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미국 실리콘밸리 중심인 팰러앨토시의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1968-101호 강의실. ‘새 벤처 만들기(Create a New Venture)’ 강좌 첫날 40여명의 수강생이 모였다.

이 강의는 학생들에게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가르쳐준다. 3~4명이 팀을 짜서 미리 아이디어를 내 허가를 받아야 수강할 수 있다. 팀은 2명 이상의 경영대학원생, 1~2명의 공대 의대 법대 등 다른 단과대생으로 이뤄져야 한다. 협업을 위해서다. 뽑힌 10개 팀은 2학기에 걸쳐 강의를 듣는다.

1~3월 겨울학기엔 팀별로 시장을 조사해 아이디어를 사업모델로 다듬는다. 중간고사는 시장조사보고서, 기말고사는 상품기획서로 평가한다. 봄학기엔 전략을 만들고 자본 유치·채용계획을 설립하게 된다. 중간고사는 사업모델 발표, 마지막 기말시험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여러 벤처캐피털 대표 앞에서 펀드레이징 계획을 발표한다. 많은 투자를 받은 팀이 높은 학점을 얻는 식이다. 실제 투자를 받아 창업한 팀들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산파’ 스탠퍼드대엔 이 같은 창업 관련 강좌가 유난히 많다. 매트 하비 스탠퍼드대 테크놀로지벤처프로그램(STVP) 담당 교수는 “경영대학원뿐 아니라 공대 의대 미대 등 곳곳에서 다양한 기업가정신 관련 강의를 마련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큰 꿈을 가질 수 있게 기업가정신을 물이나 공기처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또 강의는 전임교수가 아닌 대부분 사업을 해본 사람들이 담당한다.

유명 벤처캐피털인 시에라벤처스의 창업자인 피터 웬델 교수가 21년째 맡고 있는 경영대학원의 ‘기업가정신과 벤처캐피털(Entrepreneurship and Venture Capital)’ 강의는 몇 년 전부터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이 공동 교수를 맡고 있다. 강의는 대부분 사례연구인데, 사례가 된 기업의 창업자나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온다. 2010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박병화 인터멜레큘라 이사는 “첫 수업 때 코슬라벤처스의 CEO인 비노드 코슬라가 나와 하나의 스타트업 사례를 설명한 뒤 투자할지 여부를 놓고 학생들과 토론했다”고 말했다. 멕 휘트먼 휴렛팩커드(HP) 회장, 채드 헐리 유튜브 공동창업자, 트위터 공동창업자인 잭 도시와 비즈 스톤 등도 한 수업씩을 맡아 출연했다.

스탠퍼드는 이처럼 철저히 실용적이다. 잭 헤너시 스탠퍼드대 총장도 구글과 시스코의 이사회 멤버이며, 제임스 플러머 공대 학장은 인텔 이사회에 참석한다. 스탠퍼드의 이 같은 창업 문화는 어떻게 형성됐을가. 하비 교수는 “서부의 신생 대학인 스탠퍼드가 하버드 등 아이비리그를 따라잡으려면 차별화가 필요했다”며 “스탠퍼드엔 아시아 등에서 다양한 인재가 몰려왔고, 서부 개척 때와 같은 진취적 개척정신이 살아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다양성, 개척정신을 통해 학생들은 기업가정신을 키웠고 많은 사업에서 성공했다”고 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의 2012년 경영대학원 평가에서 하버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사업 성적도 그렇다. 1939년 졸업생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HP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기업들이 스탠퍼드에서 탄생했다. 최근만 해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1998)을 만들었고, 제리 양은 야후(1994)를 세웠으며, 젠슨 황은 엔비디아(1993)를 설립했다.

스탠퍼드대 교수인 윌리엄 밀러와 찰스 이슬리는 2011년 연구를 통해 1930년대 이후 동문이 세운 기업은 3만9900개사로 2010년 기준 2조7000억달러(약 3000조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추산했다. 이는 세계 경제 5위인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2조7120억달러와 비슷하고, 15위인 한국의 1조1600억달러보다 배 이상 많은 수치다 .스탠퍼드와 실리콘밸리 발전엔 이 지역에 자리잡은 기부 문화도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스탠퍼드는 지난해 말까지 5년간 62억달러(약 6조9000억원)의 기부금을 모금했다. 이는 하버드 예일 등을 앞서 미 대학 역사상 최대 기부금이다.


현지 벤처캐피털인 포메이션8의 브라이언 구 대표는 “스탠퍼드엔 창업 의지를 가진 전 세계 학생들이 기회를 찾기 위해 모인다”며 “이들의 성공을 위해 교수 선배 등 수많은 멘토가 끊임없이 네트워킹을 해주며 이끌어준다”고 말했다.

팰러앨토=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