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硏 "경기침체 선제 대응" 한목소리… 정부·KDI "회복세 유효하다"
한국 경제에 대한 민간연구소의 시각은 정부나 국책연구원과는 확연한 온도 차가 있다. 주요 경기 지표가 꺾인 걸 두고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데 무게 중심을 두면서 연간 경제성장률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하는 정부나 국책연구원과 달리 민간연구소들은 주요 지표의 추세적 변화와 그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정책 효과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경기가 전환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방증이라고 말한다. 불안한 경기 상황에서 정부 내 혹은 경제집단 간 엇박자가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둔화 신호’ 민간硏 한목소리

국내 대표 민간연구소까지 경기 논쟁에 가세하면서 당분간 이 같은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민간연구소들은 경기가 침체까진 아니더라도 둔화 국면에 접어든 건 확실하다고 해석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3.1%)보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최대 0.3%포인트 낮은 2%대 후반으로 주저앉을 것이란 부정적인 경기 전망도 내놓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8%로 제시했다. 지정학적 위험 요인 완화에 따른 경제주체의 심리는 소폭 개선됐지만 각종 경제 지표는 여전히 경기 하방 위험을 가리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경제의 핵심 축인 수출과 투자부문의 부진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 3월 전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1.2% 줄었다. 2016년 1월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0.3%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한국경제연구원 역시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증가세가 확연히 꺾인 건 사실”이라며 “여기에 고용시장 위축까지 이어지고 있어 고용 부진에 따른 소비 감소, 하락하는 경기선행지수 등이 경기가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악화된 고용 지표가 일시적이라기보다는 추세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해 급증한 반도체 투자가 이끌었던 국내 성장세는 점차 약화할 것”이라며 “반도체 기업의 투자 증가 속도가 낮아지고 자동차, 통신기기, 디스플레이 등 반도체 이외의 주력 제조업에서 수출이나 투자를 이끌어갈 부문이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속속 고개 드는 위기 징후들

상대적으로 정부와 국책연구소는 낙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5월 경제동향(그린북)에서 “고용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성장률, 물가 등 경제 지표는 나쁘지 않다”고 공식적인 견해를 밝혔다. 김현욱 KDI 거시경제연구부장 역시 “경기가 아직 침체 국면에 접어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 1∼2월 기저효과 등으로 광공업 생산과 투자가 조정을 받았지만 전반적으로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고수하고 있다. 특정 월별 지표로 경기 침체를 판단하는 건 곤란하다는 얘기다.

정부의 이런 주장에도 속속 드러나고 있는 추가적인 경제 지표들은 상황이 좋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월간 상품수출 통계’를 보면 한국의 올 1분기 수출액은 1454억27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 증가했다. 수출 규모가 가장 큰 10대 수출국 중 여덟 번째다.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세계 교역의 약 90%를 차지하는 주요 71개국의 평균 증가율인 13.8%보다 낮았다. 수출 규모 순위도 지난해 6위에서 올해 7위로 한 단계 내려왔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침체와 둔화, 회복이라는 판단도 각 경제 주체의 기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대내외 각종 지표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IB도 민간연 주장에 가세

외국계 투자은행(IB)들도 한국 경기가 꺾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대표적인 외국계 IB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수출 둔화 전망에 따라 지난 4월 경제활동지수가 전달보다 1.1%포인트 하락했다며 한국 경제가 당초 예상보다 녹록지 않은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HSBC는 아시아 신흥국들의 성장세가 일시적으로 둔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변수라고 우려했다.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이기도 한 아시아 신흥국들의 성장동력이 약화되면 결국 한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김은정/이태훈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