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대우조선에서 분사한 선체(船體) 설계업체 (주)퓨텍의 우세영(41) 대표는 사무실(경남 거제시 아주동 1번지)로 출근하면 20대 여직원 13명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우 대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회사 전체 임직원 12명중 청일점이었다.

일거리가 늘어나 최근 직원 3명을 새로 뽑으면서 남자가 한 명 늘어났지만 ''우먼파워''를 과시하는 직장 분위기는 여전하다.

그는 "거대한 선체의 뼈대를 섬세한 여성의 손재주로 작업하고 있어 생산성도 높고 회사 분위기도 부드럽다"고 말한다.

회사 여직원의 맏언니격인 김현수(27)씨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정밀함을 요구하는 선체 설계도 작업에 적격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내 조선업계에서 직원 90%가 여성인 회사는 퓨텍이 유일무이하다.

여직원 13명중에서 지난해 결혼한 김현수씨 외에는 모두가 결혼 적령기의 20대 처녀들이다.

그래서 우 대표는 ''사장님 부조금 꽤나 들어가게 생겼어요''라는 말을 회사 안팎에서 자주 듣는다.

대우조선 기술본부 선체설계 소속으로 있다가 분사 1호 기업으로 분사한 퓨텍의 주업무는 플랫바 네스팅 설계.철강판을 잘게 쪼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도면으로 그리는 작업이다.

5천만원의 자본금 전액을 종업원들이 출자했기에 일에 대한 직원들의 열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내 직장이라는 소속감이 훨씬 커진 데다 일을 더 완벽하게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늘어났다"는게 여직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여초(女超) 직장이어서 커피 타기와 책상닦기 등 잡무에서 해방된 것도 분사와 함께 누릴 수 있는 기쁨중 하나라고 여직원들은 입을 모았다.

"남자 직원들한테 잘 보이려고 신경쓰는게 줄어 일에 집중이 잘 되고 생활하기에도 한결 편해졌어요"

회사 막내인 황지혜(23)씨의 말이다.

여직원이 많다고 매사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전산용지 등 무거운 물건을 운반할 때와 전산장비가 고장이 나면 손 볼 사람이 없어 곤란을 겪기도 한다.

이런 경우 여직원들은 같은 공장내에 있는 대우조선 전산실의 남자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퓨텍 직원들은 일주일에 두 번은 스스로 사무실 주변 아침 청소에 나선다.

대우조선 공장이 생긴 이래 여직원이 마당을 청소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의 억척은 회사 밖에서도 위세를 떨친다.

분사 뒤 첫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들은 소주 12병을 비워 우 대표를 놀라게 했다.

덕분에 우 대표의 주량이 소주 반 병에서 한 병으로 두 배나 업그레이드됐다.

"부담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직원들 위주로 구성된 분사업체 1호인데 결과가 좋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여자들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말 듣기가 십상이잖아요"

서숙옥(24)씨는 여자들의 강한 맛을 보여주겠다며 여자가 직장의 꽃이라는 말을 단호히 거부했다.

퓨텍의 맹렬 여성 베테랑들을 믿는 대우조선은 이 회사에 5년치 일감을 약속했다.

"설계 전문인력으로서 조선 수출의 숨은 역군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땀을 흘리겠다"며 파이팅을 외치는 퓨텍 여직원들의 목소리는 달라진 직장문화를 실감케 한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