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强者)동맹의 출현"

세계 철강업계 1~3위 기업인 포항제철과 일본의 신일본제철, 프랑스의 유지노사가 기술개발.판매 등 분야의 3각 제휴에 원칙 합의한 사실이 흘러나온 지난 1월말, 일본의 한 신문은 이런 표현을 썼다.

세계적으로 특정 업종의 선두권 기업들이 기술과 마케팅 등에서 힘을 합치는 것은 예를 찾기 힘든 일이다.

국경의 장벽이 무너진 세계 시장에서 한치라도 판로를 더 넓히기 위해 싸워야 하는 1차적인 "적(敵)"은 말할 나위 없이 동종업계의 라이벌 기업들이다.

그러나 철강업계에서는 이런 "정글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동종 기업들간의 시장 싸움보다 더 화급한 것이 자동차-가전 등 철강 수요업체들의 "구매력 우위"에 맞서 공동 영역을 지켜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포철과 신일철은 세계 철강업계 랭킹 1,2위를 다툰다지만 세계시장 점유율이 각각 3% 남짓에 불과하다.

반면 주종 수요산업인 자동차의 경우 GM과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을 중심으로 한 "빅 6" 기업군으로 재편돼 이들 그룹이 세계 자동차시장의 84%를 점유할 정도로 "집단 구매력"을 한껏 높였다.

게다가 철강 원료인 철광석의 경우도 세계 3대 메이저로 꼽히는 브라질의 CVRD와 호주의 BHP, 해머슬리사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50%를 넘는다.

구매력과 판매력에서 월등한 "파워"를 자랑하는 이들 업종의 기업들이 거래 협상에서 우월적 지위에 서는건 당연한 귀결이다.

수요업계와 원료업계의 틈바구니에 낀 철강회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강자끼리의 동맹"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이런 결론은 포철과 신일철이 유지노 외에도 중국 최대 철강회사인 상하이바오산(上海寶山), 대만 1위 회사인 차이나스틸(CSC)까지 끌어들이는 "범아시아 제휴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있는데서도 드러난다.

포철.신일철은 이미 각각 상하이바오산과는 일부 지분 참여와 판매 협력을 포함하는 제휴에 합의했으며 CSC와도 비슷한 내용의 교차 제휴를 추진중이다.

이처럼 각국의 최고 고로업체들이 한데 뭉치는 "그랜드 엘리트 연합"은 철광석과 석탄 등 기초 원재료의 구매와 제품 판매 등에서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 세계시장을 적극 주도하겠다는 전략을 깔고 있다.

이같은 "그랜드 엘리트 연합"에 대해 각국 2,3위 기업들간의 "대항 동맹" 움직임도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한국 전기로업체인 동국제강과 현대하이스코가 일본 3위 고로업체인 가와사키제철과 각각 제휴를 맺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동국제강은 국내 철강업계에서는 가장 먼저인 99년 7월 가와사키와 후판 및 형강 분야의 원자재 및 기술 협력을 골자로 하는 포괄적 제휴를 체결했다.

가와사키는 동국제강의 증자에 1백60억원을 출자, 4% 정도의 지분을 취득하기도 했다.

4위인 스미토모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하이스코 역시 지난 연말 가와사키가 지분 14%를 참여하고 냉연강판용 핫코일을 안정 공급키로 하는 등의 제휴를 맺었다.

가와사키는 이 분야에서 프랑스 유지노사와 제휴하고 있으므로 현대는 자연스레 3각 동맹축에 참여한 셈이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