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2일 공개한 ‘2015년 각국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한국 내 무역장벽이라고 규정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경제학자들도 시장경제 원칙에 맞지 않는 과도한 규제라고 줄기차게 지적해 온 것들이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 동반성장위원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법을 통과시키고, 정책을 시행했다. USTR도 이 두 규제에 대해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수년 전부터 우려를 제기해 왔다. 강도를 높여 올해에도 반복 제기한 것은 향후 미국의 통상 공세 시 표적으로 삼으려는 조치란 분석이다.
[통상마찰 부른 '우물 안 규제'] '무역장벽' 낙인찍힌 화평법·중기적합업종…미, 철폐 압력 예고
○미국의 끊임없는 지적

미국 정부는 2011년 한국 정부가 화평법 제정 움직임을 보이자 기술무역장벽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3년 각국별 무역장벽 보고서에도 “2011년 2월 (대한민국) 환경부가 화평법을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라며 “이르면 2014년 적용될 법안에 대해 미국은 지속적으로 주시 중”이라고 적었다. 법 제정 전에 미리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2013년 8월엔 주한(駐韓) 미국상공회의소(암참)를 통해서도 화평법 제정과 관련한 건의서한을 환경부에 보냈다. 서한엔 듀폰과 다우케미컬 등 한국에 공장을 둔 미국 기업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연구개발용 화학물질에 대해 예외조항을 추가하고 기업의 영업기밀에 대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적었다. 국내 화학회사와 제약회사도 한목소리를 냈다.

이런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법 제정이 이뤄지자 USTR은 작년 각국별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화평법을 기술무역장벽으로 처음 규정했다. 민감한 기업 정보의 유출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통상 공세 위한 사전조치

USTR은 지난해 각국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문제를 처음 언급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2013년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등 미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프랜차이즈사업을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한 데 따른 것이다. 보고서는 “한 개 이상의 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이 매년 5개 이하 점포 신설이나 역세권 100m 이내 출점 금지 등 지리적 제한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았다”고 지적했다.

올해 각국별 무역장벽 보고서는 한 발 더 나갔다. “중기 적합업종 규제로 인해 미국계 레스토랑 체인은 한국에서 3년간 5개 점포만 신규 출점이 가능했고, 그마저도 출점 지역에 제한을 받았다”며 “동반성장위원회 활동이 한국의 투자 환경을 악화시켜 외국인 투자자, 특히 미국의 주식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은 2015년에도 동반성장위원회 활동을 가까이서(closely) 모니터링하겠다”고 덧붙였다.

USTR은 작년부터 동반위의 성격을 정부기구로 정의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동반위에 대해 “완전한 독립기구라고 주장하지만, 정부 예산을 받고 동반위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을 경우 해당 기업과 경영진이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고 적었다.

USTR이 구체적으로 피해 사례를 적시해 공개하고 동반위를 정부기구로 규정한 것은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 미국 기업의 한국 서비스 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는 증거를 남겨 향후 통상 공세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 화평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의 줄임말이다. 모든 신규 화학물질과 연간 1t 이상 제조·수입·판매하는 기존 화학물질은 매년 당국에 보고하고 등록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이 주요 골자다. 올해 1월1일 시행됐다.

■ 중소기업 적합업종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 영역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2011년 도입됐다. 이 업종으로 선정되면 향후 3년간 대기업의 사업 진출이 제한되거나 금지된다. 현재 제조업 54개, 서비스업 17개 등 71개 품목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다.

세종=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