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올 들어 새로운 금융제도를 줄줄이 내놓으면서 은행들이 전산 시스템을 정비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당장 지난 1월 말 신총부채상환비율(DTI)을 도입한 데 이어 3월26일부터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과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 등이 잇따라 시행된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일선 전산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새 제도를 몰아서 내놓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일각에선 일부 정책의 경우 전산 준비 부족으로 인해 당국이 예고한 시기에 시행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DSR·RTI 전산 개발에 ‘밤샘’

쏟아지는 새 금융제도… 은행 전산정비 '초비상'
정부는 ‘여신심사 선진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오는 26일부터 DSR과 RTI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은행 여신심사본부에서는 시행 시점을 맞추기 위해 전산 시스템을 개발하느라 연일 야근에 시달리고 있다.

DSR은 신규 대출 때 기존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까지 모두 살펴보기 때문에 은행들은 개인 고객 정보를 종합해 대출한도를 설정하는 심사 시스템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특히 시중은행은 부동산임대업 대출 신규에 적용할 RTI를 산출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RTI는 연간 임대소득이 해당 임대업 대출의 연간 이자비용과 해당 임대물건에 대한 기존 대출의 연간 이자비용을 합한 값보다 얼마나 큰지 따져보는 비율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DSR은 기존 데이터가 있지만 RTI는 부동산임대소득 등 데이터부터 수집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라며 “두 지표를 동시에 개발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4월 시행 제도는 논의도 못해

은행들은 매달 쏟아지는 제도 변경으로 4월부터 시행 예정인 ‘연체가산금리 인하’와 ‘채무변제 순서 선택권’ 시스템 개발에는 아직 손도 못대고 있는 상황이다. 올초 정부는 금리상승기 이자 부담이 커질 것을 대비해 취약, 연체차주에 대한 지원 방안으로 연체가산금리를 3%로 내리고, 채무변제순서를 차주가 선택하는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신정책 실무자들은 시행 시점을 예정대로 맞출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귀띔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장 DSR과 RTI부터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며 “4월 시행 제도는 IT본부와 아직 협의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연체가산금리는 기존보다 낮추면 되지만 차주가 채무변제 순서를 선택하는 제도는 전산 개발이 복잡하다는 게 은행들 주장이다. 4월 시행 시점을 맞출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연체 채무변제 순서는 무조건 미납이자, 원금 순이다. 하지만 4월에는 차주의 자금 상황에 맞춰 원금과 미납이자 중 유리한 것부터 갚을 수 있도록 변경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차주가 변제할 수 있는 금액이 미납이자보다 많으면 원금부터 갚아서 일부 연체금을 줄일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유독 금융제도 도입 일정이 연초에 몰려 있다”며 “갈수록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지는 여신심사체계를 일선 창구에서 혼선 없이 시행하려면 상당 시간 테스트 기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