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미국이 수입차 관세를 올리면 한국은 멕시코 캐나다 일본 독일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현대차(-3.11%)와 기아차(-2.82%) 현대모비스(-3.24%)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도병욱/성수영/박상용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