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기저귀 못 믿겠다"…노케미족 선언한 소비자들
“유기농 면 생리대는 품절이라는데 어디서 구하나요?” “세탁·관리할 엄두가 안 나지만 기저귀도 천으로 써야 하나요?” 25일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 맘스홀릭베이비에 올라온 글이다.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확산일로다. 옥시의 가습기살균제에서 촉발된 ‘케미포비아(화학 성분에 대한 공포)’는 물티슈, 계란, 생리대 등 화학 성분이 첨가된 각종 생활용품과 식품으로 번지고 있다. 생리대는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각종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아예 국산품 기피 현상으로까지 이어질 조짐이다.
"생리대·기저귀 못 믿겠다"…노케미족 선언한 소비자들
전문가들은 “눈높이가 올라간 소비자들을 현행 안전 기준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과도한 공포감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생리대 논란을 촉발시킨 깨끗한나라는 환불 조치에 이어 모든 생리대 제품의 생산 및 판매를 이미 중단했다. 유한킴벌리와 LG유니참 등 다른 주요 생리대 제조사들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법규 준수는 물론이고 국제 기준보다 더 엄격하게 생산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화학제품 전체로 불안감 확산

그런데도 여성들의 불안감은 전체 생리대 판매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생리대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이후 주간 판매량이 20% 가까이 줄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일회용 생리대 구매 자체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역시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는 홈플러스 관계자도 “이전에는 고객들이 주로 ‘1+1 행사’를 하는 저렴한 제품을 찾았는데, 요 며칠 새 ‘몸에 나쁘지 않은 제품이 뭐냐’고 묻는다”고 귀띔했다. 드러그스토어 CJ올리브영은 “당장 판매량은 큰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릴리안’ 대량 할인 행사 등을 수시로 했던 만큼 판매량 감소와 환불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안전성 논란은 유아 기저귀로도 옮겨가고 있다. 생리대와 제조 과정이 흡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외국산 생리대와 친환경 대체 상품을 찾는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해외배송대행서비스 업체인 몰테일은 서비스 제휴사이트인 건강식품 전문쇼핑몰 비타트라의 이번주(18~24일) 생리용품 해외직구 건수를 집계한 결과 외산 생리대 매출이 전주(11~17일) 대비 6.6배나 늘었다고 밝혔다.

100% 순면 생리대 ‘나트라케어’는 하루 평균 12건에 그쳤던 주문이 18~24일 1000건을 넘어서면서 품절됐다. 대체상품인 생리컵은 국내에서 시판 허가가 나지 않았는데도 판매량이 무려 470% 급증했다.

수제 천연 면 생리대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인 한나패드는 몰려드는 주문 덕분에 홈페이지에 ‘배송지연’ 안내문을 내걸었다. 이 업체 장영민 대표는 “일일이 손으로 검수하고 접어서 상자에 넣는 포장 작업을 하기 때문에 하루 출하량이 제한적인데 지금 주문하는 고객들에겐 추석 이후에나 보낼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에 대한 불신 고조

케미포비아가 확산되는 것은 주요 제품의 안전성 논란이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하기스와 그린핑거 물티슈 일부에서 허용 기준치(0.002%)를 초과하는 메탄올이 검출돼 어린 자녀를 둔 주부들이 발칵 뒤집혔다. 2월에는 피앤지 기저귀 ‘팸퍼스’ 일부 품목에서 살충제 성분인 ‘다이옥신’이 검출됐다고 보도돼 국내에서도 기저귀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치약 비누 면도크림 샴푸 공기청정기 등 많은 생필품이 이미 수차례 이런 논란을 거쳤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올 들어 가습기살균제, 살충제 계란에 이어 생리대 문제까지 잇달아 터져 소비자들이 화학물질에 대해 예민해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생리대 문제는 다소 과장돼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태를 촉발시킨 김만수 교수팀의 실험 결과를 인정하더라도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이 중형 생리대 1개당 0.0065㎎이 방출됐다”며 “이는 실내 VOC 기준인 0.5㎎과 비교하면 7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학 성분에 민감한 상당수 20~40대 여성 소비자들은 모든 소비에서 ‘노(No)케미족’으로 바뀌고 있다. 화장품의 경우 방부제 성분인 파라벤 등 여러 화학 성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직접 원료를 구입해 만들어 쓰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천연화장품을 생산하는 플로바리스의 이수향 대표는 “자연에서 추출한 성분을 사용하고 인공색소, 향료를 넣지 않은 제품과 천연방부제를 사용한 화장품 등을 찾는 소비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삶의 질에 대한 국민 기준이 높아진 반면 정부와 기업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우리 사회 기저에 깔려있다”며 “집단주의가 강한 문화 속에서 신뢰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사회적 비용은 계속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혜정/민지혜/이우상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