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말 서울의 화양리 아리수 소극장에서는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인터넷 연극 "14인치의 자유"(극단 무리)가 공연됐다.

이 연극은 화학연구원인 한 "사내"가 인터넷에 몰입하면서 직장 연인
친구 등 주변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사이버 세계의 "커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내는 인터넷에서 새로운 자유를 얻을 것으로 믿고 가상세계에
탐닉한다.

커서는 끊임없이 사내를 유혹, 취미 음악 섹스 등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커서와 사내와의 관계는 한 "여자"와의 인간적인 사랑으로
갈등을 겪게 되고 결국 사내는 컴퓨터를 파괴하고 인간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으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이 연극의 연출을 맡은 신승일(30)씨는 "과학문명의 포로가 돼버린
사내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통해
사이버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신씨는 이 연극의 연출을 맡기 전까지는 문자 그대로 "넷맹"이었다.

그러나 이 연극을 통해 인터넷이 몰고온 사이버 문화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됐단다.

"인터넷도 인간을 위해 존재할 때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끊어 놓는다면
그 가치는 상실하고 말죠"

인터넷은 개인이나 기업에 무한한 가치를 만들어 주지만 그로인한 악영향
또한 적지 않다는 것.

특히 상업성을 악용하는 사이트들이 늘어나면서 정보의 획득보다는
말초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커다란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14인치의 모니터는 노래방 비디오방 전화방 등 현대인에게 한정된
공간을 제시하는 또하나의 획일적 방"이라며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좁은
공간과 똑같은 놀이로 자유를 구속하는 경향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극단무리는 이 연극에 맞춰 순수 아마추어 극단인 무리의 소개와
공연일정을 담은 홈페이지( http://www.moory.com)도 개설했다.

극단의 활동을 인터넷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함으로써 대중과 함께 하는
연극을 만들겠다는 야무진 취지에서다.

< 유병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