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노벨상을 타려면 일본으로 가고, 비즈니스를 하려면 한국으로 오십시오.”

2013년 독일 화학기업 바스프가 아·태지역을 총괄하는 전자소재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할 국가를 결정할 때 신우성 한국바스프 회장(60·사진)이 한 말이다. 일본과 한국이 R&D 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할 때였다. 기초과학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는 일본은 연구를 위한 인프라가 탄탄하다는 걸 강조했다. 신 회장은 한국에는 글로벌 전자 기업이 포진해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삼성과 LG, SK 등을 공략하지 않고 전자소재 사업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설득했다. 결과는 신 회장의 승리. 2013년 홍콩에 있던 아·태지역 전자소재 본부가 서울로 옮겨왔고, 2014년엔 성균관대 자연과학 캠퍼스에 바스프 아·태지역 전자소재 R&D 센터를 개소했다.

그로부터 약 3년 뒤인 27일 한국바스프는 전남 여수에 전자소재 생산 공장을 완공하고 가동을 시작한다. 아시아 지역 전자소재 ‘통합 허브’를 한국에 구축한 것이다. 신규 공장에서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쓰이는 초고순도 암모니아수를 생산한다.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의 차세대 반도체에 사용될 예정이다. 앞으로 식각액·도금액 등을 추가 생산할 계획이다.

고객사가 요구하기 전부터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맞춤형 솔루션’도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신 회장은 “지금까지 세계 1위 화학 기업으로 생산 능력은 우수했지만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는 취약한 점이 있었다”며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이듯, R&D 센터를 중심으로 고객사와 함께 연구개발을 통해 솔루션부터 재료 공급까지 한 번에 이뤄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1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신 회장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했다. 천연자원이 없고 공장 운영 비용이 비싼 한국은 범용 제품을 생산하기엔 적절치 않은 환경이라는 판단에서다. 천연자원을 보유한 말레이시아, 거대한 시장을 가진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부문이 고부가가치 제품이었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부터 전자소재까지 생산 분야를 다양화한 이유다. 코오롱플라스틱과 합작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중 하나인 폴리아세탈(POM) 생산 공장도 건립 중이다.

바스프와의 협업으로 국내 산업도 성장했다. ‘우리는 당신이 쓰는 제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더 낫게 만듭니다’라는 바스프의 모토를 실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바스프 제품을 적용한 콘셉트카 RN30을 선보였다. 지난달 남양연구소에서 전 세계 바스프 자동차 소재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테크페어’를 열기도 했다. 어떤 화학 소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차량 성능부터 디자인까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바스프가 여수에서 생산하는 고내열 플라스틱인 울트라손은 LG화학 등 국내 화학업계가 미래 산업으로 적극 육성하는 해수담수화용 멤브레인 필터의 핵심 소재다. 신 회장은 “독일 바스프의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기지로 만들 것”이라며 “바스프 제품을 통해 국내 자동차, 전자, 화학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사와의 협업을 통해 산업이 함께 성장한다”며 정부의 외국인 투자기업 유치 노력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정부가 외국인 투자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제공할 게 아니라 국내 기업부터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신 회장은 “삼성전자, 현대차 같은 기업이 많으면 많을수록 외국인 투자기업은 오지 말라고 해도 한국으로 몰려올 것”이라며 “국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