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디플레를 막으려면 한국은행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디플레 발생 가능성 높아…기준금리 추가 인하해야"
이재준 KDI 연구위원은 25일 ‘일본의 1990년대 통화정책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한국에 디플레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최근 2년 동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 범위(2.5~3.5%)를 크게 밑도는 1%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다. 2012년 2.2%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지난해 1.3%로 둔화된 뒤 올 들어 지난달까지 1.3%에 그쳤다. 이는 1999년(0.7%) 이후 최저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실질 GDP로 나눈 값인 GDP 디플레이터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낮으면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GDP 디플레이터는 국민 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경제활동을 반영하는 종합적인 물가지수로 소비재 가격만 반영하는 소비자물가지수에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장기 침체가 시작된 1990년대 일본에서는 소비자물가 하락에 앞서 GDP 디플레이터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GDP 디플레이터 상승폭은 2012년 1.0%, 2013년 0.7%로 같은 시기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낮았다.

이 연구위원은 “과거 한국의 GDP 디플레이터 움직임을 보면 소비자물가에 앞서 변동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최근 GDP 디플레이터 상승률이 크게 둔화돼 소비자물가 상승폭도 더욱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그는 이어 “신제품과 품질향상 효과, 가격 변화에 따른 대체효과 등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 미만으로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디플레 발생을 막기 위해선 통화 당국의 적극적인 의지 표명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최근 물가상승률 둔화로 기존의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에 더욱 선제적으로 통화완화 정책을 펼쳐 디플레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책연구기관이 이처럼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보고서는 또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초 기준금리를 수차례 낮췄지만 소비자물가가 더 빠르게 떨어지면서 실질 금리가 오히려 상승, 경기부양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도 기준금리를 내렸으나 2012년 이후 실질 금리는 되레 상승하면서 통화완화 효과가 많이 희석됐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