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전후로 서울 명동 사채시장은 썰렁하다. 거래 어음량은 줄고 시장에 나오는 물건도 신통치 않아 할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어음량이 감소하다보니 A급 어음의 할인으로는 많은 양의 어음을 할인해야 이익이 창출되는 만큼 A급 보다는 위험성이 높은 C, D급 어음에 욕심을 내는 전주들이 늘고 있다. 대부분의 업자들의 의견도 같다. "요즘시장에 이익내려면 C등급 이하를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모든 투자는 'HIGH-RISK, HIGH RETURN' 인 법. 이익을 크게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명동에서 사라지지 않는 여담 중 하나가 배반당한 큰 손 전주들의 이야기이다.

올해 초 사채업자 박모(53)씨가 투신자살했다. 거액의 담보대출을 해준 뒤 주가 급락으로 담보가치가 하락하자 전주들의 무리한 자금회수 요구로 인해 목숨으로 책임을 진 것이다.

이런 사채업자들의 이야기는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양심과 책임감이 있는 업자였다는게 명동시장 사람들의 전언이다. 오히려 몇 년 동안 쌓아온 신뢰를 단 한 방에 무너트리고 몇 십년 명동 전주의 노하우를 농락해 전주에게는 큰 타격을 주고 자신의 실리를 챙긴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다.

명동에서 전주 생활을 30년 이상 해온 김모(80)씨는 명동에서 사채업을 하던 이모(54)씨에게 몇 년간 어음할인의 방법으로 자금을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었다. 김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터라 이씨의 권유로 A, B사의 어음 할인에 60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이씨가 직접 배서하고 높은 할인 금리로 고수익의 기대됐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했던 것은 어음의 만기일. 어음을 발행한 두 업체 모두 은행에서 어음지급일에 지급이 거절됐다. A사는 부도 후 폐업을 위장해 새로운 대표이사, 새로운 법인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B사는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현재 진행중이었다. 60억원을 고스란히 날린 것이다.

그나마 기업회생절차가 진행중인 B사의 경우는 상거래 채권으로 분류돼 수년에 걸쳐 아주 일부를 회수할 수는 있게 됐으나 그것도 배서자로 돼있는 사채업자 이씨가 최종소지인으로 채권자신고가 돼있는 상태이다.

이에 사채업자 이씨는 잠적도 하지 않고 배우자 명의로 사업장을 옮겨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상태이며 채무에 대한 변제에 대해서는 자신도 어음을 발행한 회사에 투자를 해 현재 변제의 능력이 전혀 없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관련 기업신용정보제공업체인 중앙인터빌(http://www.interbill.co.kr) 강천규 부장은 "신용 등급이 우수한 회사에서 발행하는 어음의 경우 지급 보증이 확실하다 할 수 있다"며 "A급 어음 등에 대한 투자는 채권 투자 못지 않게 안정적일 수 있기 때문에 주식, 부동산 가격변동성과 불확실성 등에 비하면 훨씬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강 부장은 "그러나 어음 발행회사에 대한 금리 및 재무상태 등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위변조어음의 매수, 발행 회사의 부도 등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속담에 '뛰는놈 위에 나는 놈'이 있지만 최근에는 '그 위에 올라탄 놈'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수십년을 사채시장에서 잔뼈가 굵었어도 사기를 당하고 배반을 당하려면 한 순간이다. 월 1%도 안되는 낮은 수익률의 A급어음 보다는 'HIGH-RISK, HIGH RETURN'의 C, D급의 어음을 선호하는 전주들의 속성을 꽤뚫어 보고 그것을 이용해 한 탕하려는 사채시장의 배반자들이 지금도 어디선가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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