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현대차에 '주주이익' 추가조치 요구… 탐색전이냐 전면전이냐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에 지배구조 개선 및 자본관리 최적화, 주주 환원 등에 대한 추가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다음주 현대차그룹 고위경영진과 만나 논의하자는 요구까지 했다. 시장에선 해석이 분분하다. 엘리엇이 2015년과 2016년 삼성을 공격할 때와 달리 현대차그룹과 조율을 거쳐 이익을 챙긴 뒤 빠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일각에선 주요 계열사의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을 강하게 요구하며 단계적으로 공격의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삼성 때와는 다를 것”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28일 기존 4개 순환출자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대모비스의 모듈·사후서비스(AS) 부품 사업을 인적 분할해 물류회사인 현대글로비스에 넘기는 방안도 내놨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기아자동차 등 계열사들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23.3%를 모두 사들이기로 한 게 핵심이다.

엘리엇은 이런 과정을 파고들었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의 보통주를 10억달러(약 1조500억원)어치 들고 있다고 밝혔다. 본지 취재 결과 엘리엇은 현대모비스 지분 2.2%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분 가치는 약 5700억원에 달한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식 매입 자금(약 1조원)의 절반 이상을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게 될 현대모비스에 쏟아부은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 지분율은 1%를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도에 ‘환영한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추가 조치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각 계열사의 △기업 경영구조 개선 △자본관리 최적화 △주주환원 등을 어떻게 달성할지 세부적 로드맵을 달라고 했다. 현대차그룹 경영진에 면담도 요청했다. 다음주 첫 만남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엘리엇의 향후 행보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엘리엇이 지배구조 개편에 환영한다고 밝혔듯이 시장의 지지를 받고 있어 큰 의견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엘리엇의 행보를 놓고 시장의 해석은 다소 엇갈린다. 일단 무리한 요구라는 평가가 많다. 정 회장 부자가 1조원 넘는 세금을 전액 납부하고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는 ‘정공법’을 택했기 때문에 추가 조치를 요구할 명분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재벌개혁’을 강조하는 정부의 경영 투명성 확대 요구에도 부합한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 평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이유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2015년에는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했지만 이번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과 관련해서는 ‘환영한다’고 밝힌 만큼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공격 신호탄’ 해석도

시장에선 엘리엇이 배당 확대 또는 자사주 소각 등 강력한 주주친화방안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구체적인 향후 투자계획을 제시하라고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일반 주주가 손해를 보는 측면이 일부 있다”며 “엘리엇이 이 점을 파고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엘리엇의 ‘개입’으로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엘리엇이 분할되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비율(0.61 대 1)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일부 현대모비스 소액주주는 현대글로비스로 넘어가는 모듈·AS 사업부문의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고 주장했다. 엘리엇과 일부 외국계 투자자가 다음달 29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에 반대하고 나서면 ‘표대결’이 불가피해진다.

합병은 주총 특별결의 사항이다.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70~80%의 주주가 참석한다고 가정하면 47~54%의 찬성표를 확보해야 한다.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30.2%다. 지난 3일 기준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은 48.1%에 달한다. 외국인 투자자 다수가 엘리엇과 뜻을 같이하면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작업은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처럼 국민연금공단이 캐스팅보트를 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 지분 9.8%를 보유하고 있다.

장창민/도병욱/김익환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