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ISD) 절차에 들어가면서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정부가 지난달 “삼성물산 합병 때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밝히자 엘리엇이 곧바로 이를 역이용해 손해배상 청구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가 엘리엇의 요구를 받아들여 합의금을 주면 ‘외국 투기자본에 혈세를 내준다’는 비판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반대로 엘리엇과의 소송전에 나서면 기존 입장을 뒤집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의 'ISD 기습'… 정부, 딜레마에 빠졌다
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달 13일 엘리엇으로부터 ‘중재의향서’를 받은 뒤 국민연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등과 두 차례 긴급 회의를 열었다. 중재의향서는 국제 소송에 들어가기 전 중재 의사가 있는지 타진하는 절차다. 엘리엇은 2015년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도록 함으로써 삼성물산 투자자였던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응 절차 등을 논의했지만 중재 요청을 받아들일지, 소송전에 나설지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중재 요청을 받아들이면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 경우 다른 투자자들의 집단소송이라는 후폭풍에 맞닥뜨린다. 배상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

중재 요청을 거부하면 엘리엇은 ISD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은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승소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김일규/고윤상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