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년 9월:산업은행(당시 이형구총재) 상공부로부터 외화대출 적격업체
추천 및 지원 협조 문서 접수.

<> 92년 12월:산업은행, 주거래 은행인 서울은행과 협조융자로 외자도입을
위한 신용장(L/C)을 개설, 당진공장 1단계 공사 지원에 나섬.

<> 94년 1월:제일은행의 의뢰로 한국신용정보가 사업성 평가 실시.
재무구조 불량 결론. 당시 이철수 제일은행장은 이같은 결론을
묵살하고 1년동안 5천억원가까이 대출을 늘림.

<> 94년 11월:산업은행은 한보철강으로부터 2단계 공사 신청서를 접수,
3개시중은행과 공동으로 외자도입을 위한 L/C를 개설.
(제일 3억달러, 조흥.외환 각 2억7천만달러, 산업
2억8천9백만달러) 외화대출금리는 연 6%.

<> 94년 12월:산업은행의 자회사인 한국기업평가는 한보철강에 대해
BBB라는 높은 신용등급을 매겨 한보철강이 다른 시중은행
으로부터도 자금을 대출받는데 주요 역할.

<> 95년 4월:한보철강 당진공장 투자계획 1차 변경. 투자금액을 당초
2조2천8백63억원에서 3조7천1백63억원으로 1조4천3백억원이나
증액.

<> 95년 5월:제일은행 한보철강의 주거래은행으로 선정.

<> 95년 10월:한보철강 투자금액을 4조1천4백32억원으로 4천2백69억원
증액.

<> 96년 3월:한보철강 투자금액을 4조7천3백28억원으로 5천8백96억원 또
증액.

<> 96년 8월:정태수총회장, 한승수 부총리 만남.

<> 96년 9월:제일은행의 의뢰로 한국신용정보 2차 사업성 평가를 실시.
한보철강의 경영이 정상화되더라도 금융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결론. 현 신광식행장도 이를 묵살하고 이후 산업,
조흥, 외환은행 등과 함께 5천2백억원의 긴급자금을 융자.

<> 96년 10월:정총회장, 한부총리와 이수휴 은행감독원장 각각 찾아감.

<> 96년 11월:정총회장, 두번째로 이은감원장 면담.

<> 96년 12월:정총회장, 이석채 경제수석비서관과 만남.

<> 96년 12월:한보철강 투자금액을 5조7천2백65억원으로 9천9백37억원을
다시 증액. 4번째 투자계획 변경임.

<> 97년 1월8일:은행감독원은 제일은행이 동일인 여신한도(은행 자기자본의
15%)를 초과해 한보철강에 자금을 빌려주도록 승인,
제일은행은 6일동안 6백억원을 추가로 지원.

<> 97년 1월22일:은감원은 은행에 돌아온 수백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한
한보철강에 대한 부도처리를 1일간 유예하도록 금융결제원
에 요청.

<> 97년 1월23일:한보철강 최종 부도.

<> 97년 1월31일:정태수 총회장 구속.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일자).